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스토리] 이기은 기자 = 지난 19일 첫 방송된 KBS2 사전제작 새 월화드라마 ‘화랑’은 이를테면, 많은 종류의 재료를 한데 넣고 끓인 잡탕 요리를 연상케 한다. 드라마에는 그간 젊은 시청자들에게 인기를 끈 시청률 포인트 요소가 우후죽순으로 나열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 퓨전사극이 탄생한 이래, 남자주인공은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풍운아의 운명을 타고났다. 주인공은 더벅머리를 한 채 들판을 뛰어다니고 노숙을 일삼는 것은 물론, 정의를 거스르는 세력과 수시로 힘 싸움을 벌인다.

그간 퓨전사극들은 이 같은 더벅머리 풍운아들의 성장스토리를 엇비슷하게 차용해 왔다. ‘화랑’의 주인공 무명(박서준) 역시 천민촌에서 살아가지만 비밀스러운 개인사를 간직하고 있다. 그가 타고난 모험심으로 천민들이 출입할 수 없는 왕경에 발을 들이는 것은, 한국 퓨전사극의 스토리를 여는 전형적인 포문이다.

가령 무명이 자신이 모는 말에 부딪혀 균형을 잃은 여주인공 아로(고아라)의 허리를 감싸 안는 장면은 시청자들에게는 몹시 익숙한 데자뷰다. 해당 장면은 하반기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의 남녀주인공의 첫 만남과 데칼코마니처럼 겹친다.

무명과 막문(이광수)이 노름판에 끼어 잔재주를 부리다 도망을 치는 플롯 역시, 도박을 소재로 전개된 SBS 월화드라마 ‘대박’을 떠올리게 한다. 급기야 성골 왕위 계승자 맥종(박형식)의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 캐릭터성과 함께, 진골 귀족 수호(최민호)와 반류(도지한)가 매력대결을 펼치는 장면은 과거 KBS2 인기드라마 ‘꽃보다 남자’ 계보를 잇는 클리셰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화랑’은 그간 무수한 한국드라마들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세계시장에서 살아남은 과정을 짐작케 한다. 제작진 역시 어떤 종류의 디테일이 시청자들에게 얼마나 즉물적으로 다가갈지를 능숙하게 인지하고 있긴 할 것이다.

그러나 핵심은 이러한 연출 기술을 적당하게 배분하는 작업에 있다. ‘화랑’은 1, 2회까지 너무 많은 기술을 소진해버렸다. 아로는 남자답지만 순수한 무명, 차갑지만 어딘가 쓸쓸함을 간직한 맥종의 대비되는 매력에 첫 눈에 이끌렸다. 과거라면 최소한 4회부터 전개될 남녀주인공의 핑크빛 기류가 이미 1회에 완성됐다.

아끼는 친구 막문을 잃은 무명은 천민촌 출신임에도, 이미 신분사회 꼭대기층에 있는 성골·진골들과의 비등비등한 기 싸움에 돌입했다. 즉 높은 시청률에 목매는 드라마산업의 구조 상, 사극 주인공의 신분이나 성격은 필요에 의해 성급하게 각색되는 편이다.

역사 속에서 화랑(花郞)은 신라 진흥왕 시대에 인재를 선발할 목적으로 만든 조직이었다.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출연한 설민석 한국사 강사가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에 내부적 단합을 이루다 보니 나라가 강해질 수 있었던 것”이라는 인문학적 풀이를 내놓았을 만큼 화랑은 드라마적으로 충분히 매혹적인 소재다. 실제로 드라마 ‘화랑’은 신라시대 청년들의 성장과 사랑을 그린 청춘극 기획으로 야심차게 출범한 상황이다.

사전제작드라마 ‘화랑’의 스토리가 향후 어떻게 전개될지는 두고볼 일이다. 그러나 현재로서 ‘화랑’은 역사적으로 가장 건강했던 청년조직의 의미를, 10대 시청자들이 선호할만한 하이틴로맨스 형태로 과도하게 윤색해버렸다는 인상을 준다. 모쪼록 한국사상 가장 매력적인 청춘 소재를 채택한 해당 드라마가 역사의 토양을 의미 있게 복원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길 기대해본다.

 

사진제공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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