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중앙회에서 비정규직으로 2년간 일 해 왔던 여성노동자가 계약만료로 해고된 뒤 1달 뒤인 지난 9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3개월, 6개월씩 단기계약으로 2년간 근무한 이 여성노동자는 2년이 지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주겠다는 상사의 말을 믿고 잦은 성추행과 성희롱을 견뎌 왔다. 현행 기간제법상 2년 이상 계약직으로 근무할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야 하지만 2년이 되기 바로 전 이 여성노동자가 일하던 자리에 이사장 딸이 채용되면서 계약만료로 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여성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은 무엇보다 불안정한 고용환경에서 오는 구조적 요인이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직장 내 성희롱과 성추행은 성차별적 조직문화와 불평등 위계질서등의 사회문화적 분위기 속에 만들어지는 것인데 이것은 구조적으로 갑과 을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을 때 주로 가능한 것이다. 비정규직의 고용안정화 없이 다른 해결책으로써 예를 들어 1년의 성차별 교육을 수차례 하거나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다 하더라도 근본적인 해결이 될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특히 우리나라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비정규직이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고용 형태가 바뀌는 이동 가능성이 매우 낮은 문제가 심각하다. ‘비정규직 이동성 국가별 비교’(2013)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는 비정규직 중 11.1%만이 1년 뒤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었고, 69.4%는 비정규직에 머물렀으며, 19.5%는 일을 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3년 뒤에도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3년뒤에는 비정규직 중 22.4%만이 정규직이 됐고 50.9%는 여전히 비정규직이었으며, 26.7%는 일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수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로, 다시 말하면 비정규직 10명 중 1~2명만이 1~3년 뒤 정규직 자리에서 일하게 됐고, 나머지 8~9명은 여전히 ‘불안정 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OECD의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독일, 일본 등 16개 나라를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의 정규직 전환율이 가장 낮다. 단시간(파트타임) 노동자들이 많은 네덜란드는 현재 비정규직이던 노동자가 1년 뒤 49.1%, 3년 뒤에는 69.9%가 정규직으로 일했다. OECD 16개 국가 평균으로 보면 비정규직에서 정규직 전환율은 1년 뒤 35.7%, 3년 뒤 53.8%로 우리나라의 전환율은 평균에 훨씬 못 미치는 수치였다.

허술한 법과 제도가 비정규직을 양산

이런 특징은 우리나라가 비정규직 채용에 대한 규제가 강하지 않은데다, 사업주 입장에서는 고용기간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고 임금도 정규직의 절반 수준인 비정규직 사용을 줄일 이유가 별로 없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2014년/6월) 결과를 보면, 비정규직 비율은 2001년 8월부터 2007년 3월까지 55~56% 수준을 유지하다가 비정규직 고용불안과 불평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자 2007년부터 7월부터 시행된 비정규직을 2년 이상 채용할 수 없고 정규직과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의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그 영향으로 2007년 8월에는 54.2%로 감소세로 돌아서 2014년 3월에는 44.7%로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2008년 3월에는 858만 명(53.6%)에서 2012년 3월에는 837만 명(48.0%), 2013년 3월에는 818만 2천명(46.1%), 올해 3월 822만 9천명(44.7%)으로 집계되었다.

