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적이어야 할 사정기관과 공공기관을 타락시키고 동원해 추진한 KBS 장악

[트루스토리] 이승진 기자 = 박근혜 정부와 여야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명박 정부 하에서 자행된 언론장악과 언론자유 탄압의 과오를 바로잡는 일이다. 국정조사와 청문회를 통해 그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들을 엄중히 문책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과 언론자유 탄압은 법제의 하자 때문이 아니라, 법제의 한계를 넘어 그렇게 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차후 그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원인제공자들에게 그 불법부당함의 책임을 단단히 묻고, 정권의 시녀로 전락한 공영 미디어들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회복해 정상화시키고, 저항의 과정에서 상처를 입은 언론인들을 원상회복시키는 일은 현 정부의 제일 과제가 아닐 수 없다. <트루스토리>는 이명박 정권이 지난 5년 동안 어떻게 미디어를 장악했는지, 그 실체를 분석해봤다.

이명박 정권의 공영 미디어 장악은 사장교체, 간부 교체와 관료주의적 상명하달식 통제의 부활, 비판 프로그램과 비판적인 언론인의 축출, 정권홍보 프로그램 신설, 정권 띄우기와 야당 헐뜯기의 일상화 순으로 통상 진행되었다.

이명박 정부 언론장악의 첫 관문은 KBS와 YTN 사장의 교체였다. KBS에선 정연주 사장에 대한 자진사퇴 요구가 먹혀들지 않자, 그를 강제해임하는 방안을 택했다. 이를 위해 세 가지가 추진됐다.

첫째는 정연주 사장에 대한 마녀사냥식 여론재판이다. 둘째는 KBS에 대한 감사원의 특별감사와 국세청의 세무조사, 검찰의 정 사장 배임혐의 수사와 기소 등 공정하고 중립적이어야 할 국가 사정기관을 동원한 탄압이다. 셋째는 당시 다수였던 야당 측 이사들에게 정치적 전향이나 자진사퇴를 유도해 소수였던 여당 측 이사를 다수로 만들어 정연주 사장에 대한 해임제청의 의결이 가능하도록 하는 작업이다.

정연주 사장은 이러한 사전정지 작업이 이뤄진 이후, 8월 5일 KBS 이사회의 사장해임 제청, 런던 올림픽이 한창인 11일 대통령에 의한 해임, 13일 검찰에 의한 긴급체포의 수순으로 KBS 사장직에서 해임됐다. 곧 이어 이명박 대통령은 26일 이병순 사장을 임명했다. 언론정책을 주무르는 정권의 핵심인사들이 관계기관 대책회의라는 형식의 비밀회동에서 친여 성향의 이병순 씨를 사전에 사장으로 낙점했다는 의혹이 언론에 의해 제기되었다.

취임 이후 이병순 사장은 KBS를 급속히 개조했다. 팀제를 폐지하고 국·부장제를 복원해 수직적이고 중층적인 관료주의적 통제 시스템을 부활시키고, 친여·뉴라이트 계열의 인사들을 각급 간부와 본부장 등으로 임명했다. 이에 따라, 실무자들을 제어하는 보수적인 중간·고급 간부의 숫자가 3배 이상 늘었고, 결제 단계도 과거 3-4단계에서 7-8 단계로, 결제소요 시간도 2-3배 늘어났다.

이어서 이병순 사장은 10월 21일 이명박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의 방송을 정례화하고, 10월 29일 KBS의 대표 시사프로그램인 ‘시사투나잇’과 ‘미디어포커스’를 폐지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치며 정부와 대기업 등 사회적 강자에 대한 감시와 국민의 알 권리 보장 등 KBS가 지켜야 할 본연의 저널리즘 기능은 급속히 붕괴됐고, 정권과 정부정책에 대한 보도를 가장한 홍보와 기득권층을 위한 편파·왜곡은 일상이 되었다.

