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스토리]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19일(현지 시각)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있는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추모관을 방문했다. 아베 총리는 이 자리에서 “나는 오늘 특정 민족을 차별하고 증오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인간을 어느 정도까지 잔혹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배웠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어 “차별과 전쟁 없는 세계, 인권을 지킬 수 있는 세상을 실현해야 한다”며 “좀 더 적극적으로 공헌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방명록에는 “이런 비극이 절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썼고, 그의 부인은 옆에서 눈물을 흘렸다. 정말 아베는 변화하려고 하는 것일까. 정말 일본 민주주의는 오랜 침체의 늪을 벗어나려고 하는 것일까.

아베 정권에 대한 지지율은 놀랄 정도로 높다. 변화를 싫어하는 보수적인 국민인데도 51%에 달하고 있다. 3차 아베 내각에 대한 지지율이 이처럼 견고한 것은 경제 정책을 최우선으로 삼겠다는 새 내각에 대한 일본 국민의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군국주의 부활, 독도 야욕, 왜곡된 역사 인식과 영토 분쟁 등 그 동안의 정치 외교적 행로로 더듬어 본다면 일본 정치가 오늘 어떠한 정치적 딜레마에 빠져 있는가를 쉽게 헤아릴 수 있다. 외견상 ‘고독한 위치’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일본의 지도자’로 장기적으로 옹립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일본 사회는 아베의 추파에 호응을 보내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일본 유권자가 아베 정권을 지지하는 이유는 앞서 언급했듯 무엇보다 ‘일본의 경제를 되살려 달라’는 기대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다른 인물로는 대체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베는 한국인 뿐 아니라 중국인 등 아시아권의 시각으로 보면 침략의 역사를 애써 외면하는 강경 보수 정치가이다.

교토산업대학 세계문제연구소 객원연구원이자 2006년 ‘우경화하는 신의 나라’라는 책을 쓰기도 한 일본 연구자 노다니엘(61)씨는 자신의 저서 ‘아베 신조의 일본’이라는 책에서 “아베는 강경파 정치집안의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 받았다”고 평가했다.

우리는 흔히 구체적인 역사를 경험함으로써 자신의 역사관을 형성한다고 할 수 있다. 노다니엘씨의 이 같은 지적처럼 일본의 정치적 변동이 그의 마음 속에 무언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것은 거의 무의식적인 것이며 그를 스스로가 부정하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우리도 사실은 일본정치의 변화로 심정에 어떤 영향을 받고 있다. 그 변화하기 어려운 일본의 정치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면 오늘 우리나라에서 전개되고 있는 개혁정치란 역사의 추세며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라고 심정적으로 더욱 생각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다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그런 심정적인 상호 영향이 더 나아가서 아시아 전체에 파급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일본이 진정으로 변화의 시대를 갈망하고 있다면 당연히 오늘의 한일관계는 지난날의 정권에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권력자나 실력자들의 밀실에서 교섭하는, 우리가 오랜 시간에 걸쳐 비판해 온 한․일 유착식의 관계에서 벗어난다고 봐야 한다.

박근혜 정부에서의 한일 관계라 정부와 정부의 정상적인 관계를 의미할 것이며 정말 변화의 시대에 걸맞게 그러한 외교를 뒷받침하는 국민의 여론이 그 비중을 높여가리라고 생각된다. 이제 국민의 여론을 무시하거나 억압하고서는 한일간의 외교관계를 증진시킬 수 없다. 그야말로 국민외교의 시대라고 할 만큼 한일관계에 대한 국민의 호응, 나아가서는 참여가 필요할 것이라고 본다. 바로 여기에 일본이 적어도 이른바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매듭을 지으려고 하는 이유가 있다고 하겠다.

일본이 최근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한 2014년 방위백서 한글본을 국방부에 전달했지만 무려 5일 뒤에야 이를 파악하고 대응에 나선 것으로 드러났다. 야권은 “계속되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전방위적인 도발에 맞선 우리 정부의 신속하고 체계적인 대응이 아쉽다”고 개탄할 정도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우리나라 진보적 언론들은 그처럼 국내 정치인들의 일본과 관련된 발언 하나하나의 어구에 신경을 쓰고 있고, 그들 사이에선 ‘친일파’라는 의혹이 대두되지 않을까 경계하며, 그들이 내걸고 있는 ‘일본과의 우호적 관계’에 대해서도 의아심을 품고 그것에 공감을 표시하는데 매우 인색할 수밖에 없다.

아놀드 토인비가 2차 세계대전 직후에 이런 말을 했다.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 우호적인 관계가 지속되려면 그 사이에 ‘고도의 동질성’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향후 한일관계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기자도 외교전문가가 아닌 이상 솔직히 모른다. 더욱 마찰이 짙어지고 갈등과 대립이 심해질 수도 있겠다. 올해는 한·일 국교정상화 50년이 되는 해다. “일본에 대한 한국 정부의 이해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친한파들의 지적을 반드시 귀담아 들어야 할 때다. 아베는 전혀 변한 게 없는데 우리 정부만  마치 그들과 동질성이 있는 것처럼 착각에 빠져 있다는 얘기다.

최봉석 대표기자 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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