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스토리 칼럼뉴스] 20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권이 심하게 술렁거리고 있다.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당 대표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고, 공천방식을 놓고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권의 술렁거림은 민주주의의 발전과는 거리가 멀고, 더구나 국민들의 생활과는 더욱 거리가 멀다. 아니 오히려 정치와 국민간의 거리를 더욱 벌리는 방향으로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이렇게 정치권이 발 앞에 놓여진 20대 총선이 골몰하는 동안 국민들의 삶의 무게는 더욱 짓눌리어지고 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국민들은 이제 자신들의 문제에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정치를 혐오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치가 국민들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은 야당의 집권 가능성이 점점 더 멀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혐오가 깊어질수록 야당의 존재 의미는 점점 더 희미해 질 수밖에 없다.

야당이 집권했던 순간들을 돌이켜보라! 국민들은 정권교체 또는 정권 재창출을 통해서 자신들의 삶이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한 믿음은 정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로 나타났으며, 그렇게 정치에 대한 참여는 정권교체 또는 정권 재창출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렇게 국민들의 열망과 참여로 만들어낸 정권은 보수정권과 그리 큰 차이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더 큰 실망감만을 국민에게 안겨 주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국민들은 10년 동안이나 지금의 야당에게 정권을 맡겨 보았다. 그러나 그 10년 동안 권력형 비리는 그대로 나타났고, 오히려 빈부의 격차는 더 커졌다. 비정규직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국민의 삶은 더 피폐해졌다. 이에 대한 반발로 탄생한 정권이 바로 이명박 정권이다. 민주주의는 조금 후퇴되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삶이 좀 나아질 수만 있다면 조금은 부패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민주주의는 후퇴되고 있었고, 국민의 정치 혐오는 더 커져만 갔다. 이제 20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그러나 야당은 국민들이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동기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과거 10년간의 권력을 행사했던 자들은 아무런 반성도 없이 친노와 비노로 나뉘어 싸움질에만 열중이다. 과연 이들 정치세력에게 어느 국민이 희망을 발견하고 정치에 대한 관심을 기울일 수 있겠는가?

지난 과거는 역사이다. 아무리 전직 대통령이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 하였다 한들 그 과거의 역사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대통령 퇴임직전의 지지율이 거의 바닥을 쳤던 이유는 커다란 기대감에 대한 실망도 큰 이유일 수 있지만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위 지금 친노라고 불리는 집단 속에는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법률 제정에 앞장선 자, 노동 탄압을 서슴지 않았던 인물들이 즐비하다.

더욱 한심한 일은 이번 노사정 위원회의 국감장에서 벌어졌다. 노사정 위원장인 김대환은 노무현 정권에서 노동부장관을 하던 인물이다. 이런 인물을 장관에 앉혔던 친노세력중 누구도 이런 과오에 대한 진정한 반성이 없다. 오직 다시 권력만을 탐하고 있을 뿐이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국민들의 정치 참여에 대한 열정이 솟아날리 없다. 국민이 새로운 정치세력을 열망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제 소위 기득권으로 대표되는 기존의 정치세력은 좀 뒤로 물러서서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을 위하여 백의종군하는 것이 지난 역사의 과오에 대한 올바른 반성이라고 할 수 있다. 야당이 다시 사는 길은 다시 국민의 열정을 끌어 올리는 일이다. 지난 역사에 대한 진정한 반성 없이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갈 수 없다. 이제 과거의 정권에서 일익을 담당했던 이들은 뒤로 물러서서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야 한다.   

정용해 (정치학박사, 한결미래정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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