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 영화 모티브가 된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

 

[트루스토리] 송은정 기자 = 깊은 울림과 감동으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다는 폭발적인 입소문 속에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영화 ‘덕혜옹주’ 속 역사적 모티브를 제작진이 직접 밝혀 화제다.

키워드 #1. 고종황제의 죽음과 망명 계획
상해로 망명을 계획한 고종황제

1918년 국내외에서의 독립기운이 활발해지자 독립운동가 이회영은 오세창, 한용운, 이상재 등과 고종의 망명을 계획한다. 고종의 승낙을 얻은 뒤 중국 망명을 도모하지만, 1919년 1월 고종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계획은 실패하게 된다.

고종의 공식적인 사인은 '뇌일혈'이지만, 사망 당일 궁정 나인을 통해 올린 식혜를 마신 직후 복통을 일으켜 사망했다는 의혹은 이후 3ㆍ1 운동의 촉발제가 되기도 했다. 영화 덕혜옹주에서 그려진 '고종'은 '장한'에게 망명 계획을 고백하는 장면 등을 통해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간절한 의지를 표현한다.

키워드 #2. 보온병
물 한 잔도 함부로 마시지 못한 덕혜옹주

만 13세에 일본으로 강제 유학을 갈 수 밖에 없었던 덕혜옹주. 일본에서 학교를 다니며 그 누구도 믿지 못한 그녀가 보온병을 들고 다니며 그 안에 담긴 물만 마셨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덕혜옹주가 그렇게 행동했던 이유는 바로 아버지인 고종이 일제에 의해 독살 당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방자 여사가 남긴 자서전에 의하면, 덕혜옹주가 강제 유학으로 도쿄에 도착하여 마중을 나갔을 때 인사를 건네어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도쿄역에 도착하신 옹주를 마중 나갔을 때에는…(중략) 한국어로 말을 걸어보아도 그 수줍은 미소는 돌아오지 않았다" (<흘러가는 대로>, 이방자). 이는 덕혜옹주가 일본에서 생활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영화에서는 일본에 끌려가는 '덕혜옹주'에게 어머니 '양귀인'이 직접 보온병을 전해주는 장면으로 적국에 끌려가는 딸의 안위를 걱정하는 어머니의 절절한 심정으로 표현되어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키워드 #3. 상해 망명작전
왕족의 상해 임시정부로 망명 시도

영화 속 영친왕 망명작전은 실제 역사 속 의친왕 망명 작전에 대한 기록을 참고로 하여 만들어졌다. 항일 의지가 굳건했던 것으로 알려진 의친왕 '이강'은 고종의 다섯째 아들로, 유학 시절부터 독립운동가들을 만나 독립운동자금을 보태기도 했다.

그는 1919년 11월 9일 신의주를 거쳐 상해 임시정부로 탈출을 시도하는데, 이는 항일 독립운동 단체인 대동단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의친왕은 끝내 망명하지 못하고 만주 안동현역에서 일제의 경찰들에게 발각되어 붙잡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과정에서 일제는 조선과 상해뿐만 아니라 일본, 만주, 시베리아까지 긴급 수배령을 내리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대한제국 구 황족의 한반도 내 여행의 자유가 박탈되고, 의친왕은 공 작위도 박탈되게 된다.

서울신문 김을한 기자의 저서에서 '영친왕 망명'에 관한 내용이 언급되기도 하였다. 1927년 상해임시정부가 영친왕 내외를 유럽 여행을 빙자하여 일본에서 탈출시키고 상해로 망명시키려 시도했으나 밀고자가 있어 계획에 실패했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에서 재구성된 내용은 좀 더 많은 사료와 공식자료로 기록이 남아있는 의친왕 망명 작전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영화 속에서 영친왕이 아내 때문에 망명을 포기하여 많은 관객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장면은, 대한제국의 옛 신하들이 '일본의 패망이 가까워 졌으니 고국으로 돌아가자' 설득하는 과정에서 일본인인 이방자를 데려갈 수 없다고 하자 영친왕이 실제로 귀국을 거절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그려졌다.

