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기획④] 박근혜 시대에 부활하는 민영화의 재앙…가스·전력 민영화 : 재벌을 위한 에너지 산업 재편

[트루스토리] 윤한욱 기자 = 날이 갈수록 박근혜 정부의 맨 살이 드러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특히 민영화에 대한 국민적 여론과 반발을 의식해, 교묘하고도 우회적인 방식으로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경쟁 도입’, ‘민간 위탁’, ‘규제 완화’, ‘단계적 매각’ 등의 표현을 동원해서 국민의 눈을 속이고 있다. 철도, 가스뿐만 아니라 의료, 상수도, 공항, 은행 등 다양한 분야의 민영화 정책이 선별적, 단계적으로 추진되고 있거나 추진될 예정이다. 민영화를 막지 못한다면 모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누려야 할 공공서비스에 대한 접근권이 박탈된다. 그 반대편에는 천문학적 규모의 재벌특혜가 존재한다. 그렇지 않아도 팍팍한 서민들의 삶은 민영화로 인해 더욱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며, 사회적 불평등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트루스토리는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민영화의 실체를 짚어보는 기획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올 여름, 언론에는 연일 전력대란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전력 소비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과 함께 절전 캠페인도 활발하다. 그러나 전력공급 불안정의 주요한 원인은 따로 있다. 바로 지난 10여 년 동안 추진되어 온 전력산업 민영화 정책이다.

발전 사업에 민간 기업의 참여를 보장하는 ‘우회적 민영화’가 꾸준히 진행된 결과, 2001년 15% 안팎이었던 전력공급 예비율은 2011년에 5%로 떨어진다. 이 정도면 한국 사회가 만성적인 전력수급난에 처해 있다고 볼 수 있다. 핵발전소 한두 개만 고장이 나도 바로 전력수급비상단계에 돌입해야 하는 수준이다.

전력난의 배후, 민영화

 
공급 예비율이 떨어진 것은 발전소 건설이나 운영을 약속했던 기업들이 사업을 중도에 포기하기 때문이다. 민간발전의 비율은 2012년 총 발전설비 용량의 10.2%에 달한다. 민간 발전회사들은 이윤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판단할 때는, 국민들이야 어떻게 되든 마음대로 사업을 중단한다.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아등바등해야 하는 것은 한국전력공사이다.

2011년 9월15일의 대규모 정전사태는 전력 부족 문제를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 전력민영화가 대규모 정전사태를 불러온 사례는 외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98년 미국 내에서 최초로 전력 시장을 완전히 민영화한 캘리포니아는 2001년 1월부터 5월까지 여러 차례 정전 사태와 계엄령 선포를 반복했다. 전력사업에 뛰어든 민간 기업이 비용 문제로 새로운 설비투자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민간 기업들은 전기요금을 올리기 위해 ‘전략적으로’ 발전소 가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결국 캘리포니아 주 정부는 파산한 전력기업들을 구제하고 전기료를 50%까지 인상하고 만다. 스웨덴, 노르웨이,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비슷한 사태가 반복되었다.

더욱 황당한 사실은, 전력난 속에서 민간 발전회사가 평소보다 훨씬 더 높은 수익을 보장받게 된다는 것이다. 한전이 각 발전사들로부터 구매하는 전기 가격은 같은 시간대에 공급되는 전력 중에 가장 비싼 원료로 생산된 전력의 가격이다.

전력을 가장 많이 쓰는 피크 시간대에 생산원가가 높은 벙커C유 발전소를 가동해 전력을 생산하면, 같은 시간대에 가동된 LNG발전소도 같은 가격을 받는다. 예를 들어 지난해 8월에는 늘어난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원료 값이 가장 비싼 디젤발전기까지 가동되자, 전력의 시장가격이 두 배 가까이 치솟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발전 공기업의 경우 ‘보정계수’를 적용하여 이윤을 한전으로 회수하는 제도가 존재하지만, 민간 기업들은 최대가격으로 책정한 이익을 그대로 가져갈 수 있다.

전력이 부족해 전 사회가 불안에 떨고 있는 동안 민간발전소는 짭짤한 고수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작년에 한전이 핵발전소 가동 중단 등으로 인해 대규모 적자를 보는 와중에도 민간발전소는 9000억원이 넘는 이익을 챙겼다.

그런데도 정부는 전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민자발전소를 대규모로 증설하는 방향의 대책을 내놓고 있다. 올해 2월에 발표된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건설 예정인 발전소 18개 중 12개가 SK건설, 삼성물산 등의 재벌 소유 발전소이다.

