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기획③] 박근혜 시대에 부활하는 민영화의 재앙…철도를 갈갈이 찢는 민영화

▲ 전문가들은 철도민영화시, 지난 2011년 광명역 탈선사고보다 더욱 심각한 철도사고의 발생율이 나날이 높아져 갈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사진은 광명역. / 김성호 기자
[트루스토리] 윤한욱 기자 = 날이 갈수록 박근혜 정부의 맨 살이 드러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특히 민영화에 대한 국민적 여론과 반발을 의식해, 교묘하고도 우회적인 방식으로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경쟁 도입’, ‘민간 위탁’, ‘규제 완화’, ‘단계적 매각’ 등의 표현을 동원해서 국민의 눈을 속이고 있다. 철도, 가스뿐만 아니라 의료, 상수도, 공항, 은행 등 다양한 분야의 민영화 정책이 선별적, 단계적으로 추진되고 있거나 추진될 예정이다. 민영화를 막지 못한다면 모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누려야 할 공공서비스에 대한 접근권이 박탈된다. 그 반대편에는 천문학적 규모의 재벌특혜가 존재한다. 그렇지 않아도 팍팍한 서민들의 삶은 민영화로 인해 더욱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며, 사회적 불평등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트루스토리는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민영화의 실체를 짚어보는 기획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당시 “국민적 합의 없는 민영화는 절대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몇 달만에 부정하고 있다. 철도 분할 민영화가 착착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국토부는 철도를 통째로 팔아먹기 전에 ‘돈이 되는’ 수서~대전 간 KTX 신설노선(2015년 개통)부터 쪼개서 민영화하려 한다.

수서발 KTX를 시작으로 한 모든 철도를 쪼개기

국토교통부는 지난 6월 ‘철도산업 발전전략’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수서발 KTX 운영회사의 분리를 시작으로 철도공사를 여섯 개 이상의 자회사로 쪼개고 일부노선은 민간에 넘긴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수서발 KTX 자회사에는 국민연금 투자를 추진하므로 민영화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작 국민연금공단조차 ‘금시초문’이라는 입장인데다가, 국민연금은 언제든지 빠져나갈 수 있게 보장돼있다. 회사 세울 돈도 없는데도 어떻게든 민영화만을 위해 최소한의 자금을 철도공사가 내도록해서 자회사 설립부터 강행하겠다는 것이다.

민영화에 반대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높자, 눈속임을 통해 단계적으로 민영화를 관철하려는 의도다. 연금기금 등으로 채워져 있는 정부 지분은 언제든지 매각 가능하다. 더구나 연기금은 언젠가는 노인들에게 지급되어야할 금액이라 묶어 놓을 수도 없다. 이미 2002년 한국통신이 이런 식으로 완전 민영화됐다.

자회사로의 분할 방식은 수서발 KTX에서 시작해서, 이후 신설될 원주~강릉 노선 등 4개 노선이 모두 철도공사와 분리된다. 또한 충북선, 경북선, 영동선 등 기존 적자노선들은 제3섹터(지방정부 합작), 혹은 민간자본이 참여하는 운영자를 선정하겠다고 한다는 계획이다.

나아가 물류, 차량정비, 시설유지보수 등의 업종도 2014~2017년 사이에 철도공사의 자회사인 별도 회사를 설립하겠다고 한다. 결국 철도를 갈갈이 쪼갠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보다 한층 더 나아간 파격적인 안이다. 전국이 연결된 네트워크인 철도를 쪼갠다면 당연히 효율성도 떨어진다. 회사가 늘어나니 국토부 관료들이 차지할 사장과 관리자 자리, 관리비용만 늘어날 것이다.

경쟁 체제 도입의 허구성

정부는 “철도산업은 국가가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수익이 안 나고 비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하지만 무엇보다 보편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기업은 수익을 내려고 설립된 게 아니다.

비효율성의 근거라는 철도공사의 적자 문제부터 보자. 본래 정부는 공공철도 운영에 대한 재정 보상의 책임을 갖는다. 장애인이나 노인 이용료에 대한 할인, 적자선 유지비용 등이 그렇지만, 정부는 매년 수백억원의 비용을 철도공사에 떠넘겼다. 또한 경부고속철도 건설 부채(4.5조원)가 철도공사로 전가되고, 인천공항철도를 인수(1.2조원)하면서 부채가 급격히 늘어났다. 결국 정부가 책임을 다하지 않아서 발생한 부채다.