키워드 #4. 소 다케유키
정략 결혼이지만 덕혜옹주를 아꼈던 남편

일제의 계략으로 일본의 백작 소 다케유키와 정략 결혼 하게 된 덕혜옹주. 그동안 괴팍한 성격으로 덕혜옹주를 핍박했다고 알려져 왔지만, 남아있는 기록에 의하면 소 다케유키는 덕혜옹주와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 노력했던 인물로 보인다. 덕혜옹주에 대한 소 다케유키의 마음은 그가 덕혜옹주를 그리며 썼던 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덕혜옹주 속 배우 김재욱이 연기한 '소 다케유키'는 이러한 사료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캐릭터다. 특히, 일본어에 능통한 김재욱은 '소 다케유키'의 복잡한 심정을 절절하게 잘 표현해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키워드 #5. 조현병
덕혜옹주는 왜 미쳐야 했을까? 그런데 복순이는 어떻게 알아보았을까?

일본에 강제로 유학을 간 후, 덕혜옹주는 고국에 있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일제의 위협, 외로움 속에 살아갔던 것으로 전해진다. 영친왕의 부인인 이방자 여사에 따르면, 덕혜옹주에게 정신분열증인 '조현병'이 찾아온 것은 그 무엇 하나 자유로울 수 없었던 그녀의 고독한 삶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정확한 발병 시기는 알 수 없고, 1946년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뿐이다. 영화 <덕혜옹주>에서는 고국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덕혜옹주가 광복 후 이승만 정부에 의해 입국을 거부 당하고, 자신을 강제 유학 시켰던 친일파 한택수가 유유히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미쳐가는 것으로 '덕혜옹주'가 느꼈을 절망감과 좌절을 극대화했다. 간절했던 단 하나의 염원, '조선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지가 꺾이는 순간을 가장 상징적인 방식으로 전달하였다.

귀국한 덕혜옹주가 1962년 '순정효황후' (순종의 황후)를 만났을 때, 주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정신을 놓아버렸던 사람이 황실 예법대로 협배(윗사람에 올리는 두 번의 절)를 올리고 반면 손아랫사람인 '이우 공' 부인 '박찬주 공비'가 자신에게 큰절을 올리자 머리를 끄덕하는 것으로 인사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현장에서 이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이 울음바다가 되었다는 이 일화는, 영화 속에서 공항에 도착한 덕혜옹주가 수십년 만에 조우한 복순을 알아보는 듯한 장면으로 재탄생 하였다.

키워드 #6. 김장한 & 이우 왕자
두 실존 인물, 영화 속에서 새롭게 탄생했다

영화 <덕혜옹주>에는 주인공 '덕혜옹주' 외에도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이 바로 박해일이 연기한 '김장한'과 고수가 연기한 '이우 왕자'다.

'김장한' 캐릭터는 고종이 덕혜옹주의 정혼자로 맺어주려 했던 김장한과 후일 덕혜옹주를 귀국시키는 것에 공을 세운 그의 형 김을한, 마지막으로 일본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항일을 위해 만주로 망명, 독립군 총사령관을 지낸 이청천 장군을 합친 인물이다.

박해일은 강직하고 단단한, 그러면서도 부드러운 리더십을 갖춘 '김장한'을 특유의 자연스러움으로 연기해내 관객들의 극찬을 받고 있다. 이우 왕자는 의친왕의 차남으로, 실제로 일본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군에 들어가 군 기밀을 독립군에 전달하는 등 독립 운동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덕혜옹주> 속 '이우 왕자' 역시 일본에 있는 독립군 세력을 이끌어가는 강인한 카리스마를 선보인다. 특히 고수는 실제 이우 왕자와 닮은 외모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으며, 허진호 감독이 직접 "이우 왕자와 닮았다는 것을 강조해 고수를 캐스팅했다"며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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