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스토리] 이기은 기자 = 여혐(여성 혐오) 논란이 대중문화 콘텐츠 이곳저곳에 침투한 가운데 연예계 역시 몸을 사리며 자성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짙다. MBC 드라마 ‘역도요정 김복주’에 출연 중인 배우 이주영은 지난 달 SNS 트위터를 통해 “여배우는 여성혐오적인 단어가 맞다”는 문장을 게재해 화제의 중심에 섰다.

이주영의 관찰에 따르면, 사람들이 평소 남자배우에게는 남배우라고 부르지 않지만 여자배우를 지칭할 때는 여배우라는 말을 사용하는 습관적인 경향이 크다. 즉 ‘여배우’는 인간의 기본값이 남자라는 시선에서 비롯된 단어이므로 여성혐오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여성혐오는 여성을 향한 공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며 “여성이란 이유로 차별하는 것, 여성 존재를 부정하는 것, 성적 대상화 모두가 여성혐오”라고 못 박았다.

실제로 여혐이라는 개념이 가장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는 진원지는 단연 온라인이다. SNS 등지에서 일부 젊은이들은 공격적 언어를 구사하며 이성의 존재를 무시하거나 부정하기도 한다. 이는 사회적 병리현상의 일환으로, 가령 요즘 젊은이들은 이성 교제에 있어 사회적·경제적 레벨을 나누는 비정한 계급론과 맞닥뜨리며 숱한 좌절을 겪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연애계약에 있어 실패를 거듭한 청춘들은 자연스레 이성 전반을 증오하게 되고, 물리적으로 힘이 약한 여성계층은 일부 몰지각한 남성들에게 만만한 분노의 타깃이 된다. 나이를 막론하고 남성들이 여성에게 폭력성이나 차별성을 보이거나 묻지마·치정극 살인을 벌일 수 있고, 일련의 모든 상황은 여혐이라는 상징성으로 응축된다.

가요계는 한층 민감한 타격을 떠안아야 했다. 지난 달 15일 발표된 샤이니의 리패키지 앨범 ‘1 and 1(원 앤 원)’ 수록곡 ‘If you love her(이프 유 러브 허)’의 가사 일부인 ‘꽃보다 그녀를 아껴줘야 돼’는 단숨에 여혐 지적에 휩싸였다. 여성과 꽃을 병치시키며 여성을 남성의 사랑에 종속되는 수동적인 존재로 표현했고, 이로써 고정된 성 역할이 부각됐다는 요지다.

거친 욕설과 ‘디스’ 랩이 난무하는 힙합계 역시 점입가경이다. 앞서 ‘쇼미더머니4’에 출연했던 블랙넛은 여성들을 겨냥한 강한 욕설을 직접 랩 가사에 삽입했고 위너의 멤버 송민호는 “산부인과처럼 다리를 벌”리라는 외침으로 산부인과 협회로부터 공식사과를 요구받은 바 있다.

무엇보다도 현 시국과 여혐 정서를 교묘히 오버랩하는 움직임이 확산됐다. 최순실 게이트에 관련된 현 대통령의 성별이 하필 여성이라는 것. 이에 지난 달 열린 촛불집회에서 중장년 남성들은 “여자가 대통령이 되니 나라를 말아 먹는다”는 뉘앙스의 여성 비하적 욕설을 퍼뜨리며 사태의 본질을 흐리기도 했다.

같은 맥락에서 산이가 공개한 시국 비판곡 ‘나쁜 년’ 또한, 여성을 향한 욕설로서의 ‘년’과 해를 세는 단위인 ‘년(年)’을 중첩시키는 언어유희를 일삼았다. DJ DOC의 시국 비판곡 ‘수취인분명’의 ‘하도 (주사를) 찔러대서 얼굴이 빵빵 / 빽차 뽑았다 널 데리러가 빵빵’ 대목에 이르자면, 여성들 삶의 다양한 양태는 남성 위주의 시각 속에서 쉽사리 골 빈 허영으로 치부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비단 차움병원 논란을 일으킨 대통령의 근무 태만 의혹을 겨냥한 목소리가 아니라, 위와 같은 삶을 스스로 선택한 어떤 여성들과 이와는 아주 다른 형태의 삶을 사는 타 여성들까지 몰개성적으로 뭉뚱그리는 움직임에 가깝다. 여성 인류 전체는 그렇게 일부 편협한 남성들에 의해 생산성 없는 수동적인 존재로 낙인찍힐 수 있다.

욕망이 들끓는 연예계에 비정상적인 사회현상이 삼투압처럼 스며드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조선시대 저잣거리에 야설·야화가 돌아다니고 사당패들이 몰려다니며 시대의 가십을 짓궂게 노래했듯이, 대중문화 콘텐츠는 시대가 앓는 잔병치레를 나타내는 리트머스지에 가깝다.

세계의 선봉장에 자리한 미국사회는 현재 페미니즘 관련 사안에 몹시 예민하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공식연설에서 빈번하게 인종차별·여성·동성애·소수자 사안을 화두에 올렸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테러나 전쟁·자연재해에 시달리는 세계인들은 더 이상 인간 삶의 존엄과 관련한 문제들을 남 일인 듯 외면할 수 없게 됐다. 특별히 가부장 전통사회를 겪은 한국의 경우에는 올곧은 젠더의식의 확립이 시급하다. 대중문화를 만드는 창작자뿐 아니라 언론의 뚜렷한 젠더인식 변화가 급선무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사진 = 고발뉴스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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