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생명이 수장되었다. 희생자들은 자신들이 왜 침몰되는지도 모른 체, 침몰의 원인과 어떤 연관성을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 사태는 학살이라 할 수 있다. 순식간에 유족들, 실종자 가족 그리고 국민들이 깊은 수렁에 빠졌다. 이것이 국가가 맞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내가 계속 살아가야 할 사회란 말인가. 온 국민이 안산과 진도에서 그리고 서울과 제주도에서 울고 있다. 도대체 이 믿지 못할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은 누구인가.

4월 20일 진도에서 실종자 가족들은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며 “정부는 살인마”라고 외쳤다. 5월 1일 노동절 등의 촛불 집회에서는 “이런 대통령은 안된다” "침몰하는 대한민국 박근혜가 책임져라"라는 외침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렇다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생명을 바닷물 속에 수장시킨 국가의 무책임성과 재난대비 시스템의 문제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선장, 선원을 살인자로 지목했으며, 언론은 모두 이들을 악마화했다. 그러나 세월호 침몰 사고, 그리고 구조와 둘러싼 의혹은 선장, 선원들의 악마화로 잠재울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있다. 결국 검·경합동수사본부 관계자는 11일 “해경이 처음 도착한 지난 16일 오전 9시30분 당시 세월호는 45도 가량 기울어져 있었을 뿐”이라며 “해경이 (이 때 세월호에) 진입해 구조했으면 (세월호 승객) 전원 다 생존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해경, 해수부 등 관련부처와 콘트롤 타워로서의 청와대가 보여준 총체적인 무책임성과 부실에 대해서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아직도 청와대와 박근혜 대통령은 이 사태가 전국민적인 재앙이란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지 못하는 모습을, 자신의 책임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책임져야 할 두 번째 이유는 돈이 안전보다, 경제적 효율성이 생명보다 우선하는 사회윤리가 되도록 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돈’ 우선 가치, 시장만능주의가 침몰의 근본원인이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가 가능한 구조를 포기하게 되는 사태를 만들었다. 이 글에서는 세월호의 근본원인에 대해서 살펴보고, 그 대안을 함께 모색해보고자 한다.

○ 세월호는 신자유주의 여객선

세월호를 침몰시킨 원인에 대해서 현재까지 밝혀진 것만 보아도, 선령이 넘은 선박, 승객 수용 증가를 위한 선박 개조와 과적으로 인한 복원력 문제, 무리한 출항, 안전장치 소홀, 점검 소홀 등으로 수없이 많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이 세월호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안전 규칙, 규제를 무시하는 선주와 선장의 여객선 운영 관행은 다른 여러 선박에서 계속 지적되어 왔었다. 위기 징후를 무시하는 문화 속에서 축적된 위험 요소들이 한꺼번에 동일한 시간과 공간에서 집중해 나타난 것이 바로 세월호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세월호가 이런 안전의 문제를 가지고 있으면서 운행이 가능하게 한 것은 무엇인가. 그 근본원인은 바로 정부의 규제완화정책, 국가가 구조를 시장에 떠넘기는 정책 그리고 노동유연화 정책 에서 드러난 신자유주의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규제완화를 추진한 이명박 정부의 정책이 바로 세월호 비극의 원인이다. 이명박 정권은 2008년에 해운법을 개정해서 선박 운항 수명을 20년에서 25년으로, 2009년에는 30년으로 늘려주었다. 이러한 정책 전환으로 청해진해운이 일본에서 18년이나 선령이 된 노후한 여객선을 구입할 수 있었다. 당시 국토해양부는 이러한 규제완화를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정책”이고, 이를 통해 “연간 200억 원이 절약된다”고 선전했다. 물론 연간 200억 절약을 증명할 믿을 만한 어떠한 연구 자료도 찾을 수 없다. 그 후 5년 동안 선령 20년 이상의 낡은 여객선 수는 5배나 증가했다. 특히 제주를 오가는 여객선의 67퍼센트가 이런 배들이라 한다. 그리고 이런 노후선박으로 인해서 해양사고는 급증했다.

