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스토리] 

김형준 편집위원 

광주의 이야기는 늘 5월에만 나왔다. 그때는 여름보다 뜨거웠다. 전국이 광주를 바라봤고, 세계도 광주에 집중했다. 광주는 뿌듯했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누가 정권을 잡고 있더라도 광주시민이라는 게 자랑스러웠다. 항상 5월에는 광주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야만 했다. 광주에서 흘린 피는 상상을 초월했고, 그렇게 역사적으로 광주는 민주화의 성지가 됐다.

광주를 향한 ‘난산’이니 ‘삼고초려’니 하는 말도 심심찮게 새어나오기 시작했을,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소위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 광주는 폐허의 도시가 됐다. 외딴 섬이 됐다. 혹자의 표현대로 진짜 ‘전라민국’이 됐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 들어서 광주의 이야기는 수시로 나왔다. 제법 많이 언급되고 있다. 어쩌면 매일 화두가 되는 느낌이다. 그런데 긍정적 이야기가 아니다. 온통 부정적 이야기다. 각종 범죄 사고도 유독 광주에서 많이 발생한다(그렇게 보도하는 것이지만).  보수언론, 종편 그리고 여권 나아가 특정 인터넷 사이트를 중심으로 광주는 놀림의 대상이 되고 있다. 부끄럽게 표현하자면 쿠테타는 혁명이 됐고, 그 곳의 뜨거웠던 항쟁은 미친 간첩들의 광적인 소요가 됐다.

당시 죽어가는 시민은, 그리고 그들의 지지를 받았던 대통령은 조롱의 대상이 됐다. 역사왜곡의 시대가 바야흐로 도래한 것이다. 인터넷에서 ‘5·18 광주민주화 항쟁’을 북한군 소행이라고 비방한 혐의로 기소된 속칭 ‘전사모(전두환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 회원들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됐다. 돌이켜보면 그때 그 봄에 있었던 그 엄청난 사건은 지금껏 한 차례도 속 시원히 그 진실이 규명된 적이 없었고 입에 오르내려져서는 안 되는 금기의 대상으로써 우리의 가슴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런 광주문제는 지난 여러 선거과정을 겪으면서 새로운 쟁점으로 부각되었고 지역감정이라는 참으로 우려스러운 문제를 노정하게 되자 이명박 정부에서 풀지 못한 이 엄청난 숙제를 박근혜 정부에서 풀어야 하는 당면과제가 돼 버렸다. 그러나 막상 이 같은 중대한 과제를 떠맡은 새 대통령은 호남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탕평을 외쳤지만, 공약을 수첩에서 지워버리듯, 광주도 뇌리에서 지워버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런 광주는 대통령을 향해 대선과정의 진실을 말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통합진보당 사태, 국가권력 기관들의 대선개입 등의 사태들을 보면서 이제 바야흐로 우리는 역사적 전환기의 중심에 또다시 서있다는 느낌이다. 마치 항쟁이 일어날 분위기다. 하지만 기득권층은 또 다른 광주항쟁을 바라지 않고 있다. 때문에 공안탄압과 같은 중세기적 공포정치를 통해 정권을 유지하려 한다.

그러나 속임수로 국민의 눈을 속이고 귀를 멀게 할 단계는 이미 지났다. 비록 강도 높은 야권 탄압에 따라 향후 각종 선거에서 야권의 단일화가 정상적으로 이뤄질지는 미지수이지만, 천주교 정의평화사제단과 같은 사심 없는 단체에서 대통령 선거가 부정선거라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가운데 야권에 쏠렸던 국민의 변혁의지는 한시라도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그리하여 숱한 정치권력의 들러리 자문기구로 전락한 검찰과, 지대한 관심사를 호도하고 희석화시키는 시녀노릇을 하고 있는 일부 수구보수언론을 향한 엄한 심판이 있어야 한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고 광주는 오늘도 눈물을 흘리며 외치고 있다. 1980년 5월의 광주는 보호받을 정부도, 요구할 주권도 없었다. 광주는 대한민국이 아니었다. 학살과 통제와 두절로, 슬픔과 분노만이 가득찬, 버려진 외딴 섬이었다. 살려달라고 절규해야 했던 죽음의 섬이었다. 서울은 봄이었고, 경상도에는 눈부신 햇살이 평화롭게 꽂혀내리고 있었지만, 광주시민들의 얼굴은 처참히 붕괴됐고, 여성들의 가슴은 칼로 잘려 나갔다.

그때 정부로부터 버림받았던 기분은 지금도 이명박 그리고 박근혜 정부에서도 현재진행형이다. 광주시민들은 5월이 되어야 아팠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만날 아프다. 상처 때문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은 내년에 아무런 탈없이 할 수 있을까. 단절감은 더 커지고 있다. 광주는 세계의 모범적 도시가 되고 있는데, 유독 한국의 기득권 세력과 친일 세력들은 광주를 빨갱이의 도시로 전락시키기 위해 올인하고 있다.

그리고 광주는 여전히 투쟁의 모델이 되고 있다. 그렇게 광주정신도 사라져가고 있다. 광주와 관련된 모든 온라인 기사들은 비아냥으로 도배돼 있다. 누군가 조직적으로 하지 않는 이상 그럴 수 없다. 광주를 외톨이로 만들고 있는 현실이 너무 슬프다. 서울대 법학대학원 조국 교수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홍어 택배’로 비하한 일간베스트 저장소를 겨냥 “극우사상에 사로잡혀 5·18 희생자에 이어 입관된 DJ를 모욕하는 일베충들은 이승만 치하 백색테러조직 ‘땃벌레단’, 박정희, 전두환 치하 고문경찰들의 사회적 후예임에 틀림없다”고 일갈했다. 이어 “쓰레기 같은 언동을 하는 쓰레기들은 언제 어디서나 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국가권력자의 언동에서 이 쓰레기들의 언동과의 공유점이 확인된다는 점”이라며 현 정권도 겨냥했다.

 
요즘 상황을 보면 더욱 안타까운 것은 수면 아래로 사라져버린 광주시민들의 광주정신이다. 물론 보수 정권의 역사왜곡과 진보세력에 대한 탄압의 일환 때문이다. 중·고등학생들은 5·18과 6·25를 혼동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독도문제에 대해선 발끈하지만, 5.18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게 요즘 청소년들이다. 그 속에서 광주 시민들을 분노케 하는 것은 광주항쟁을 더욱 더 폄훼하고 왜곡하려는 음모이다.

이명박에 이어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이 같은 음모는 더 구체화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이런 3류 허섭스레기와 같은 기조가 남은 임기 동안 존재하는 한, 다시 말해 광주정신을 모독하고 민주주의를 철저하게 유린하는 한, 저 오래된 기억 속의 5·18은 끝나지 않을 것이고, 광주는 또다시 분노의 함성을 내지를 질도 모른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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