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돋보기] 국정화 그리고 주체사상

 사진출처 = 뉴스타파 영상 캡쳐
[트루스토리] 최봉석 기자 = 여기저기서 ‘국정화’를 외친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두 번만 진행했다가는 ‘분단된’ 나라가 또다시 동서로 분단될 조짐이다. 이런데도 대통령은 ‘올바른’이라는 단어를 강조한다.

대통령이 말하는 ‘올바른’의 기준은 그리 어렵지 않다. 1989년 5월 19일 방송된 MBC 박경제 시사토론에서 젊은 시절의 박근혜는 “저는 5.16이 구국의 혁명이었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사람의 신념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열사는 그래서 나오고, 양심수 또한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사람의 신념은 쉽게 바뀌기도 한다. 그래서 친일파가 나오고 반역자가 탄생하는 것이다.

위대하신 우리 대통령은 ‘신념이 확고한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풍파에 흔들리지 않고, 외압이 있더라도 소신을 갖고 한 우물만 파는 그런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삼척동자도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박 대통령은 ‘역사(주로 근대사)가 문제 있다’고 판단하고 ‘역사를 똑바로 서술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그의 소신과 신념은 변함없이 그대로일 수밖에 없으니, 5.16이 구국의 혁명이었다고 말이다.

우리 대통령이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조선의 역사에 대해서 언급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아버지가 생존하지 않는 시대의 역사는 정상적으로 서술돼 있든, 날조가 돼 있듯, 그리 중요하다고 판단하지 않는 것 같다. 오직 ‘70년대’를 중심으로 대통령은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를 비판적으로 묘사하는 교과서는 모두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있는 듯 하다. 반면 아버지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책은 그의 판단대로라면 ‘올바른’ 교과서이다.

이를테면 박 대통령이 바라는 교과서는 교과서포럼에서 지은 ‘한국현대사’와 같은 책이다. 박 대통령은 과거 해당 교과서포럼 창립식을 찾아 “우리 청소년들이 왜곡된 역사평가를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런 교과서포럼이 생겼으니 걱정을 덜게 됐다”고 축사했다.

그 포럼에서 서술한 ‘한국현대사’의 내용에 따르면, ‘급격한 경제성장은 한국인의 물질생활과 정신생활에 혁명적인 변화를 초래했다. 그 점에서 5.16쿠데타는 근대화 혁명의 출발점이기도 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 책은 또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그의 집권기에 대한민국의 경제는 고도성장 이륙을 달성했으며, 사회는 혁명에 가까운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그는 부정부패에 대하여 엄격했으며, 스스로 근면하고 검소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흡사 북한의 김일성 우상화 정책을 보는듯한 교과서 내용이다.

우리 대통령은 한마디로 말해 이런 교과서로 우리 아이들 가르치겠다는 것이다. 왜곡된 역사인 주체사상을 비판하면서, 그런 주체사상을 획일적으로 배우는 북한을 따라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라고 반박한다면 내가 하면 로멘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때문에 박 대통령은 역사 바로잡기에 앞서서 일제하 천황에게 혈서를 쓰고 만주군 일본군 장교로 복무했던 다카기 마사오의 행적을, 남로당 군사책이었던 청년 공산주의자 박정희의 행동을 국민에게 먼저 설명해야 하지 않을까. 결국 자신이 없다면 그런 ‘진실된’ 역사는 앞으로 나오게 될 역사책에서 쏙 빼겠다는 뜻 아닌가. 한마디로 말해 역사를 조작하겠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권의 국사교과서를 국정화를 통한 역사 쿠데타가 성공한다면 김구 선생과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로 배울 것이며, 임시정부는 상해로 망명한 독립투사들의 정치단체로 격하될 것이고, 이완용 등 을사 5적을 근대화의 선각자로 기억하게 될지 모른다. 일제 35년의 수탈과 폭압을 근대화의 기초를 닦은 것처럼 여길 것이며, 노예적인 강제노동에 혹사당했던 징용자들을 더 좋은 임금을 찾아 나섰던 취업자라고 몰릴 것이고, 꽃다운 청춘을 짓밟힌 위안부 할머님들의 고통을 자발적 선택이라고 가르칠지 모른다.

박 대통령과 여당이 무리수를 써가며 역사교과서 왜곡을 시도하는 이유는 내년 총선 때문이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지금 역사논쟁이 아니라 이념논란을 벌여 국민을 분열시키고 보수층의 결집을 노리고 있다. 내년 총선을 이념프레임으로 치르면, 최소한 과반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정치 공학적 노림수가 있는 것이다.

변함없는 콘트리트 지지율 속에서 만약 내년 총선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승리한다면, 이는 대통령과 여권의 힘이 아니라 ‘죽은’ 박정희의 ‘무덤 속’ 선거운동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올 게 불 보듯 뻔하지 않을까.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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