그리고 국민의 생명을 스스로 책임지지 않고 시장에 맡기는 국가이다. 재난시 인명구조 책임은 국가에 있다. 그러나 해경은 인명구조 작업을 민간업체, 언딘에게 독점으로 떠넘겼다. 물론 해경이 직접적인 계약 당사자가 아니다. 사고의 선주인 청해진해운이 계약당사자가 되었다. 정부는 오히려 이 두 민간기업의 계약 이행을 위해서 자원봉사 잠수부들의 모든 가능한 구조 활동을 중지시켰다. 실종자 구조를 위해 1분1초가 아까운 시각, 해경이 한 일이란 언딘이란 민간업체와 청해진 해운에게 모든 책임을 떠맡기는 것이었다.(시사인 5월1일자 참조) 시장에 재난구조를 맡기는 전형적인 시장주의 국가, 재난을 이용해 축재를 하려는 재난자본주의의 진상을 보였다. 이런 상황은 실종자 구조 0명이라는 비극적 역사를 만들어내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세월호의 선주, 청해진해운은 인건비 절약을 위해서 선상에서 승객의 생명을 책임져야 할 선장, 선원들을 비정규직, 미숙련자들로 고용했다. 전체 승무원의 절반 이상이 1년~6개월의 계약직이었다. 또 청해진해운이 지난해 선원들의 안전교육 등 연수비로 지출한 액수는 총 54만 원에 불과했다. 항공사의 1인 평균 안전교육비보다 적었다. 대신 접대비로는 6천60만 원, 광고 선전비로는 2억3000만 원을 썼던 것으로 밝혀졌다.

결론적으로 초유의 재난을 가져오게 한 것은 정부가 주도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한 직업윤리 마비와 국민의 생명을 스스로 책임지지 않고 시장에 맡기는 국가, 인명구조마저 거래 대상으로 만든 시스템이 세월호 참사의 근본 원인이다. 세월호는 신자유주의 선박이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와 신자유주의 정책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우리나라는 1997년 행정규제기본법을 제정하고 규제개혁위원회를 만들어 규제완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이후 15년여 동안 꾸준히 ‘불필요한(?)’ 규제에 대한 정비와, 규제 신설에 대한 ‘감시’가 이뤄졌다. 따라서 김대중, 노무현정부도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러나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를 내걸고 당선됐던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는 더 힘을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개혁을 위한 끝장토론을 3월 30일 생중계를 했다. 마치 규제개혁이 국가의 사활이 걸린 일인 듯 온 방송국이 모두 생중계를 하는 기이한 현상을 연출했다. 그리고 토론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를 ‘원수’,‘암덩어리’라 불렀다. 그리고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도 규제완화를 위한 대책회의들이 진행중이다.

어디 안전의 문제가 세월호뿐인가. 최근에는 태안 바닷가에서 해병대 훈련을 받다가 고등학생들이 집단 익사한 사고도 났고, 경주 코오롱 마우나 리조트의 천장이 붕괴되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하던 대학생들이 깔려 사망한 사고도 났다. 그리고 이러한 사태와 비교할 수 없는 큰 위험을 가진 고리1호기 핵발전이 재가동에 들어갔다. 4월 16일 세월호 사고 당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2월 25일부터 계획 예방정비에 들어갔던 고리1호기에 대해 재가동을 승인한 것이다. 이래서 2007년으로 설계수명 30년이 지난 고리 1호기를 2017년까지 연장할 수 있게 되었다. 고리 1호기 핵발전은 고리 원전 1호기는 처음 설계 때부터 부실 용접봉이 사용되고, 그 후 설계변경 이후에도 수많은 하자가 있다고 지적받아온 문제 핵발전이다. 그리고 사고 발생률이 국내 핵발전 사고 발생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문제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생명문제보다 비용문제를 우선시하는 인식 덕분에 연장되었다.