한편 전력 공급이 불안정해지면 정부가 택하는 가장 쉬운 대책이 바로 전기 요금을 올리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임기 동안 네 차례나 전기료를 인상했다. 블랙아웃을 대비한 고육책이라는 발표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인상된 비율이 총 19.6%에 이른다.

그러나 전기 요금의 경우에도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산업용이다. 전체 전기 사용량의 55.3%를 차지하는 산업용 전기요금은 생산원가의 90%도 안 된다. 기업에만 전기를 낮은 가격으로 공급하는 것은 에너지 낭비를 권장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최근엔 블랙아웃을 막기 위해 전력을 아끼는 만큼 정부가 돈을 주는 절전지원금 제도까지 시행하고 있다.(지난해만 4천억원)

재벌 대기업들은 민자발전을 통해 고수익을 올리고, 원가보다 싼 가격에 산업용 전력을 마음껏 공급받아 사용한다. 여기에 더해 전기를 절약하면 또 절약하는 만큼 지원금을 받아먹고 있다. 물론 그 부담은 일반 시민들에게 전가된다.

가스까지 재벌에 넘기는 새누리당의 법 개정안

2000년대 초반 가스의 분할 매각이 중단되자 정부는 가스 산업에 민간사업자의 비중을 슬며시 늘려왔다. 천연가스를 100% 수입에 의존하여 조달하는 한국에서 한국가스공사는 가스를 수입하여 각 지역 도시가스사 및 대량 수요자(발전소, 민간 기업)에게 공급한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부터는 천연가스 대량수요자(기업)의 한해 자신들이 쓸 천연가스를 직수입하는 것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국제시장에서의 천연가스 구매 가격은 협상 시점, 물량, 계약 기간, 도입 패턴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다르게 결정된다. 따라서 한국에서 사용할 천연가스를 가스공사와 민간 직수입자들이 경쟁하여 도입할 경우, 한국 회사들 사이의 경쟁으로 인해 오히려 도입 가격이 인상된다.

기업들은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장기계약보다 단기계약에 의존하는데, 구매 물량이 줄어들면서 협상력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2006년 국정감사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06년까지 7년간 가스 민영화로 인해 발생한 국부 손실은 무려 17조 6000억원이다.

그런데 민간사업자들에게 천연가스 직수입의 길을 열어준 것에 더해 물량의 교환, 판매까지를 보장해주는 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10여명의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이 지난 4월 발의한 ‘도시가스사업법 일부개정안’에 따르면 향후 민간재벌이 “수급 안정 및 일정사유 발생 시 직수입자간, 해외, 가스도매사업자에게 판매 가능”해진다. 결국 에너지 재벌이 공기업인 가스공사를 제치고 가스공급을 좌지우지할 자격을 갖게 되는 것이다.

철저히 수익의 논리에 맞추어 움직이는 민간기업은 가스 가격이 싸면 구입 양을 늘리고, 비싸면 대폭 줄여 위험을 모면한다. 그 위험은 국민의 재산인 공기업에 전가된다. 가스공사는 부족한 물량을 채워주고, 남는 물량을 처리해주며 국내 천연가스 시장 전반의 수급안정 역할을 담당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2007년 국제적으로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하자 GS는 직수입을 포기하고 가스공사에 물량을 요청했다. 갑작스레 늘어난 GS의 수요 충당을 위해 가스공사는 단기 시장에서 비싼 계약을 체결해야 했다. SK는 당시에 3개월간 발전소 가동을 멋대로 중단해 버렸다. 이로 인해 다른 발전소는 가동률을 높여야 했다. 예상치 못했던 발전용 수요가 높아지자 도시가스 부족 사태까지 발생했다. 전력처럼 가스에서조차 수급불안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가스공사가 천연가스 수급 불안을 관리하는 역할을 떠맡으면서 들어가는 추가 비용은 지금도 어마어마하다. 천연가스 직수입제도 개정안이 도입되면 민간 직수입자들이 국내 산업용 가스의 주요 공급자가 된다. 공기업인 가스공사 운영에만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결국 가정용 가스 요금 인상으로 이어진다.

이미 가스민영화가 완료된 일본의 도시가스 요금은 평방미터당 2199원으로 847원인 한국보다 두 배 이상 비싸다. 치솟는 가스비에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 것은 난방비 부담에 떨어야 하는 서민들이다. 정부와 새누리당의 천연가스 민간 직수입제도(도시가스사업법 개정), 곧 가스 민영화는 에너지 재벌들만을 위한 것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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