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스토리] 여느날 밤처럼 나는 자전거를 타고 동네의 좁다란 골목길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제법 번듯한 아파트들과 불빛 환환 상가들과 새로 뚫린 널찍한 외곽도로의 한 중간에 섬처럼 낮게 웅크린 가난한 동네. 어릴 때, 친구네 집을 찾다가 미로 같은 이 골목길에서 여러번 길을 잃곤 했다. 이제 겨우 밤 아홉시인데도 모두 잠들었는지 길을 캄캄하고, 조그만 점방 하나 흐릿한 불을 밝힌다.

나는 자전거에서 내려 담배를 사기 위해 다 닳은 엉성한 샤시문을 연다. 합쳐도 10만원이 안될 철지난 과자와 낡은 냉장고, 꼬맹이들의 조잡한 오락기가 몸을 부비는 가게 거기에 딸린 작은 방에 몇분의 동네 할머니들이 이불을 덮고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어느 할머니의 손주일까, 아랫목에 어린 아이 하나 깊이 잠들어 있고, 노인들은 낯선 젊은 손님의 방문에도 별반 반응이 없다. 슬프고도 잔잔한 평화의 기운. 주인할머니에게 셈을 치르고 가게를 나온다. 외등도 없는 낡은 골목길을 다시 느릿느릿 헤맨다. 올려다보면 캄캄한 하늘에 달빛이 뿌우옇다. 사람의 마을에서 몇천년 동안 계속되었을 이 겨울밤의 정경, 흐릿한 불빛, 캄캄한, 그 아래 좁고 낮은 집들의 웅크림.

오늘도 나는 겨우 일어나 출근해 아이들을 가르치고 지역의 일들을 위해 두어군데의 모임과 회의를 다녔다. 몇가치의 담배를 태우며 떠들고 이야기하고, 자못 심각하게 몇마디 하기도 했다. 걱정스런 일들도 있었고, 편안한 일도 있었다. 그리고 이제 하룻동안의 내 육체의 기운이 다해갈 무렵, 피로한 몸을 자전거에 싣고, 밀양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 가난한 골목길을 지난다. 몇 십년 거주하다 다시 어딘가로 돌아가는 지상의 시간, 노동하고, 사랑하고, 피붙이들을 건사하고, 욕망하고, 몸부림치다 어느 순간 스스르 잦아들어가는 인간의 길을 멀찍이 응시해본다.

내가 떠나는 바로 그 순간 멈추어질 기다란, 혹은 아주 짧은 선형의 길. 그 길의 궤적을 파노라마처럼 이어붙이면 그것이 나의 일생(一生)이 되겠지. 하나의 생. 결국 나는 이 세상의 하나의 점이다. 크지도 작지도 않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그저 하나의 점. 단독자로서 나는 외롭지만 따뜻하다. 어느 책에서 본 프랙탈 무늬 결정들의 끝없는 반복처럼, 저마다 하나인 생(生)들이 겹치도 부딪치고 커지고 커져 끝내 이 유한하고 둥근, 지구라고 부르는 한 세계가 되겠지. 결국 우리는 소월이 노래한 것처럼 이 세상의 산(山)에 “갈 봄 여름 없이 피었다가” “갈 봄 여름 없이 지는” 꽃이다.

“꽃이 좋아 산에서 사는” 이 모든 고마운 것들의 은혜로운 사랑으로 나는 이 세계에서 거주한다. 그러므로 나는 내 가장 가까운 테두리 안에서 살로서 부딪히는 일상의 삶을 사랑하게 되었다. 먼 곳의 불빛을 좇아 방황하지 않으며, 그저 내가 뿌리내린 땅에서 누린 이 하루가 내일도 반복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 안정감, 이것을 ‘평화라고 이름붙여 보자. 그러나 나는 세상에 창궐하는 ‘죄’를 보게 되었다. 인간의 죄는 불변의 법칙처럼 죄없는 것을 유린하고 있었고, 이 세계에서 안정감이란 항상 위태로운 것임을 깨달았을 때의 불안감, 그리고 이것이 현실로 드러난 모든 것을 ‘전쟁’이라 이름붙여 보자.

내기 세상의 ‘전쟁’을 처음으로 느낀 것은 6.25 전쟁이나 베트남 전쟁이 아니라, 열여섯, 열일곱살이 되어서 던져진 ‘전쟁 같은’ 입시경쟁이었다. 어리숙하게도 나는 내 친구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스무살이 되면  쟁에서 해방될 것이라 믿었다. 그 후로부터 십수년, 나는 이 일상의 모든 자리가 결국 ‘전쟁터’임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이 전쟁은 청와대에서도, 국정원에서도, 여의도 국회에서도, 검찰에서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이 추악한 전쟁. 이제는 이런 일상조차도 과거로 돌아간 것 아닌가 하는 불행한 의식 속에 살아간다. 한 존재의 부모가 되어, 나를 육체적으로 이어갈 저 어린 피붙이가 곤하게 잠든 얼굴을 들여다 볼 때 느껴지는 처연함을, 그리하여 이 모든 인간의 길이 하나으 영상으로 육박해올 때의 감정을 ‘슬픔’이라 이름붙여 보자.

이계삼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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