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광고시대] 수출제일, 국부, 세계화의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1976년 최초의 한국형 승용차 포니를 시판한 이래 1989년 단일차종(엑셀) 수출 누계 100만대를 돌파했다. 미국 시장에서 누렸던 일본차들의 지위를 현대자동차가 차지하면서 2012년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매출액기준 9위를 차지하는 양적 성장을 했다.

미국시장에서 빈민층이나 사는 ‘저렴한 자동차’라는 인식에서 중산층이 선택하는 3천CC급 이상의 ‘합리적인 자동차’ 라는 브랜드까지 질적 성장을 이뤘다. 이 정도면 아무리 현대자동차라는 회사를 비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라도 현대차가 이룬 놀라운 성과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 미국앨라배마, 러시아, 체코, 인도, 브라질 등 세계 곳곳에 현지 생산공장을 경영하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이 돼 가고 있는 현대자동차가 최근 내보낸 TV광고의 한 장면은 이렇다.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유치원 선생님, 등교하고 있는 여고생, 공부하고 있는 대학생에게 앞뒤 없이 질문을 던진다.

“글로벌이란 뭘까요?” 질문은 받은 사람들은 깊은 생각 없이 한마디씩 던진다. “세계화?” “해외진출?” 그리고 이어서 “599개 부품회사와 함께 세계시장 진출”이라고. 최근 방송에서 자주 나오는 현대자동차의 ‘더 낳은 미래를 위한 동행’이라는 소위 기업PR광고다.

쉬운 듯 어려운 이 광고 캠페인에서 현대자동차가 하고 싶은 말은 딱 하나다. “현대자동차의 부품회사 즉 하도급업체는 모두 599개이며 현대자동차가 수출을 하면 이들 부품회사 모두 해외 진출을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더불어 599개의 부품회사는 전기전자, 화학, IT, 신소재 등 다양한 업종에 퍼져 있기 때문에 해외진출의 파급효과는 더욱 크다는 것을 국민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것이다.

즉, 현대자동차가 대한민국의 소위 ‘국부’를 늘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요즘 트렌드인 ‘상생’의 관점에서 봤을 때 현대자동차라는 회사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599개 하도급업체와 함께 성장하고 있으니 얼마나 훌륭한 기업이냐는 것이다.

하지만 알 사람들은 잘 안다. 올해 처음 도입된 ‘특수관계인에 대한 일감몰아주기 증여세 신고액’을 분석해 보면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에게 130억원이 부과됐다는 사실을. 이어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회장 100억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88억원, 최태원 SK회장 75억원이 부과됐다. 다른 재벌과 비교해 보더라도 현대자동차가 일감몰아주기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해운업계 1위 한진해운, 2위 현대상선이 적자를 면치 못해 힘든 한 해를 보내고 있는 상황에서 현대기아자동차의 해외 수출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글로비스는 지난 3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14%나 증가한 영업이익을 기록하고 있다.

글로비스의 매출액 가운데 현대기아차,현대제철 등 현대차그룹 계열사 비율은 70%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 할부 할 때 꼭 필요한 캐피탈 회사도 마찬가지. ‘현대캐피탈’은 2012년 현대기아차가 할부 금융으로 판매한 65만3325대 중 현대캐피탈의 금융서비스를 받은 차는 50만6247대로 전체의 77.5%에 달한다. 현대자동차의 수직계열화, 즉 일감몰아주기가 얼마나 심각한 지 알 수 있다. 이런 회사가 글로벌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상생’을 이야기 하고 ‘599개 부품회사’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이렇게 재벌들에게 ‘글로벌’이라는 화두는 자신들이 불리할 때마다 꺼내 드는 일종의 ‘면죄부’라고 할 수 있다. SK그룹, 한화그룹 등 자신들의 총수가 위기에 몰리면 꺼내드는 카드가 수출과 해외진출이다. “이렇게 국부를 늘리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데 우리 총수를 잡아가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

1970, 80년대 군사정권이 만들어 놓은 수출제일정책, GDP 즉 국부에 대한 환상과 글로벌 세계화에 대한 이 사회의 막연한 동경. 이것을 만든 박정희와 전두환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지만 이 정신은 신자유주의의 광풍 속에서 살아남아 유령처럼 사라지지 않고 이 사회를 배회하고 있다.

겨우 사라진다 했더니 2세가 나와서 역사를 거꾸로 돌리고 있으니 재벌들도 다시금 글로벌이라는 ‘면죄부’를 꺼내 들고 역사를 뒤로 돌리고 있다. 아…… 어쩌면 좋단 말인가.

김범우 / 광고회사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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