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근골격계질환 업무광련성 평가 시트 개정 투쟁

22년 6개월 동안 수작업 검사와 나사 조임과 푸는 작업을 반복했던 노동자가 손목 부위에 건초염이 발생해 산재 신청을 했다. 주치의, 근로복지공단 자문의도 손목 부위에 과도한 작업부하가 초래될 수 있는 업무라고 소견을 밝혔다. 결과는 불승인이었다.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제시한 이유는 ‘상병에 대한 객관적 증거가 없다’는 단 한 줄 뿐이었다.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는 어깨 부위 회전근 파열로 산재를 신청했다. 근로복지공단 자문의는 모두 상병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평가를 작성했고, 결과는 불승인이었다. 하지만 대학병원 다섯 곳 전문가 모두 방사선 필름을 판독한 결과 어깨 부위 파열이 확인된다고 진단했다.

농식품 매장에서 매일 4시간 이상 10~20kg에 달하는 물건을 취급하며 12시간 넘게 서서 일하던 노동자는 허리 통증이 발생해 산재를 신청했다. 근로복지공단 담당자는 현장조사도 하지 않은 채 현장조사시트를 작성했다. 재해 당사자인 노동자가 작성한 노동 자세, 조건 어느 것 하나 반영되지 않았다. 역시 이 노동자도 산재 불승인 판정을 받았다.

불승인, 불승인, 불승인 남발

 
노동자들의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산재 불승인이 남발하는 것은 객관성 없는 현재 판정 제도 때문이다. 산재판정기구인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심의회의에서 판정에 걸리는 시간은 평균 10분이다. 심지어 판정 위원 7명 중 근골격계질환 관련 전문성을 가진 사람은 두 명에 불과하다. 비전문가가 짧은 시간 안에 병든 노동자들의 운명을 결정하고 있다.

최소한 이들이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자료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 근로복지공단의 의무다. 이 또한 지키지 않고 있다. 근골격계 질환의 경우 2006년 65%였던 산재 승인률이 현재 약 45%로 급감했다. 11월5일부터 민주노총과 금속노조가 근골격계질환 시트 개정을 요구하며 노동부가 있는 과천 정부청사 앞에서 농성을 하는 이유다.

‘근골격계질환 업무관련성 평가 현장조사 시트(아래 조사 시트)’는 노동자들이 업무로 인해 병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객관적 자료다. 산재 신청 후 근로복지공단 현장조사 시 사용하는 조사표다. 현장조사를 해야 노동자가 어떤 작업 환경에서 얼마나 신체 부담을 겪었는지 확인이 가능하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기본적인 현장조사 자체를 실시하지 않고 있다. 현재 현장조사는 24% 수준밖에 진행되지 않는다.

기존의 조사 시트는 판정 위원이 주관적,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있다. 목, 어깨, 손목, 허리, 무릎 등 주로 고통을 호소하는 신체 부위에 대해 업무 부담 요인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는 조사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예를 들어 목 디스크의 경우 목 부위를 앞, 뒤로 움직이는 각도만 평가한다. 그 외에 목 회전, 좌우로 움직이는 자세, 시간 등은 고려하지 않는다.

전문가도 없고 현장조사도 없고

항목 조사를 토대로 1~5단계(매우 부담됨, 어느 정도 부담됨, 업무부담 정도가 1/2 정도임, 어느 정도 부담 없음, 거의 부담 없음)로 분류하는데, 이에 대한 기준도 없다. 업무 부담이 ‘어느 정도’인지, ‘1/2’인지 객관적으로 답할 근거가 없다는 것. 주관적 판단이 가능하게 하는 부분이다. 또한 업무부담정도를 판단하는 전문가 평가를 근로복지공단 자문의가 하는데, 이들 중 90%는 노동자들이 어떻게 일하고 병드는지 모르는 임상의다.

이같은 내용을 개선하기 위해 민주노총은 지난 3년 동안 ‘산재보험 제도 개혁을 위한 노사정 TF’에 참여했다. 근거없는 불승인을 바로잡고자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운영 개선, 업무상질병인정기준 개선, 현장재해조사 강화 등을 논의했고 개선 제도를 시행해오고 있다. 마지막으로 진행하던 것이 조사 시트 개정이었다.

개선 시트를 계량화 된 기준을 도입해 업무상 신체부담을 국제 기준에 따라 평가하도록 했다. 항목을 체크하면 점수가 산출되고, 1점은 업무부담 없음, 2점은 정밀조사 필요, 3점 업무부담 높음의 결과가 나온다. 약 5백 여 건의 산재신청 내용을 조사 시트에 도입한 결과, 신체부담작업의 업무관련성이 현행 시트는 약 40%인데 비해 개정 시트는 80%가 넘었다.

기존 시트는 어떤 항목에 답해야 할지 내용도 명확하지 않았고 시트 조사 결과도 재해 노동자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개정하려는 시트는 노조 간부, 재해 노동자가 직접 체크할 수 있고 결과를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쉽다.

객관적 판단 근거 만들자

노동자들이 개정을 요구하는 내용은 간단하다. 노동자가 일하다 병든 원인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치료받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라는 것. 하지만 이러한 조사 시트 개정에 제동이 걸렸다.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이 개선안을 반대하고 나섰다.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도 ‘파장이 우려된다, 노사합의가 안돼 부담스럽다, 현장에 적용하기 어렵다’며 반대하고 있어 무산될 상황에 놓여있다.

박세민 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개정 시트를 사용해 현장조사를 하면 지금처럼 주관적, 자의적으로 불승인 판정을 할 근거가 사라진다. 노동부는 산재발생률을 현상태로 억제하기 위해 대책 마련이나 개선의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라고 현 상황을 비판했다.

근골격계질환은 노동자가 많은 일을 해서 생기는 질병이다. 박 실장은 “노동자들은 높은 노동강도로 착취받으며 병들고 있다. 작업조건 개선, 노동강도 저하, 인력충원 등 현장의 개선 요구와 직결될 수밖에 없다”고 이 투쟁의 의미를 설명했다. “2004년 산재보험제도개악을 시작으로 10년 동안 노동자들이 밀려왔고 병든 노동자들이 억울하게 산재불승인을 겪었다. 이번 투쟁은 노동자 건강 투쟁의 10년을 좌우하는 싸움이 될 것이다”라고 의미를 두었다.

=강정주 금속노조 편집부장 /사진출처=금속노조

저작권자 © 뉴스퀘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