노동문제도 예외이지 않다. 세월호가 침몰되기 직전 KT는 6000명 정리해고를, 세월호 사건 다음 날에는 삼성생명이 1000명의 정리해고를 발표했다. 그리고 현대중공업에서 3월6일부터 4월21일까지 5건의 중대 산업재해가 발생했고 6명의 노동자가 죽었고, 4월 22일 서울 독산역에서는 작업중이던 노동자가 열차에 치어 죽었다. 이렇게 사망한 노동자들은 하청노동자이거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이렇게 박근혜 정부는 사람의 생명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 세월호는 우리 사회

세월호는 우리 사회의 진면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규제완화를 생명을 경시하는 문화와 직업윤리와 연관시키는 것은 과도한 것이 아닌가.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다. 그러나 자본의 이익 극대화를 위한 규제완화는 바로 반생명적 사회문화적 의식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다. 신자유주의라는 이데올로기는 경제적 기준만이 아니다. 사회문화적 전반적 생활태도, 윤리적 기준이 되고 있다. 세월호는 바로 그 지점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승객의 생명을 일차적으로 생각하고 운영한다면 노후여객선의 선령은 연장될 수 없으며, 안전점검을 이리도 허술하게 할 수 없다.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승무원의 의무를 생각했다면 그들에게 필요한 교육훈련을 이렇게 방기하고 무한책임만을 강조할 수는 없다.

세월호만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무한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경쟁의 사회이다. 모두 자신의 생존에만 관심이 있고 버둥거리고 있다. 이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경쟁 속에 살아남은 인간이 영웅으로 취급되고 있는 사회이다. 시장 속의 경쟁적 관계는 자연스런 것으로 인식되고, 인간적 관계는 해체되고 있다. 우리에게 공공성과 연대의 가치는 인간의 기본가치,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가치가 아니고 엄청난 재난이 발생할 경우 나타나는 자선의 가치로 전락했다.

“가만히 있으라” 이러한 명령은 세월호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위기 속에 있다. 우리는 참여가 차단된 수동적인 국민으로 전락되었다. 국민은 시장의 소비자와 같이 변모하였다. 불만을 분출하는 것만으로 참여가 될 수 없다. 상품을 사지 않는 것만이 소비자의 권리가 아니다. 선거 시기 투표하는 행위, 외부에서 불만을 터뜨리는 행위, 그리고 가만히 있는 것이 우리의 현재 민주주의이다. 국정원의 명백한 선거개입행위와 간첩조작행위가 있었음도 불구하고, 국민의 요구대로 국정원장을 해임시키지 못하는 민주주의. 4대강의 문제가 드러났음에도 진상조사, 청문회를 시행하지 않는 민주주의이다. 물론 선거를 통해서 우리는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지만 부정부패와 잘못된 정책으로 인한 후과는 모두 국민이 부담해야 한다. 세월호로 온 국민이 힘들어 하고 있는 와중에도 정부와 국회는 한미방위비분담금 비준안 처리, 철도 요금 인상과 민영화 추진을 위한 제도 마련 등에 차질이 없었다. 그리고 노후보장제도를 후퇴시킨 기초연금안을 통과하였다.

정책결정에 참여가 제한되고 책임은 온전히 부담해야 하는 민주주의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다. 이것은 바로 “가만히 있으라” 민주주의 실체이다. 제한된 민주주의, 절차적 민주주의가 가지고 있는 한계이다.

그렇다면 사회를 총체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추진을 중단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세월호 이후,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생명 중심의 사회로의 전면적인 전환이다. 생명 존중의 사회로의 방향 전환은 바로 자본적 관계에서 인간적 관계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그리고 인간적 관계의 회복은 공공성(자본의 공공성, 복지와 탈핵확대)과 참여와 연대를 높이는 속에서 실현될 수 있다.

○ 세월호, 자본 중심의 사회에서 출발했다

자본 중심의 신자유주의에서 출발한 세월호는 바로 그 중심에서 벗어날 때 극복될 수 있다. 그런데 현 정부는 세월호를 신자유주의적 방식으로 마무리하려 하고 있다. 지난 13일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선장에게 살인죄를 적용하고, 상시 구조 책임이 있는 주요 승무원들에 대해서도 살인죄 적용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년 계약직 월 270만원 선장을 악마화함으로써 나머지 책임져야 할 진짜 악마들은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이러한 참사와 책임 규명은 소유와 경영의 분리 속에 실제로 경영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이 무한책임을 지어야 하는 현 경제제도의 구조적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소유자의 이익은 극대화하고 책임은 최소화하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핵심이다. 이런 반생명적이며, 반사회적인 소유와 경영의 분리에 의한 재벌 살리기는 산업재해에서도 드러난다. 정몽준이 소유주인 현대중공업 그룹 조선소에서 한 달 반 동안 5건의 중대 산업재해가 발생했고 6명의 하청노동자가 죽었다. 그러나 정몽준은 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서울시장 새누리당 후보로 정치적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백혈병 산재사고나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에 대해서 책임지지 않고 있다.