하지만 비율적으로는 감소하고 있어도 여전히 그 규모는 800만을 넘고 있다. 또 이런 감소추세를 더욱 구체적 분석을 해보면 고용계약상 상용직(정규직 혹은 무기계약직)인 사람이 증가하고 임시직과 일용직이 감소했기 때문인데, 이는 사내하도급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잘못 분류하고,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자영업자로 잘못 분류한 데서 비롯된 측면도 클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처럼 비정규직은 여전히 전체 임금노동자의 절반에 이를 정도로 그 규모가 크고 앞에서 언급한 OECD 통계가 밝히 정규직으로의 전환속도가 늦어 이번과 같은 사회적인 문제들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최근 기업들은 일명 쪼개기법으로 명명된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비정규직 해고 수단으로 악용하여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기업들은 2년을 넘으면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걸 피해가는 방법으로 초단기 계약을 한다. 심상정 의원에 따르면 이번 사건의 여성노동자도 2년 동안, 3개월, 6개월, 2개월, 4개월, 2개월, 4개월, 2개월 이런 식으로 총 7번의 쪼개기 계약을 당해 왔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여성 임금 노동자의 44%가 1년 미만 계약직으로, 여성노동자 절반이 쪼개기 계약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을 미끼로 부당노동행위나 직장내 여성노동자에 대한 성희롱 등 이번과 같은 사건이 반복 될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비정규직 문제는 더욱 확산되고 있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2010~2013년 평균 경제성장률은 3.9%로 2001~2007년 4.9% 보다 낮아졌다. 하락한 경제성장률에도 불구하고 최근 4년간 취업자 수는 연 평균 39만명으로 증가했지만, 대부분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가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노동연구원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비정규직 노동자는 591만 1천명(한국노동사회연구소 기준-822만 9천명)으로 지난해보다 17만 명이 늘었고, 이와 같은 추세는 가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통계에는 임시일용직 노동자는 포함되지 않아서 그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박근혜 정부의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인사청문회 때부터 “노동자의 3분의 1이 비정규직인 상태에서는 제대로 된 내수회복을 하기 어렵다”고 강조해왔다. 이에 정부는 지난달 발표한 내년 예산안에서 중소·중견기업 사업주가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임금을 올리면 인상분의 50%(한도 월 60만원)까지 1년간 지원하는 내용을 마련했다. 하지만 그동안 정부가 비정규직 보호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 실상은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앞서 밝힌 각 종 통계지표가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에 정부가 제시한 정규직 전환율을 높이려는 방안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 의문스러울 수밖에 없다.

사용사유 제한 법제화 시켜야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의지가 실현되고자 한다면 첫째로 먼저 기간제 사용사유 제한을 법제화해야 한다. 다시 말해 기간제 사용을 금지하고 출산․육아 또는 질병․부상 등으로 발생한 결원의 대체하는 경우, 계절적 사업의 경우, 일정한 사업완료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경우 등 명백히 합리적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하게 해야 한다. 현재 기간제 관련 법에는 사용사유의 제한이 없는데 이를 개정하여 법제화 하는 것이 가장 앞선 해결책이다. 둘째로 법에 정한 기간제 사용사유가 소멸하거나 1년을 초과하여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할 경우 기간의 정함이 없는 무기근로계약으로 간주해야한다는 것과 셋째로 사용자가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하고자 할 경우 당해 사업 또는 사업장의 동종 또는 유사업무에 종사하는 기간제 근로자에 대한 우선고용의무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법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기간제 근로의 확대와 고착화를 방지하는 것이 이와 같은 문제에 근본적인 해결방법이다.

또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별이 또 다른 갑, 을 관계를 양산할 수 있으므로 정규직과의 부당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도 필요하다. 남자 정규직 임금을 100으로 기준 할 때 임금격차가 여자 정규직 임금은 66.8%, 남자 비정규직 임금은 53.4%, 여자 비정규직 임금은 35.4%로 그 격차가 매우 크다. 이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가 100:50에서 고착화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별 고용형태별 차별이 비정규직 여성에게 집중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명문화하고 고용형태에 따른 일체의 차별적 처우 금지, 고용형태를 이유로 차별받은 근로자에 대하여 기간제법 제4장에 정한 차별시정 신청제도를 활용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한다. 또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위반하거나 고용형태를 이유로 차별적 처우를 한 경우 형사 처벌규정 신설하는 것도 필요하다.

끝으로 이번과 같은 안타까움이 죽음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으려면 성평등 의식이나 직장내 위계질서 문화등 변해야 할 것들이 많다. 고용의 안정화는 이러한 변화의 앞서는 제도적인 기초를 제공해 주는 것으로 문제 해결에 가장 앞선 출발이 될 것이다. 고용 안정화 없이는 직장내 민주주의를 세울 수 없고, 갑, 을 관계라는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하는 한 끊임없는 불평등을 야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진정으로 이런 비정규직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미봉책만을 남발할 것이 아니라 뿌리를 뽑는 법과 제도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김애화 (진보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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