지주회사와 자회사 사이에 경쟁을 시키겠다는 발상도 괴상하지만, 기본적으로 철도 산업은 경쟁이 성립하기 매우 어려운 특성이 있다. 요금이나 서비스에 조금 차이가 나더라도, 철도를 이용하는 시민들은 자신이 가까운 역에서 제 시간에 출발하는 열차를 탄다. 따라서 신규 사업자의 참여는 경쟁이 아니라 수익을 ‘나눠먹는’ 셈이 된다. 수서발 KTX 역시 강남·수서 등의 수요를 흡수하면서 지역별 독점 체제가 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철도의 노선과 업무를 분할하는 것 자체가 비효율적이고 위험하다. 철도는 궤도, 차량, 인력 시스템이 유기적인 관계를 갖는다. 열차 운행의 안전성과 수송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선로, 차량규격, 신호, 통신 방식이 일치해야 하며 관제, 열차, 역사, 시설관리 등의 기능을 통합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별개의 회사가 철도를 운영하게 되면 이러한 시스템에 혼란이 생기고 사고가 크게 늘어난다. 실제로 철도를 100여개의 기업으로 쪼갠 영국에서는 사고가 급증했다. 한국철도의 영세한 영업거리를 감안할 때, 분리로 인해 효율성이 증가하기 보다는 비효율적인 거래비용만 증가할 것이다.

정부는 수서발 KTX가 개통되면 기존 KTX보다 10% 낮은 가격으로 운행될 예정이라고 선전한다. 그러나 KTX만 따지면 현재보다 10% 정도 요금을 낮추는 건 어렵지 않다. 그 동안 KTX 요금으로 일반 지선에서 발생하는 적자를 메웠기 때문이다.

당장 수서발 KTX는 인하된 가격으로 운행할 수 있다 해도, 결국 다른 노선의 요금은 인상될 것이다. 국토부는 보고서를 통해 현재 사용료가 획일적으로 책정되고 있으므로 열차운행 당 사용료 체계로 재편함과 동시에 선로 사용료를 ‘현실화’(=인상)하겠다 밝히고 있다.

이미 적자로 운행되고 있는 지선을 철도공사에서 분리할 경우 요금 인상은 필연적이다. 보조금을 줄이기 위해 지역철도를 민영화한 국가들의 사례는 대부분 요금을 인상하거나, 노선 폐지로 이어졌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민영화된 철도회사가 비용 감축을 위해 택할 선택지는 그다지 많지 않다. 철도공사는 이미 여러 차례의 구조개편으로 인력 감축, 외주화가 상당히 진행되어 비정규직 비율이 높아지고 노동강도가 무척 강해졌다. 지난 몇 년 동안 대부분의 노선에 1인 승무제가 도입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인건비의 추가적인 축소는 노동강도 더욱 심각한 강화와 함께 승객들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게 될 것이다.

인력 감축, 시설 투자 회피로 인한 안전사고는 이미 철도 민영화가 진행된 여러 나라에서 현실로 드러났다. 지난 6월 13일에는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인근에서 열차 추돌 사고가 발생하여 3명이 사망하고 3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철도 민영화 이후 관리 소홀, 투자 부족으로 매년 대형 철도 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다.

영국 철도는 1995년 민영화 이후 분할, 하청 체계가 복잡하게 얽혀 100개가 넘는 민간회사가 철도 산업에 참여하고 있다. 영국에서도 아르헨티나와 같이 끔찍한 열차 탈선 사고가 여러 차례 발생했다. 그 외에도 잦은 연발착, 급격한 요금인상, 열악한 차량 설비 등 문제 때문에 시민들의 불만이 치솟았다.

결국 영국 정부는 인명사고가 끊이지 않자 시설․운영 회사인 ‘레일트랙’의 부채를 인수하고 공공재단으로 전환시킬 수밖에 없었다. 숱한 인명피해를 뒤로하고 철도 민영화의 실패를 선언한 것이다.

국토부는 이번 철도산업 발전전략이 ‘독일식 지주회사 모델’이라 발표하며 영국식 분할 민영화와는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독일의 지주회사 모델도 사실은 독일 정부가 계획했던 철도 민영화의 중간 단계이다.

독일의 철도 민영화 역시 많은 폐해를 낳았다. 독일은 철도를 민영화한 이후 10년이 지나는 동안 3만 9000명의 철도공사 직원을 1만 9000명으로 줄였다. 정리해고의 칼바람에 살아남은 노동자들은 훨씬 더 심한 노동강도 속에서 일을 해야 했다. 같은 시기에 고위 임원의 임금은 치솟았다. 현장 인력이 부족한데다 철도 시설에 기술적 문제가 발생해도 자회사들이 관련 기관에 보고를 하지 않으면서 열차 탈선 사고, 운행 중단이 잇따랐다.

이러한 사례들이 보여주는 사실은 분명하다. 분할 민영화를 통한 비용 절감은 시민들과 노동자의 목숨을 담보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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