이에 불만을 품고 저항하는 사원들에 대한 징계 역시 일상이 되었다. 정연주 사장의 해임과 정권의 KBS 장악을 반대하기 위해 출범한 ‘KBS 사원행동’ 소속 기자와 PD 50여명은 9월 17일 지방직이나 한직으로 분산·좌천됐다. 또한, 2009년 1월 29일에는 사원행동 양승동 공동대표와 김현석 대변인이 정직 4개월의 중징계에 처해졌다.

KBS에서 정권을 위한 편파·왜곡 보도와, 이에 저항하는 내부구성원들에 대한 탄압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욱 심화됐다. 김재영(2010)은 이를 다음과 같이 썼다.

“일개 조직에서 불과 2년 남짓 동안 벌어진 … 일련의 사건들은, 비유컨대 ‘피바람’에 다름 아니다. 그것이 일반 공중에 대한 책무와 신뢰를 존립의 근거로 삼는 공영방송이자, 오랜 세월 권력의 나팔수란 오명에 갇혀 있다 신뢰도 부동의 1위로 거듭 태어난 국민의 방송에서 일어난 일임을 감안할 때 KBS를 공적 기구이기는커녕 이성적 조직체라 판단하기도 어렵다.”

각계각층의 다양한 목소리를 서로 듣고 이해하고 절충할 수 있도록 공론장의 역할을 하는 게 방송법이 정한 공영방송의 본뜻이다. 하지만, 낙하산 사장 투입된 이후, KBS의 주임무는 정부정책 홍보와 정권에 대한 우호적 이미지 조성으로 변했고, KBS에서 자율과 협치는 사라졌다.

결국, KBS의 정권 시녀화와 내부구성원 탄압에 대한 저항으로 새노조는 2012년 3월 6일 재적 노조원 1064명 중 투표율 90.5%, 찬성률 89%의 의결로 파업에 돌입했다. 노조의 요구는 이병순 사장의 뒤를 이은 또 다른 낙하산 김인규 사장의 퇴진, 불공정보도를 주도한 이화섭 보도본부장의 사퇴, 그동안 누적된 부당한 징계의 철회와 원상회복이었다.

파업의 진행과정에서 KBS 사측은 133명의 새노조 조합원들을 정직 등 대량징계 했다. KBS 새노조는 6월 8일 △대선 공정방송위원회에 노조위원장과 사장이 동시에 참여, △탐사보도팀 신설, △라디오 주례연설 폐지 추진, △징계최소화, △본부장 거취 논의 등을 사측과 합의하고 95일간의 파업을 접었다.

그러나, 파업종료 이후에도 사정은 별반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병순 사장 취임부터 지금까지, 기자·PD의 자율성과 KBS의 권력 감시·비판 기능은 치명적으로 거세됐다. 각계각층의 이해와 관심을 대변하는 여론다양성은 사라지고, 상충하는 여러 층위의 문제들을 권력층의 일관된 시선으로 재단하는 권위주의적 통합이 여론의 이름으로 그 자리를 차지했다.

충격적인 YTN노조에 대한 대탄압과 장악

2008년 5월 29일 YTN 이사회는 구본홍 씨를 새 대표이사로 추천했다. 구본홍 씨는 이 대통령 특보 출신으로 방송장악을 위한 정치적 낙하산임을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인물이었다. 이에 YTN 노조는 강하게 반대했지만, 7월 17일 YTN은 용역들을 동원한 상태에서 주주총회를 열어 40초 만에 구본홍 내정자를 사장으로 선임했다.

구본홍 사장은 노조원들의 출근저지 투쟁에 의해 회사 밖을 맴돌다가, 8월 26일 YTN 간부에 대한 기습인사를 단행해 사내통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그 뒤, 자신을 반대한 노조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징계에 착수해, 10월 6일에는 노조 지부장 등 6인을 해고하고, 돌발영상 팀장 등 6명을 정직에 처했다. 이어서 회사는 2009년 3월 이들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했고, YTN 총파업 하루 전인 3월 22일 노종면 위원장 등 YTN 해직언론인 6명 중 4명이 긴급체포됐다.

