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산소에 가는 길. 밭에서 허리를 펴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멀어지고 노을빛이 반사되는 해변을 따라 분홍 코스모스들이 소롱소롱 흔들린다. 환갑을 넘긴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무작정 일자리를 찾아 상경했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스무 살, 햇볕에 물빛이 반짝이고 흙먼지를 날리며 버스가 코스모스 길을 지날 때, 나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그리 눈물이 나던지.” 돌아가고 싶은 시절의 아련함을 애써 감춘, 스무 살 그때의 추억이 가득한 어머니의 눈을 보았다.

결혼하면서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교회에 다니라고 하셨단다. 어머니는 나에게 그것이 네 아버지한테 가장 감사한 일이라고 하신다. 학창시절, 새벽마다 교회에 가시던 어머니의 인기척에 눈을 뜨곤 했다. 작은 체구로 학교폭력에 시달리며 매일 힘들었지만, 나에게도 교회는 안식처였다.  

세상일에 최선을 다했으나 시간 없음을 핑계로 부모님을 뵈러 일 년 넘게 가지 않도록 나이만 들고 철이 없었다. 가족보다 사회에 신경 쓰며 살던 어느 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난생처음, 먹먹함에 답답한 가슴을 계속 주먹으로 쳤다. 부축 없이 앉지 못하고 오열하는 어머니를 보며 이를 악물고 참은 눈물 대신 막을 수 없는 후회가 밀려왔다. 부끄러움인지 슬픔인지 모를 고통을 품고 벽에 기대 국화꽃 사이에 놓인 아버지 사진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넋이 나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죽음은 두 번의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유품을 정리하다가 대학 때 읽던 신앙 서적들 사이에서 십 년 만에 성경을 꺼내 두 손에 쥐고 평생 혈육을 위해 희생하신 아버지가 가끔 쓰시던 컴퓨터 앞에 한참 서 있었다. 세상에만 몰두하며 살던 과거를 회개하고 다시 기도하기 시작한 그 날 이후, 다시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1대 850의 목숨을 건 결투에서 이기고 승리에 도취했지만 로뎀나무에 기댄 채 우울함에 빠진 선지자 엘리야처럼, 의리를 장담하다가 세 번 예수님을 부정하고 진정한 사도가 된 베드로처럼, 누구에게나 인생을 수정할 계기를 주신다. 그때 말 그대로 과감히 세상의 유혹을 놔버린다면 비로소 인생은 가치 있는 제 궤도에 오를 것이다.

조금 추어주면 뭐나 된 마냥 곧 우쭐대는 인간미물의 주제넘은 거만함이 부끄럽다. 큐브조각을 맞추려면 바로 옆의 블록도 한참을 돌려놔야 제 자리에 들어간다. 경치 좋은 카페에 올라가려면 쓰레기가 널린 뒷골목의 입구로 들어가야 한다. 눈앞의 이득을 손에 넣기 위해 애쓰는 속 좁은 식견을 이기는 방법은 시선을 하늘에 고정하는 것이다.

친아들조차 희생시키신 갈보리의 사랑은 우리에게 최상의 인생을 주시리라는 보증이다. 진짜 행복은 돈과 쾌락에 없으니 진심을 담아 사랑하고 사랑받음보다 큰 행복은 없다. 야곱의 형 에서처럼 눈앞의 욕망에 특권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하나님, 그분을 따르기로 했을 때 주신 권리를 따라 하늘의 별처럼 우리의 행복도 곳곳에서 빛날 것이다.

등에 탄 주인을 죽이려는 사자를 피해 길을 바꾼 나귀에게 말을 듣지 않는다며 채찍을 휘두르던 발람처럼, 우리 앞길을 비추는 등불은 내 생각이 아니다. 아직 세상에 물들기 전 가졌던 꿈을 잊고 출세와 성공을 위해 자기 생각대로 인생을 계획하고 흥망을 거듭하며 살다가 진퇴양난의 곤경에 처하면, 그제야 묻는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철이 든 순간, 비로소 제정신일 때 가졌던 생각의 흔적에 눈을 돌린다. 후회의 한숨과 부끄러운 세월을 지나 바랜 기억에 쌓인 먼지를 털어낸다.

언덕 위에서 보이는 평온한 바다도, 화려한 불빛으로 가득한 도시의 야경도, 부러울 것 없을 유명인도 아픔이 있으니, 무엇이든 멀리서 보면 아름답고 가까이 가면 흠이 있는 법이다. 순간순간 험준한 언덕들이 숨차도록 우리의 한계를 시험할지라도, 들판의 꽃과 하늘의 새와 절벽 위의 나무와 길가의 꽃을 돌보시는 분께서 우리를 돌보시리라.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하신다고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나를 앞서 계신다는 것보다 큰 평화는 없다.

 
나를 사랑한 사람들이 먼저 떠나고, 나도 언젠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내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를 다시 듣고, 내 손을 잡아끌던 손을 다시 잡고, 장난감을 굴리던 무릎에 다시 앉고, 부엌에서 음식을 하시던 그 모습을 다시 볼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영원한 곳에서 오는 희망을 안고 살아간다.
 
미자리온 대표 이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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