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를 강요당하고 있는 밀양 주민들

 
밀양 주민들이 위험하다. 이제 나흘 째인데, 주민들은 지금 너무 힘들다. 나흘 째 노숙을 하면서 주민들의 건강은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다. 주민들은 어떻게 하든 이 송전탑 공사만큼은 막아야 하기 때문에 누렇게 익어가는 나락을 버려두며, 출하하지 못해 비닐하우스에서 시들어가는 고추를 바라보며, 일년 농사를 망칠 걱정에 전전긍긍하며 지금 산에서 노숙하고 있다. 밤이 디면 급격히 떨어지는 기온에 추위로 벌벌 떨며 잠을 잔다. 한쪽에서는 포크레인이 땅을 파고, 헬기가 쉴새없이 날아 자재를 실어나르는 모양을 지켜보며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다.
 
여든 한살 할머니가 손주뻘 경찰과 몸싸움을 하다 손과 팔에 피멍이 들고, 피가 난다. 벌써 11명이 산을 오르다 탈진해서 쓰러지고, 온몸에 피멍이 들고, 허리를 다치고, 몸싸움을 하다 쓰러져 구급차 신세를 졌다. 지금 4명이 입원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4명이 단식중이고, 서울 대한문 앞에서는 2명이 단식을 하고 있다. 환자 발생 속보가 전해질 때마다 주민들은 덜컥 놀라는 가슴을 쓰러내려야 한다. 공포의 릴레이다. 다수가 고령의 노인인 대치 현장에서 공권력은 아무렇지도 않게 주민들을 밀어붙이고 있다. 음식물 반입도, 통행도 제한된다. 무엇보다 주민들이 극단의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도록, 분노를 강요당하고 있다. 주민들의 건강과 생명은 위협당하고 있다.
 
경찰의 인권유린은 기가 막히다. 경찰은 주민들의 안전을 지켜주기 위해 공권력 투입에 이르게 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주민들이 보기에 지금 주민들의 안전에 가장 큰 위협이되는 존재가 바로 경찰이다. 126번 현장에서 10월1일 첫날 단식을 시작한 김영자 님은 당시에는 건강이 그리 나쁘지 않았음에도 담요로 둘둘 말아 강제로 이송당해야 했다. 그리고 지금 그곳의 두 명 단식자들은 아무런 보호조치를 받지 못해 맨바닥에 누워 단식을 진행하고 있다.
 
10월1일 밤 89번 진입로 대치선에서 주민들은 오랜 시간 불빛도 없이 캄캄한 상태에서 있어야 했다. 경찰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날 밤에만 기자, 전경을 포함하여 5명이 1m가 넘는 고랑에 수차례 빠져 부상을 당했다. 고랑 밑엔 뾰족한 바위가 있어서 잘못 떨어졌을 경우 큰 부상으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상황이 수차례 발생했고, 유도봉(교통정리할때 쓰는)이라도 설치하라는 주민들의 지속적인 항의를 받고서야 겨우 2개를 갖다놓았다. 주민들의 진입을 막는데만 정신이 팔려 어두운 밤 산속에서 노숙하는 주민들의 안전에 대해선 아무런 고려도 하지 않았다.
 
경찰은 모든 현장으로 진입하는 도로를 이중, 삼중, 사중으로 막아서고, 현지 주민들의 통행조차 봉쇄하고 있다. 경찰은 텐트를 쳐 놓고 그 안에서 자면서 주민들이 천막을 치려하자 천막을 빼앗아버렸다. 상동역에서 단식하고 있는 박정규 금호마을 이장님이 비를 피하기 위해 천막을 치려고 하자 경찰에게 압수당해 비를 맞으며 단식을 해야 했다.
 
126번 현장에서 갑상선 수술을 받은 적 있는 신난숙 님이 급히 산으로 올라오는 통에 약을 챙겨오지 않아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졌지만, 현장에는 아무런 의료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때마침 현장을 방문한 연대 단체의 회원이 수액을 챙겨오지 않았더라면 자칫 위험한 상황에 놓일 뻔도 했다. 126번 현장에서 주민들이 라면이라도 끓여먹으려고 불을 피우자 산불 위험이 있다면서 소화기로 불을 꺼 버렸다. 법집행이 아니라 주민들을 자극하고, 기를 꺾고, 그래서 싸움을 포기 하게 하기 위핸 극악하고 반인륜적이기 이를데 없는 처사이다.
 
현장에 파견된 국가인권위 조사관들은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조사하고 시정을 권고하기는커녕, ‘권한이 없다’ ‘조사를 해 봐야 한다’는 하나마나한 소리를 하면서 무기력하기 이를데 없는 처신으로 주민들로부터 ‘인권위가 여기 뭐할라고 왔노’ 하는 볼멘소리를 듣고 있다.
 
보수 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밀양 송전탑 현장에 ‘외부세력’이 들어와서 과격시위를 주도하고 있다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시위 현장에서 주민은 10%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관계와 완전히 다른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밀양 주민들이 왜 이렇게 목숨을 걸고 투쟁하고 있는지, 왜 전국의 시민들이 밀양 어르신들을 돕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와야 했는지, 왜 헬기장으로 진입하고, 경찰과 마주서서 행정대집행을 막아서야 했는지 그 절박한 이유에는 관심이 없다.
 
밀양 송전탑 공사 현장에 함께 연대하고 있는 이들은 여러 정당 시민단체 회원, 종교인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지난 2년간 밀양 송전탑 현장을 직접 다녀가면서 밀양 어르신들을 알게 되었고, 공사 강행 소식을 듣고 자발적으로 밀양을 찾아온 분들이다. 엄청난 공권력으로 현장을 봉쇄하고 통행제한, 음식물반입차단, 어르신들에 대한 모욕적인 행태 등 갖가지 인권 유린에 맞서 어르신들을 도우려는 자발적인 노력이다. 밀양송전탑 공사 강행의 부당함을 알고 어르신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연행을 각오하고 어르신들을 주민들과 연대하려는 눈물겨운 노력을 사실관계를 왜곡하며 밀양 송전탑 싸움의 본질을 가리는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는 이들에게 밀양 주민들은 분노를 느낀다.
 
우리는 묻고 싶다. 지금 밀양 송전탑 공사를 강행해야 하는 시급한 이유가 있는가. 조석 한수원 사장이 밝힌 것처럼 UAE에 수출하기로 했다는 핵발전소 계약서에 명시된 계약 조건 때문인가. 자신들의 과오로 조성된 전력수급 위기의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서인가. 신고리3호기 제어케이블이 만약 11월까지 예정된 부품 테스트에서 불합격판정을 받아 완공이 2년 가까이 더 연기되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밀양 주민들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도대체 밀양 주민들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를. 왜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밀양 땅으로 달려와서 함께 싸우는 이들을 잔인하게 매도당해야 하는지를.

김준한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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