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스토리] 이기은 기자 = 화제의 영화 '더 킹'은 1980년대 전두환부터 이명박 대통령 재임기간까지의 한국근현대사를 배경화한다. 영화는 학창시절 흔한 날라리 박태수(조인성)가 검사로 변모한 젊은 시절을 1인칭 주인공 내레이션으로 기록해낸다.

오프닝을 제외하고는 사건 배열이 몹시 순차적이기 때문에 관객들로선 박태수의 욕망과 가치관 변화를 쉽게 따라갈 수 있는 편이다. 그러나 사건과 캐릭터성을 벽돌처럼 차례대로 쌓아가는 이러한 연출 방식은, 최후 파토스(전율)나 메시지에 관한 관객 기대치를 그만큼 높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관객들은 ‘더 킹’의 마지막 장면에서, 특정 정치함의와 마주한 듯한 기분에 사로잡힐 수 있다. 즉 한국근현대사의 권력욕과 정경유착 등을 담아낸 ‘더 킹’은, 어떤 이들에게는 확연한 프로파간다(propaganda, 대중들에게 특정 사상을 전파하려는 선전) 의도로 비춰질 법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더 킹’은 명절 극장가를 공략하는 상업영화다. 프로파간다 인상을 차치하고라도, 영화를 탐미적으로 즐기는 관객들에게는 ‘더 킹’ 구석구석의 시각적 아름다움이 인상 깊게 다가설 것이다.

실제로 ‘더 킹’의 미술세트와 미장센에는 연출진의 안목과 공력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카지노’(1995)를 연상케 하는 오프닝을 비롯해 조직폭력배 ‘들개파’와 무소불위 권력의 미장센은 해당 영화가 추구하는 최종 미감을 짐작하게 한다.

이러한 프레임의 한쪽에는 단연 배우 류준열이 있다. 극중 들개파 조직원 최두일로 분한 류준열은 눈빛, 얼굴, 말투, 걸음걸이까지 모든 육체가 미장센과 깊이 결부돼 있다. 노련한 악당 이미지를 지닌 베테랑 조연을 캐스팅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재림 감독이 택한 류준열은, 보다 날것의 청춘이기에 선홍빛이나 검붉은 그로테스크 신(Scene)과 즉각적으로 어우러진다.

불과 2년 전 ‘소셜포비아’(2015)로 충무로에 데뷔한 류준열은 이번 작품을 통해 느와르 연기에 본격 입문했다. 그만큼 류준열의 액션이나 대사 소화력은 기라성 같은 조인성, 정우성에 비하자면 어색하지만, 이를 커버하는 강점은 아무래도 그의 강렬한 눈빛연기다. 극중 교복과 죄수복과 수트와 가죽점퍼를 착장하는 그의 눈빛은, 네 가지 의상 이상의 깊이를 담보한다.

무엇보다 이 젊은 배우의 장점은 유례 없는 신선함이다. 혈혈단신으로 작품오디션을 돌던 중 충무로에 기적처럼 입성한 류준열은, 애초 기획사에서 연기테크닉을 훈련받은 것이 아니기에 소위 '쿠세(버릇)'가 없는 도화지 같은 배우다.

그래서 영화가 암전될 쯤 류준열의 이미지 지분은 압도적으로 관객 뇌리를 장악한다. 한동안 스크린의 뒷골목 사내 캐릭터에 있어 이 청년을 능가할, 짐승 같은 형형한 감수성의 출현이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이로써 류준열은 자신의 커리어에 또 하나의 비범한 필모그래피를 추가하게 됐다. 그리고 그가 촬영을 앞둔 차기작은 휴머니스트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로 예정됐다. 놀랍게도 류준열은 충무로와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기하곡선과도 같은 행보를 개척해간다. 또 한 명의 재능 있는 배우는 그렇게 성장해간다.

 
사진 = 영화 ‘더 킹’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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