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스토리] 이기은 기자 = 지난 2010년 고등학생의 나이에 걸그룹 미쓰에이로 데뷔한 수지(22)는 이물감 없이 청량한 얼굴로, 한국인들이 보편적으로 좋아할만한 미모의 기준을 새삼스레 환기시켰다.

이후 수지는 미쓰에이 특유의 활동적이고 섹시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인지도를 올렸고, 그룹의 이미지와는 별개로 유독 깨끗한 인상 덕분에 각종 CF에 출연하며 톱 연예인으로 급부상했다.

최근 여자 아이돌이 장수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배우 활동을 병행하는 것이다. 수지는 KBS2 드라마 ‘드림하이’를 통해 연기를 시작했고 ‘건축학개론’(2012)에서 배우 커리어의 청사진을 그렸다. 영화가 얼굴의 예술이라는 전제 아래 수지는 첫사랑을 묘사한 ‘건축학개론’의 상징 그 자체였다. 그런 점에서 수지의 피사체는 화면 안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작품을 이루는 핵심요소가 되곤 한다.

JYP엔터테인먼트는 지난 6년 간 수지를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시키며 수지의 스타성과 대중적 이미지를 공고히 다져왔다. 이 가운데 지난 24일 공개된 수지의 첫 번째 솔로 앨범 ‘예스? 노?’(Yes? No?)는 지금 수지가 한국 연예계에서 소비되는 총체적 방식을 보여준다.

선공개곡 ‘행복한 척’은 신비롭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알앤비 어반 장르로 2030대의 감수성을 겨냥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이 있어 / 이렇게 웃고 있지만 / 나를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은 행복해 보이는 나를 보겠지만’이라는 가사는 톱스타 수지의 심경을 대변하는 상황묘사로 비춰지며 수지의 강점인 소탈하고 선한 이미지를 재부각 시킨다. 동시에 가사 속 수지의 쓸쓸한 속내는, 청춘이라면 누구나 겪을 법한 외로움과 마법처럼 등치되며 그만큼의 대중성을 확보한다.

타이틀곡 ‘예스 노 메이비’(Yes No Maybe)는 박진영 특유의 감성 템포가 가미된 브릿팝 장르로, 중음에 강한 수지의 보이스톤에 걸맞게 구성됐다. 눈길을 끄는 것은 뮤직비디오의 콘셉트다. 수지는 오프닝부터 란제리 원피스 차림으로 스산한 홍콩 밤거리를 정처 없이 헤맨다. 왕가위, 장예모, 첸카이거 등 90년대 중화권 포스트모던 영화감독들의 연출방식과 오마쥬를 덧입힌 결과론일 것이다.

그럼에도 카메라 워크는 다소 퇴폐적이다. 수지의 솔로앨범이 섹슈얼리티를 배제한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수지의 청순미는 뮤직비디오의 노골적인 상업성을 어느 정도 중화시켜주고, 이 또한 소속사의 계획된 전략이었을 것이다. 공교롭게 화면 속 수지의 얼굴은, 90년대 중화권 톱스타 장만옥이나 이가흔의 때 묻지 않은 페이스와도 절묘하게 합치된다.

90년대를 향수하는 현재의 3040대뿐만 아니라 1020대까지도, 수지의 이 같은 청순미를 원초적인 상업요소로 적극 소비하는 것은 당연하다. 예로부터 유구한 연예계 청순 계보 스타들은 공식석상에서 활용도가 높다. 또한 청순함이란 다른 이미지와 만나 얼마든지 변주되며 콘텐츠를 늘린다는 사실을, 수지가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이번 솔로앨범은 수지의 광범위한 활동 반경을 과시하는 증명서이자, 수지의 지난 6여 년의 활동을 중간 점검하는 스타보고서로도 보인다. 걸그룹 중 솔로로 활약할 수 있는 멤버가 많지 않을뿐더러 그들은 대개 디바로만 활동한다. 이들 중 수지만이 뮤직비디오 속 주인공으로서의 연기를 전문적으로 해내며, 이러한 그의 브랜드가치는 20대 여성스타 중에서도 독보적이다.

카메라의 시선은 걸어가거나 누워 있거나 립스틱을 바르는 수지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하고, 이 상황에서 수지는 손가락을 움직이기만 해도 뮤직비디오의 그림이 될 수 있다. 물론 수지의 연기력이 크게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그의 얼굴이 영상콘텐츠의 90퍼센트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일련의 오마쥬들이 상업적으로 먹힌다는 것은, 수지가 가수로 연예계에 입문했음에도 배우로서의 한 자리를 대중들에게 이미 수락 받았다는 의미다.

스타의 본질이란 애초에 그런 것이다. 연기나 노래나 진행의 능력이 출중하거나 출중하지 않거나, 피사체만으로도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고 모두의 마음을 부드럽게 녹이는 원천 매력의 힘. 어느새 수지는 같은 시공간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세기의 고유명사가 됐다. 수지는 그렇게 2017년을 풍미하고 있다.

 

사진 = JYP엔터테인먼트

관련기사

저작권자 © 뉴스퀘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