우리 사회가 기업의 실소유주가 모든 사고의 책임을 지는 시스템으로 변한다면, 우리는 보다 안전한 사회를 살게 될 것이다. 현 사회의 문제는 안전불감증이 원인이 아니라, 안전에 대해서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구조가 문제이다. 따라서 규제완화, 노동유연화 정책으로 자본의 이익만을 존중하는 신자유주의 기관차를 근본적으로 멈추게 해야 한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기업은 사적 이익 추구의 조직체로서만 생각을 하고, 그런 관계에 너그러운 사회가 되었다. 그래서 기업은 자본의 논리에만 의존하고, 우리 사회는 정글이 되었다. 그러나 세월호, 현대 조선소, 삼성전자 등의 기업은 사회의 한 단위이므로, 사회적 공공성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경제·사회적 기준과 규제가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공공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로 민주주의 지평을 확대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모든 경제정책이 다시 고민되어야 한다. 최소한 대선 공약이었던 경제민주화를 다시 살릴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진행되고 있는 민영화 정책을 중지하여야 한다. 철도, 의료 민영화가 즉각 중단되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세월호가 설명해주고 있다. 우리의 생명을 최소한으로 지켜주는 토대를 민간에 맡기고, 안전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세월호 참사 이후 부상한 주요 의제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에 대한 의제가 주요한 의제로 부상했다. 그런데 안전 vs 복지로 구도를 나누려는 보수진영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진영이 정부이다. 정부가 지난해 마련한 2013∼201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는 재난 관리 예산을 연평균 4.9%씩 줄이기로 돼있다. 그런데 이러한 안전예산 절감의 원인을 급격한 복지예산 증진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재난안전패러다임으로 전환을 가로막은 것은 복지예산이 아니라, 규제완화, 국가의 안전의무를 민영화, 노동유연화 등으로 초래한 것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원인을 보지 않고 있다. 이미 국민의 상식선에서 이해되어지는 구조적 문제를 모두 덮으려 하고 있다.

특히 6.4 지방선거에서 복지 요구를 안전에 대한 요구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 다시 누리과정(3~5세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을 후퇴시키고 선별적 복지, 책임지는 복지(유상 보육과 급식)로 되돌리려 하고 있다.

안전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복지와 안전은 전혀 대립적인 성격이 아니며, 오히려 무상보육, 무상급식 등은 아동들의 기본적 안전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좁은 의미의 안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아이들이 차별을 느끼는 사회, 그리고 기초적인 복지가 결여된 사회가 바로 불안전한 사회이다. 세월호에 강남의 학생들이 탑승했으면 이런 참사가 있었겠느냐는 비탄이 생기는 것도 안전이 소득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을 증명한다. 우리나라가 지난 수년 동안 시장주의 국가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경주하면서 복지국가의 길을 제대로 걸어왔다면,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세모녀 자살사건와 세월호 침몰사건은 어느 하나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가장 긴급한 과제이다. 이를 대립적, 선택적인 과제로 보는 천박한 논리가 우리의 안전을 해치는 것이다.

다음으로 정부가 안전을 우선으로 하는 패러다임으로 진정으로 전환하려면 탈핵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노력을 보여야 한다. 전세계에서 한국이 프랑스 다음으로 핵발전소 의존도가 높은 국가이다. 세월호 이후 재난 대처가 핵발전소의 위험을 회피하면서 수립될 수 없다. 따라서 탈핵의 출발로 이미 설계 연령이 지난 노후한 고리1호기와 월성 1호기가 폐쇄되어야 한다. 고리 1호기는 2007년, 월성 1호기는 2012년에 30년인 설계수명을 다했다. 원칙대로 한다면 수명이 다한 만큼 해체하든지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 하지만 운영 주체인 한국수력원자력이 고리 1호기는 “더 써도 안전하다”는 이유로 10년의 수명연장을 신청했고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사용승인을 내 줬다. 덕분에 고리 1호기는 36년째 운영 중이다. 월성 1호기 역시 2012년 11월 20일 30년의 수명이 종료해 현재 정지 상태에서 수명연장에 대한 심사가 진행 중이다.

