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 선순환을 위해 기본을 고집하는 제동목장 토종닭을 찾다

[제주=트루스토리] 정석호 기자 = 길을 가다보면 목가적인 풍광을 흔하게 맞닥뜨릴 수 있는 제주도에서도 드넓은 초원과 숲으로만 이뤄진 제동목장이 주는 감동은 생경하다. 450만 평이나 되는 목장 안에서 차를 타고 한참을 이동해도 보이는 것은 오직 풀과 나무와 하늘 분이다. 적막이 느껴질 만큼 고요하고 평화롭다.

마치 명화 속 움직이는 새와 나비인 양.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 떼의 한없이 느린 움직임마저 불현듯 낯설다. 청정의 자연 한가운데로 더 깊숙이 들어가 꼬꼬댁 소리가 쉴새없이 울려 퍼지는 닭 농장 앞에 다다르면 이건 ‘별천지’가 따로 없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풍경 앞에서 나머지는 ‘사족’일 뿐이다. 이런 곳에서라다면 닭이 건강할 수밖에 없다. 듣지 않아도 감이 딱 온다.

천혜의 자연을 품은 닭

 
제동목장에서 키우는 육계는 약 5000마리다. 알을 낳는 닭인 산란계는 300마리 정도. 육계와 산란계는 사육하는 방식이 달라 영역을 달리한 땅에서 따로 키우고 있다. 자유를 더 많이 누리는 것은 아무래도 산란계다. 살이 찌면 알을 낳는 능력에 무리가 생기기 때문에 계사 바깥 마당을 자유롭게 오가며 뛰논다. 육계들은 평소에는 방사를 하지만 특별관리가 필요할 때는 계사 안에서만 지낼 수 있다. 구제역이 도는 시기가 되면 전용 복장으로 갈아입은 뒤, 발판 소독을 마치고 육계가 사는 계사 문을 열어 젖혀야 한다. 기자가 찾은 날에는 추수날 오곡처럼 윤기가 차르르 흐르는 털을 자랑하는 닭들이 건초 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다. 숫자는 많지만 공간 역시 꽤 넉넉하다. 햇볕을 쬐던 닭들은 낯선 방문객을 바라보다 곧 무심해진다. 그 몇 분 사이에도 기운이 넘치는 수탉들은 귀청이 떨어지도록 우렁차게 ‘꼬끼오 꼬끼오’를 쉴새없이 소리를 지른다.

“50평 정도 되는 공간에 1000여 마리가 모여 살고 있어요. 한 마리당 0.11m2의 공간을 차지하는 셈인데 친환경 가축 사육 기준에 딱 맞아요.”

제동목장의 황경준 농학박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알고 보면 제동목장에서 사육하는 닭은 세계 최고의 육계용 닭으로 꼽히는 프랑스 브레스 닭과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다. 무항생제 인증을 받은 친환경 사료, 제주의 깨끗한 지하수, 숲 속의 맑은 공기, 수탉과 암탉이 어우러져 사는 자연스러운 생활, 넉넉한 계사 등 사육하는 환경 자체가 올바른 먹거리를 위해 잘 관리되고 있기 때문이다.

동물 복지를 위한 사육

브리티스 컬럼비아대 교수인 존 로빈슨이 ‘평생 고통 받으며 살았던 가축을 먹으면서 그들이 뿜어낸 스트레스까지 먹게 된다’고 주장했을 때 세상은 충격과 공포감으로 술렁댔다. 닭의 사육 환경 역시 피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A4 반장 밖에 안 되는 공간에서 움직이지도 못한 채 오직 식용으로 사육당하며 태어난 지 10일 뒤에는 삼계용으로 20일 뒤에는 백숙욕으로 출하되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는 닭들에게 면역력이란 생길 리 없다. 태어날 때부터 항생제를 수시로 맞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모든 게 무리한 대량생산에 따른 폐해인데 제동목장은 특별한 노하우로 옛 방식 그대로 건강하게 키우는 쪽으로 택하고 있다. 부화부터 출하까지 항생제나 약품을 전혀 사용하지 않다보니 외려 다른 농가보다 폐사율이 높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병아리 때부터 한 계사에서 쭉 생활할 수 있도록 각별히 신경을 쓰죠. 알에서 갓 깨어난 병아리들이 분류니 뭐니 해서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약해지거든요.”