그러나, 노조의 거센 저항으로 구본홍 사장은 YTN을 온전히 장악하지 못했다. 그는 2009년 8월 3일 돌연 사장직을 사퇴하고, 배석규 전무가 사장직무대행을 맡았다. 2009년 9월 총리실 민간인 사찰팀은 "YTN내부동향" 문건에 배 직무대행에 대해 "현 정부에 대한 충성심이 돋보인다", "직무대행 체제를 종식시키고 정식 사장으로 임명해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썼다. 그는 그 문건에 기록된 대로 2009년 10월 9일 직무대행을 떼고 사장이 되었다.

배석규 사장은 취임직후 노조로부터 92.8%의 찬성으로 불신임을 당했지만, 그는 사원들의 우려를 무시하고 YTN 논조의 친정부 편향과 노조탄압을 끝까지 강행했다. 이후 그는 보도국장 직선제 폐지, 조합원에 대한 부당한 지국 발령, 해직사태 장기 방치, 박원순 시장 등 YTN판 블랙리스트 논란, 돌발영상 무력화, 공금 횡령의혹 등 파문을 연속적으로 일으키며, YTN을 정권의 호위대로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YTN의 낙하산 경영진은 YTN 뉴스의 공정성과 신뢰도를 끝없이 추락시키며 정권호위를 위한 불공정·편파 보도를 강행했고, 노조는 그에 항의하고 개선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 때마다 노조에 돌아온 것은 권력과 회사의 가혹한 탄압이었다.

MBC, 자율성 전통 무너지고 유치한 홍위병으로 변신

 
MBC에는 한나라당이 야당이던 시기 구성된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에 의해 오랜 인기 앵커 생활로 전국적인 지명도와 높은 호감도를 지닌 엄기영 씨가 신임사장 후보로 추천되어 이명박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08년 2월 29일 MBC 주주총회에서 새 사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후일 한나라당 후보로 강원도지사 보권선거에 나간 것에서도 알 수 있듯 한나라당과 교분이 있는 보수적인 인물이었다. MBC는 사장을 다른 친정부적 인물로 바로 교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또한, MBC에는 주요한 의사결정에 있어서 아래로부터 상향식으로 구성원들의 의사가 모아지고 이를 각 부문 본부장들이 존중하는 ‘분권적 자율성’의 독특한 제도와 문화가 작동하고 있었다. 이는 1992년 MBC노조의 대규모 파업 이래 형성·계승돼 온, 그리고 노사협약이라는 제도적 장치에 기초한 오래된 사내민주화의 전통이었다.

이러한 전통 때문에 정권의 간섭이 쉽지 않았던 MBC는 2010년 2월 8일 엄기영 사장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자진사퇴하기 전까지, 이병순 사장 취임 이후 바닥으로 추락한 KBS를 제치고, 공정성과 신뢰도 및 뉴스 시청률에서 1위에 올랐다. 이는 엄기영 사장이 그러한 전통을 일정 수준 존중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그 기간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MBC를 불공정한 친정부적 홍보기관으로 이끌도록 엄기영 사장을 회유하거나 사퇴를 압박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권력기관이 MBC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이를 토대로 검찰이 MBC의 비판 프로그램 제작 실무자를 체포하거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제재하는 일이었다.

엄기영 사장은 PD수첩에 대한 청와대의 고발과 검찰수사 등 MBC 프로그램에 대한 국가의 탄압이 야기한 비판여론과 MBC를 정치적으로 장악하려는 정부 사이에서 오랫동안 동요하다가, 2010년 2월 자신이 추진한 뉴MBC 플랜이 별 성과를 내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는 모양새로 자진사퇴하고 말았다. 그의 후임이 여러 가지 불법부당 행위로 논란이 되고 있는 이번에 ‘해고된’ 김재철 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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