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스토리] 이기은 기자 = 10대들에게 엄정화(47)는 KBS2 육아 예능프로그램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했던 아기 엄지온 양의 고모이며, 드라마나 영화 몇 편에서 간간이 얼굴을 비춘 엄마 세대의 유명인으로 비춰진다.

그러나 실제로 엄정화는 2000년대 이후의 디바 이효리나 서인영, 현아를 탄생시킨 상징적인 모태(母胎)다. 그는 지난 1993년 1집 ‘눈동자’로 가요계에 데뷔해 KBS2 음악프로그램 ‘가요톱텐’에 센세이셔널한 여풍(女風)을 일으켰다. 지금보다 섹시콘셉트가 조심스러웠던 당시에 엄정화의 블랙 부채, 버건디 메이크업, 클리비지룩 등의 소품은 오늘날 뇌쇄적 퍼포먼스의 소스로서 무대연출가들에게 컬러풀한 영감을 제공한다.

그런 엄정화가 ‘디스코’ 이후 8년 만인 지난 27일, 새 정규 앨범 ‘The Cloud Dream of the Nine(더 클라우드 드림 오브 더 나인, 구운몽)’으로 가요계에 컴백했다. 앞선 26일에는 SBS ‘2016 SAF 가요대전’(이하 ‘가요대전’)에서 신곡 무대가 최초 공개되며 반향을 일으켰다.

참가자 중 가장 대선배격인 엄정화에게는 특별히 총 12분가량의 방송분량이 할애됐다. ‘가요대전’이 최근 연말무대마다 기술 사고를 터뜨리는 상황과는 별개로, SBS의 각 잡힌 전관예우임은 분명했다. MC였던 소녀시대 유리가 기립한 채 엄정화의 무대를 황홀하게 바라보는 얼굴 표정은 ‘짤방’으로 생성돼 인터넷을 장악했다.

여성의 나이와 미모에 유독 민감한 국내가요계에서 엄정화가 신보를 들고 컴백하기까지, 숱한 제약이 발목을 잡았을 것이다. 동세대의 가수들은 연말 디너쇼나 리메이크 음반 등 목소리 마케팅으로만 살아남는다. 투자 원칙은 냉혹하다. 엄정화가 아니라면 현재의 음반제작자들은 4050대 어떤 디바에게도 대형자본 아래 세팅된 아이돌 군무나 무대장치나 뮤직비디오를 한꺼번에 투입하지 않는다.

엄정화는 여전히 깃털 달린 보디슈트를 맞춤옷처럼 소화하거나 다 년 간의 서핑으로 단련한 다리근육으로 사람들에게 회자될 수 있다. 아들딸 뻘의 아이돌들이 득세하는 무대에서, 수 십 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육감몸매 콘셉트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독보적인 엄정화의 입지를 보여준다.

더블타이틀곡 중 하나인 ‘Dreamer’(드리머)는 윤상의 프로듀싱팀 원피스가 작곡한 일렉트로닉 기반의 디스코이며, 또 다른 타이틀 ‘Watch Me move’(왓치 미 무브)는 엑소(EXO)와 샤이니 노래를 만든 작곡가 신혁이 작업한 딥 하우스 장르의 업템포 댄스곡이다. 이 같은 세계적 음악트렌드를 접목시키는 것이야말로 지금껏 케이팝 아이돌들만을 위한 한류산업으로 치부됐다.

엄정화만이 2016년에도 건재하다. 그는 여전히 ‘배반의 장미’ ‘포이즌’을 잇는 90년대 처연한 선율에 일렉트로닉을 입히는 일을 허용 받는다. 톱스타 송혜교는 “언니 멋있어요”를 외쳤고 정우성은 “상당히 좋네요”라며 엄정화의 신곡에 경외를 표했다. 윤상 같은 최상급 엘리트 프로듀서가 그의 앨범에 일조하는 것은 물론, 연예시장은 그를 상품가치 이상의 브랜드네임으로 예우한다.

가수이자 배우로서의 24년은 긴 세월이었다. 2016년 ‘병신년(丙申年)’은 다른 의미에서 여성들과 힘없는 소수자를 할퀴는 질 낮은 언어유희로 남발됐다. 올 한 해는 국민들에게, 대다수의 여성들에게 비통하고도 의미심장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엄정화는 또다시 살아남았다.

엄정화는 지치지 않는 섹시 디바라는 점에서 한국의 마돈나로 불려왔지만 이러한 수식은 교정될 필요가 있다. 유달리 감정표현력이 뛰어나 매혹의 로렐라이처럼 전 국민을 ‘초대’했던 가수는, 누구와도 비견할 수 없는 광범위한 표현예술의 커리어를 구현했다. 그렇다면 엄정화는 다만 엄정화다. “여전히 멋지게 무대에 설 수 있고 새로운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는 그는 2017년에도 여전히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 ‘Dreamer’로 호흡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제공 = 미스틱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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