황 박사는 이렇게 설명하며 “동물의 복지를 충분히 고려한 사육 환경을 갖추고 있다”고 자랑한다. 이곳의 닭들은 비록 음식으로 식탁에 오를 운명을 타고 태어났을지언정, 살아있는 동안에는 행복을 보장받는 셈이다.

육질이 차이나는 이유

 
목장의 닭들은 40일 뒤에는 삼계용으로 출하되고 90일 뒤에는 백숙용으로 시장에 나간다. 토종닭이기 때문에 가격은 일반 닭보다 높은 편이다. 대신 맛에서 확연히 우열을 가린다.

“빨리 살찌워서 20~30일 만에 출하되는 닭고기는 살이 퍼석하고 단맛이 적은데 친환경 농법으로 키운 닭들은 육질이 쫄깃하고 단맛이 납니다.”

목장의 계사팀들은 한 목소리로 강조한다. 흥미롭게도 이런 닭들은 외모부터 다르다. 온몸의 털에서 빛이 반짝반짝 나는 것은 물론이요, 살집도 비대하지 않고 딱 적당하다. 도축 후 모습에도 차이가 난다. 껍질 전체에 윤기가 흐르면서 모공이 확실하게 위로 솟아올라 있고 주름도 많다. 또한 살코기가 확실하게 분홍색을 띠며 육질 자체가 두껍고 팽팽하다.

만약 일반 닭은 선택한다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껍질이다. 피하조직으로 순환이 잘 안되는 지방이 가장 많이 붙어 있는 껍질에 항생제나 호르몬제가 남아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껍질을 제거하고 먹는 게 가장 안전하다.

천의 매력을 가진 닭고기

어린 닭일수록 육질의 맛이 좋다는 사실은 ‘영계 백숙’이란 말에서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푹 고아낸 삼계용 닭은 백숙용 닭에 비해 입안에서 스스로 녹아내리는 듯한 맛이 뛰어나다. 그런데 사실 닭은 영계든 노계든 간에 다른 육류에 비해 월등이 부드러운 맛을 자랑한다. 섬유 자체가 가늘고 연하기 때문이다. 또 소고기처럼 지방이 근육 속에 섞여있지 않아 맛은 담백하고 소화흡수가 잘 된다.

닭고기의 가장 큰 매력은 의외로 개성이 강하지 않다는 데 있다. 특징이 강렬하면 조화가 어렵다. 반대로 살짝 밍밍하고 심심할수록 어떤 식재료와도 좋은 궁합을 이룬다. 푹 끓이기만 해도 담백하게 우러나는 닭고기의 감칠맛은 우리네 인삼과도 서양의 토마토와도 어우렁더우렁 잘 어울린다. 덕분에 우리에겐 삼계탕이라는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음식이 탄생했고, 서양에서는 각종 요리에 깊은 맛을 더하는 육수로 사랑받고 있다. 알고보면 닭고기는 각 나라에서 국민 음식 대접을 받는 가장 사랑받는 식재료 중 하나다. 프랑스의 코코뱅, 미국의 치킨 수프와 프라이드 치킨, 일본의 야키도리 등.

신선한 식재료가 요리의 본맛을 결정하듯 닭 요리라고 예외가 아니다. 건강하게 잘 키우는 닭에는 가장 좋은 영양소와 진미가 풍부하다. 이 지점에서 제주라는 천혜의 환경에서 자라는 닭이 더욱 믿음직스러운 건 무엇보다 기본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모든 닭들의 엄마, 아빠 닭인 종계 관리에서 가장 세심한 신경을 씁니다. 모체가 되는 종계가 건강해야 계산 안의 닭들이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을뿐더러 결국 맛있는 육질을 지니게 되니까요.”

핵심은 근본이 건강해야 하니, 근본을 위해 좋은 환경을 유지한다는 이야기. 선순환의 미덕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좋은 식재료를 고르는 일, 닭 한마디를 제대로 고르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선택의 찰나는 사소할지라도 크게는 우리가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한 선순환에 동참하는 일이니까. 아, 지금 이 순간, ‘이 닭고기는 그냥 닭고기가 아니야’라며 알은체를 한다면 깨방정이려나!

저작권자 © 뉴스퀘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