○ 세워호 이전과 이후 사회로 나누어야

이제 우리 사회는 세월호 이전과 이후 사회로 나누어져야 한다. 또다시 제2세월호, 아니 더 큰 세월호로 이어지는 불안사회가 지속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세월호와 유사한 참사를 많이 경험했다. 삼풍백화점, 대구 지하철 사건 등의 대형사고를 반복적으로 겪었지만 되풀이되고 있다. 아니 오히려 위험이 축적되고 우리의 사회가 더욱 불신으로 깊어져 더 큰 비극을 낳을 위험을 살아가고 있다. 세월호는 구조적 문제를 함유한 우리의 현 모습이다. 우리가 세월호를 탈출하기 위해서는 반성, 부분적 개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전면적인 전환이 요구되는 신호를 잘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세월호를 통해서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 등 정당에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맡길 수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고 발생 14일째인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통해 사과를 했다. 정식으로 브리핑을 통해서 직접 사과를 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유가족 대책위원회는 이런 사과 형식에 반발했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의 김한길 대표는 "국민께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리고 세월호를 만든 규제완화에 지원을 한 것은 구 민주당의 정치세력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정당과 정치인들에게만 의존하지 않고 국가 공무원에 관한 좀 더 직접적인 통제력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참여적 민주주의의 확장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까지 참여는 각종 위원회에 자문 등의 자격으로 참여하는 것에 제한되어 있었다. 따라서 참여는 직접민주주의 확대로 실현될 수 있다. 실질적의 의사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주민투표제, 주민발안제, 주민소환제 등 직접 민주주의를 확장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이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권리를 쟁취하여야 한다. 국민이 헌법 개정을 제안하고 국민투표 실시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그리고 신임을 물을 수 있는 권리로서의 국민투표권이 역시 필요하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상태는 어떠한가.

계속되는 촛불집회와 애도의 물결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연대를 높이는 활동과 방식이 일어나고 있다. 세월호는 다른 재난과 달리 이웃이나 전혀 알지 못하는 타자들을 향한 이타적인 마음을 촉발시키고, 세월호가 내포하고 있는 구조적 문제에 접근하려는 움직임들이 보이고 있다. 세월호를 통해서 드러나는 우리 관계에 대한 물음으로, 재난의 발생에 깊이 관여되어 있는 지배적 관계에 대한 물음으로 바꾸는 것을 기대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우리 속에 연대보다는 개인적인 불신의 분위기가 심화되는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한 시사주간지에서 한 시민은 다음과 같이 심정을 토로한다. “아직 많은 사람이 눈물 훔치며 기다리고 있는 이곳을 떠나면서 솔직히 나는 이제 이 일의 진실이 뭔지 더는 알고 싶지도 않을 만큼 지긋지긋하다.” 이런 불신과 거부가 팽배해있다. 이런 감정과 분위기가 무리가 아니다. 이런 분위기는 사회를 냉소적인 분위기로 만들고 극히 개인주의, 상업주의를 팽배하게 할 수 있다. 결국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심화될 수 있다.

그리고 주목해야 하는 것은 촛불집회 등을 적대적 시각으로 분열시키려는 끊임없는 책동이다. 지금은 전국민의 애도의 분위기가 높아서 이것이 아직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으나, 이후 촛불 등의 연대 분위기를 분열적인 분위기로 몰아가려는 수구적 시도는 강하게 진행될 것이다.

세월호의 애도는 이런 개인적 애도를 집단화하고 분열적 책동에 연대로 맞서는 것이다. 이런 연대의 정신은 진정한 안전한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토대가 될 것이다.

김애화 진보당 진보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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