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적 노동조합의 와해, 생각보다 쉽네…

대기업 사용자들의 공격성 ‘강화’

[트루스토리] 윤한욱 기자 = 민주노조에 대한 공격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또한 얼마 전 창조를 통해 드러난바 역시 새로운 것이라기보다는 그동안 노동운동에서 알려져 있던 것들이 ‘구체적 물증’으로 드러난 것이다.

물론 이명박 정부 들어 민주노조 파괴 공작이 청와대 차원에서 기획되고, 노조 파괴 컨설팅이 전문화되는 등 예전에 비해 질적으로 달라진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보다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민주노조 운동 스스로의 상태다.

사업장에서의 노사타협이 보장했던 제도적 교섭권이 사라졌을 경우(창구단일화), 민주노조라는 울타리 안에 공존했던 어용의 경향이 민주노조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경우(복수노조), 사용자들의 공격이 생각보다 쉽게 민주노조를 와해시킬 수 있음이 현실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민주노조 파괴 대응 전략이 새로운 무엇을 찾는 것은 아니다. 다시 민주노조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 이상의 전략은 없다. 조합원들에 대한 교육훈련을 강화하는 것, 사측과 담합이 아니라 조합원들의 투쟁을 고취하는 교섭 전략을 수립하는 것, 지역과 산업에서 연대를 강화하는 것. 진부하지만 사실 이만한 대응책이 없다.

본 글은 어용노조가 세워진 사업장의 패턴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왜 우리가 민주노조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민주노조 운동의 사활을 건 중요한 문제인지를 확인해 본다.
 
노조 파괴 공작의 패턴은 보통 이렇다.

경영진 중 생산, 노무 관련 담당임원의 교체 → 경영위기설, 생산이전설 등 유포 → 단협 위반 또는 기초질서지키기 등으로 현장 도발 → 노사교섭(협의) 장기화, 파행 → 직장폐쇄/용역깡패 투입 (사측이 세가 된다고 파악하면 바로 어용노조 설립) → 개별 복귀 유도, 사무직 현장 투입 → 공장 가동률 높이며 장외농성 압박 → 지역 관계기관에 대한 포섭 → 민주노조 간부 징계 → 개별 복귀율 20~30% 시 사무직 동원해 가동률 80% 내외로 공장 가동/ 복귀율 10% 내외시 역수입으로 대응 → 어용노조 설립(2011년 이전에는 조직 전환 총투표) → 창구단일화 (다수 확보 실패 시 차별적 개별교섭) → 어용노조 안정화.

발레오만도부터 최근 만도, SJM까지 이러한 패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대부분 예상 가능한 것들이기도 하다. 직장폐쇄나 어용노조 설립 이전에 아무리 사측에서 비밀리에 작업을 한다고 해도 현장에서 낌새가 나타나지 않을 리 없다.

문제는 직장폐쇄 직전까지도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설마’하는 생각이 많았고, 민주노조 전현직 간부들이 사측에 넘어가 어용노조를 설립하는 직전까지도 ‘설마’하는 생각으로 대응한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흐름에 대해 미리 감지하고 철저하게 직장폐쇄와 어용노조 설립에 맞선 투쟁을 기획한 경우 사측의 노조파괴 공작을 돌파할 수 있었다.

최근 SJM 사례가 대표적이다. SJM은 작년 말부터 사측이 기존 노조 파괴 사업장에서 벌여온 패턴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고 감지하고 지역지부 차원에서 임단협 투쟁을 SJM에 상당히 집중해 진행해 왔고, 지회 역시 비상 동원 훈련까지 해왔다.

직장폐쇄 사태 발발과 동시에 사업장의 현황(생산/ 경영실적과 예상)과 사태의 원인(2세 경영체제 구축을 위한 노조 파괴)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앞선 투쟁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이후 투쟁 전망까지 조합원이 공유하며 두 달 가까이 90% 이상의 조합원들이 파업 대오를 유지했다. 특히 금속노조 지역지부 차원에서 전술을 공유하며 힘을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 매우 중요했다.

◆ 최근 노조 파괴 흐름의 특징

최근 노조탄압 및 어용노조 설립이 효과적으로 이뤄진 사업장을 보면 상당수가 98년 대규모 구조조정을 거친 곳이 많았다. 이들 사업장들은 특히 사측의 경영위기 선전에 취약했다. 구 한라그룹 소속 사업장들, 발레오만도, 보쉬전장, 만도, 보워터코리아가 대표적이다. 구 대우그룹 소속 사업장들 역시 (두산인프라코어 등)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KEC, SJM을 비롯해 직장폐쇄 직전 상황까지 갔던 두원정공 등의 공통점은 지주회사 설립 또는 그룹 내 지분 변화가 사업주의 공격적 노조 탄압의 동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금속노조 다수의 사업장, 흔히 중견기업이라고 불리는 사업장들에서 최근 지주회사를 설립하거나, 2세 3세 경영 승계를 위한 준비를 하는 경우가 많다. 앞으로 이러한 사례들이 다수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과 창구단일화는 회사 쪽에 매우 많은 선택권을 부여하고 있다. 사측은 어용 다수노조 시 창구단일화(유성 2012, KEC 2011), 어용노조 경합 시 차별적 개별교섭(보쉬 2012, 유성 2011)할 수 있다. 또한 교섭권에 관한 사측의 유리한 지위로 인해 언제든 민주노조 안의 어용화 된 간부와 조합원을 사측이 동원할 수 있다.

