[수필릴레이] 박근혜 정부를 맞이하며

김춘석씨는 올해로 45살이다. 고등학교 1학년에 다니는 큰딸 형주와 중학교 3학년, 1학년인 은주, 희수를 둔 가장이다. 오늘이 그 김춘석씨 해고무효소송 확정판결이 있는 날이다. 우리는 될 수 있으면 많은 조합원들과 함께 가기로 했다. 소송에서 이기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사실이니 회사 측에서 나오는 노무와 엄 부장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우리들 힘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김춘석씨는 지난 1월20일 해고를 당했다. 이유는 터무니없게도 그달 초에 있었던 사고였다.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앞차를 받는, 버스기사들한테 흔히 일어나는 사고였다. 사고가 나던 그날 밤, 김춘석씨는 속상한 마음에 술을 마셨다. 전날 마신 술 때문에 다음날 회사에 조금 늦게 나왔던 김춘석씨는 나이도 한참 어린 노무과 김 과장으로부터 욕을 먹어야 했다. 아무리 관리자라고 하지만 나이도 한참 어린 데 욕이라니, 김춘석씨도 참을 수 없어 김 과장에게 따졌고, 두 사람은 손으로 밀치는 정도의 몸싸움을 했다. 회사는 싸움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았는지 처음부터 녹음까지 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회사 꼬임수에 넘어간 것이다.

회사는 이를 핑계로 징계위원회를 열어 김춘석씨를 해고시켜 버렸다. 해고 통보서에서는 취업 규칙 몇 조 몇 항에 의해 ‘비위의 도가 중함에도 뉘우침이 없다고 인정됨’이라고 써 있지만 다 개똥 같은 소리다.

김춘석씨는 올해 8월에 있을 조합장 선거에 나가겠다고 했고, 더군다나 노조 활동을 하는 소규모 동호회까지 만들어 회장 자리를 맡았으니 회사에서는 때만 기다렸다가 ‘이 때구나’ 싶어 김춘석씨를 해고시켜 버린 것이다. 동호회가 아직 자리도 잡기 전이었고, 단체행동조차 한 번도 해보지도 않았던 우리들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많은 생각을 했다. 결국 우리느 고문 변호사인 정연순씨의 도움으로 해고무효소송을 내기로 결정했다.

판결은 오전 9시30분이었다. 마포에 있는 서부지방법원에 도착한 건 9시30분이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잽싸게 뛰어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 있는 법정으로 들어갔다. 우리 사건 말고도 다른 사건 확정판결이 있는 날이라 그런지 방청석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우리 고문 변호사가 왔나 두리번거리며 찾아 봤지만 보이질 않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판결하는 날은 변호사가 오지 않는다고 한다.

판사가 판결문을 읽고 있는데 무슨 소린지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씨팔, 크게 좀 읽지.’ 나뿐 아니라 같이 간 조합원들도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고 투덜댔다. 고개를 빼고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해서 들어봐도 여러 판결문을 다 읽을 때까지 김춘석씨란 이름을 들을 수 없었다. 우리가 들어오기 전에 읽었거나, 아니면 우리가 듣지 못했을 것이다. “00운수는 김춘석씨를 원직에 복직시키고…”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데 말이다. 판사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그냥 나오자니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다. 김춘석씨도 답답했는지 법정 입구에서 서성대고 있다. 우리는 장내를 정리하는 사람에게 물어 보았다.

“김춘석씨 건 어떻게 판결났는지 알 수 없어요?”

그 사람은 서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들더니 “원고가 졌네요” 하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그 사람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재수없게시리’. 그 사람 어깨 너머로 펼쳐 든 종이를 읽어보았다. 여러 개의 사건 번호와 원고․피고 이름만 적혀 있을 뿐 별 다른 내용은 없었다. 다만 김춘석씨 이름과 다른 사건 원고의 이름에 줄이 그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패소한 사람들만 줄을 그어 놓은 것 같았다.

법정 밖으로 나오니 협회 사무국장인 경순이 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모두 풀이 죽어 있는 모습을 보고 경순이 형은 눈치를 챘으리라. 우리들 원고가 졌다고 알려 준 그 사람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랐다. 나는 “그깟 놈이 뭘 알겠냐”고 말했지만, 그 사람은 사실 밥 먹고 매일 법정에서 사는 사람이니 판사 입 모양만 보고도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민원실로 내려갔다. 민원실에 있는 컴퓨터에 사건번호를 넣고도 조회해 보고, 김춘석씨 이름을 넣고도 조회를 해보았지만 입력이 잘 되질 않았다. 달리 알아볼 방법도 없었다. 판결문은 일주일 후에나 나온다고 한다. 우리는 법원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서 담배를 피워 물고 한숨만 내쉬었다. 법원에 들어올 때 회사 관리자 엄 부장의 웃음을 빼물고 으쓱대며 걸어갔었는데, 그 모습이 선했다. 회사 관리자들은 승소했다고 조합원들에게 압력을 넣을 텐데 그 꼬락서니를 어떻게 볼까. 오히려 우리들 코가 납작하게 되었다.

버스일터 사무실로 돌아와 늦은 점심을 먹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춘석씨는 속이 상해 몇 잔 마신 술에 취했는지 회의용 의자에 앉아 불편한 자세로 잠이 들었다. 억울하고 분하다. 말이 되는가. 힘없는 노동자가 해고당한 것도 억울한데 패소라니. 사업주 손을 들어 준 법원도 똑같은 사람들이었나. 제기랄. 아니나다를까. 우려했던 일이 일어나고 있다. 파녈이 있던 날 일산 영업소에서는 기사 간담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엄 부장은 시키는대로 그냥 일만 열심히 하라는 투로 말하며 압력을 넣었다. 김춘석씨가 패소했으니 소송비용을 청구한다고도 했다. 다음날 원당 영업소 기사 간담회에서도 똑같이 떠들고 다녔다. 여러 조합원들이 전화를 걸어 와 걱정을 해 주었다.

김춘석씨는 항소를 하겠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다. 김춘석씨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300명 조합원들이 지켜보고 있고, 우리 모두의 밥줄이 걸려 있는 문제다. 비록 힘업슨 노동자일지라도 뭉치면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다. 항소를 하게 되면 과연 희망새가 날 수 있을까. 나중에 항소를 해도 지금과 같은 판결이 난다면 나는 죽을 때까지 법을 믿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회사에서 이런 해고무효소송은 처음 있는 일이지만, 이제 이것으로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 꼭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에선 우리 노동자가 사람답게 살 만한 세상이 오기를 진정 기대해 본다.

박정수 버스기사 / 독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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