창조컨설팅이 문제가 되었지만, 대구권을 영업권으로 하는 L&K와 같은 지역 컨설팅 업체들, 강남에 ‘우후죽순’처럼 생긴 노무법인들 모두 창조컨설팅과 비슷한 일들을 하고 있다. 창조 하나 사라진다고 될 일이 아니란 것. 앞으로 창조 스타일의 컨설팅은 계속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조합 대응의 문제점은?

노조 대응의 문제점은 사측 여론전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사측이 사보, 관리직 등을 통해 고용불안과 관련한 소문을 유포해도 노보에 관련 대응을 몇 줄 하는 것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사측 경영위기 설을 인정하는 선전물을 내기도 한다. 사측의 선동에 비해 노조의 대응은 선전 물량과 질 모두에서 매우 뒤져 있었다. 외환위기 당시 정리해고와 부도.매각을 경험한 노동자들은 사측의 이러한 선동에 쉽게 불안한 상태로 내몰린다. 이 경우 사실상 조합원들의 ‘마음’을 사측에 내어주고 노조탄압 대응 싸움을 시작하는 꼴이 된다.

직장폐쇄 이전 노조 대응의 두 번째 문제점은 사측은 전혀 관행적 노사협의, 노사교섭에 의미부여를 하지 않는데 노동조합은 직장폐쇄나 어용노조 설립 전까지 기존 교섭틀에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측은 노사협의에서 노조 요구를 들어주는 척 하지만 속내는 노사협의를 시간 끌기 정도로 생각했다. 심지어 임단협 교섭에서도 대부분의 요구를 수용하는 척 하다가 막판에 모든 합의를 뒤집고 순식간에 직장폐쇄로 돌입하는 사례도 있었다. 이미 사측이 이러한 마음을 먹었을 때는 노사협의에서의 경고, 관성적인 태업, 부분파업 등은 사측에 위협이 되지 못한다. 결국 사측이 노조 파괴를 준비할 때 노조는 관성적 노사협의, 임단협 교섭에 빠져 사실상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하게 된다.

한편 이 기간에 사측은 직장폐쇄 기간에 대비한 여러 대책을 준비한다. 원청 납품 기한을 맞추는 것이 매우 중요한 1차 부품사들은 미리 재고를 높이는 방식으로 생산 조정을 했고, 아예 해외 공장에서 역수입하는 방안까지를 원청과 협의하기도 했다. 이런 사측 움직임에 대해 노조는 대부분 낌새를 파악하지 못한채 잔업 특근을 계속 이어갔다.

관성적인 교섭과 단체행동은 직장 폐쇄 상황에 부딪혔을 때 아주 큰 당혹감으로 돌아온다. 특히 직장폐쇄가 공장 가동 중단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노조의 교섭권이 실질적으로 무력화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사측은 관리직, 사무직, 파업 불참 조합원, 빠른 개별 복귀 조합원들을 투입해 직장폐쇄에도 불구하고 공장을 그럭저럭 가동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직장폐쇄, 공장가동률 증가, 조합원 불안감 증폭, 복귀조합원 증가, 공장 가동률 증가, 파업 효과 감소, 조합원 불안 증가라는 악순환이 시작되었다.

이 상황에서 현장복귀선언은 그다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직장폐쇄 일주일 만에 현장복귀선언을 한 발레오만도, 하루 만에 복귀선언을 한 상신브레이크는 이후 집행부의 조합원 장악력이 급감했다. 그리고 한 달 내에 현장에는 어용노조 혹은 회사측 조합원들이 현장을 완전 장악했다.

유성기업지회는 직장폐쇄 한 달 후 현장복귀 선언을 했다. 복귀선언 직전까지 개별 복귀율이 조합원의 24%에 불과했고 공장가동률은 65% 내외(평시 80% 내외)였다. 하지만 직장폐쇄 기간이 늘어나며 복귀선언 한 달(직장폐쇄 이후 두 달) 후에는 개별복귀율이 50%, 두 달 후에는 60% (공장가동률은 평시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단체교섭을 통한 문제 해결이 불가능해진 이 기간에 노조는 주로 법률 대응과 사회적 중재에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유성기업지회는 법원에 직장폐쇄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제출해 법원 중재로 직장폐쇄 91일 만에 직장폐쇄를 종료시켰다.

발레오만도 역시 90일 이후 법원의 직장폐쇄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이 내려졌다. 하지만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기까지 3개월 가까이 걸렸고, 이 기간에 사측의 공세로 조합원들 상당수가 개별복귀 했기 때문에 직장폐쇄 종료 효과가 그다지 크지 않았다. 더군다나 사측이 조합원들을 단계적 복귀시키며 이들을 회유, 협박하기 때문에 더욱 현장 복귀 후 조합 유지가 어려웠다.

조합사무실에 대한 출입 가처분 신청은 사업장에 따라 걸리는 시간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법원에서 허가를 받아냈다. 하지만 사측은 위법에도 불구하고 집단적 조합 출입은 용역을 통해 통제했으며, 일부 간부들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조합 출입을 허용했다. 또한 조합 사무실 외의 이동을 철저히 막아, 복귀 조합원과 간부들의 소통을 차단했다. 이 밖에도 용역 폭력에 대한 각종 고소고발이 진행되었지만, 대부분이 경미한 처분을 받는데 그쳤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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