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산(名山) 기행] 시인의 감성으로 들려주는 사연 많은 우리 산 이야기

▲ [사진= 강원도 영월, 강물에 둘러싸인 태화산]

[뉴스퀘스트=김재준 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옛 선비들은 산을 찾는 것이 하나의 문화였으며 오늘날 세계 여행쯤 되는 대단한 일이어서 등산이라 하지 않고 유산(遊山)이라 했다. 단순히 놀며 즐기는 것보다 이름난 산을 따라 다니며 자연을 섬겨 구경하였던 것이다. 산을 신성하게 여겨 마음을 다지며 도를 닦는 곳으로, 여행의 대상으로 삼았다.

요즘 등산처럼 하루·이틀 아니라 길게는 몇 달씩 걸리는 오랜 나그네 길(Grand Tour)이었으니 시간과 물질적 여유가 없으면 어려웠다. 그럼에도 올곧은 성품을 가지려 산으로 강으로 흘러간 것이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실천하려 있는 그대로의 자연에 거스르지 않고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삶을 추구하였다.

18~19 세기 루소(Rousseau)와 소로(Thoreau)도 자연을 외치며 숲으로 갔으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문명 속에서 이기적인 마음을 순화시키려 산을 찾았고 자연을 최고의 스승으로 쳤다.

해외 산악관광을 다녀온 사람들은 우리나라 산은 보잘 것 없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3천 미터 넘는 거대한 산은 신의 영역이어서 위압감을 주기 때문에 교감이 어렵다.

히말라야·안데스·로키·킬리만자로·알프스 등에 비하면 규모는 작지만 어머니 품처럼 우리 산은 아늑하고 사연도 깊다. 그러기에 선현들은 산·나무·풀이름 하나라도 예사롭게 짓지 않았다. 봉화산·국 사봉·옥녀봉·매봉산·남산… 꽝꽝나무·딱총나무·생강나무, 사위질빵· 며느리밥풀·노루오줌·도깨비부채….

특히 4천 개 넘는 산에서 봉화산 이름이 제일 많은 것은 그만큼 침략에 시달렸다는 사실이다. 오죽했으면 꽝꽝나무였겠는가? 이러니 어느 것 하나도 숱한 애환과 혼이 녹아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민초들이 어렵고 나라가 위태로울 때 산천초목(山川草木)도 울었고 함께 숨 쉬면서 서로 동질성을 느끼게 되었다. 겉모습만 견주어 우리 산을 보잘 것 없다고 할 것인가? 그 의문에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산은 나의 주장에 동의해 줄 것으로 믿는다.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시절부터 홀린 듯 산에 다니며 꿈을 키우던 세월이 어느덧 30여 년 되었다. 새벽같이 산에 이끌려 오르내리던 날들, 숲속에서 길을 잃고 낯선 곳으로 내려와 숨은 이야기를 물으며 숲이 부르는 소리, 나무가 들려주는 노래도 알았다.

미끄러지고 뒹굴며 땀에 젖은 수첩에 순간의 감동을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궂은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현장을 채록하며 사진기에 표정을 담았다. 식물의 냄새·풍경, 산천의 유래, 전설과 더불어 자연생태의 이파리 뒷면에 가려져 있던 인문적인 것까지 들춰내려 애썼다.

부족하지만 청소년들에게 호연지기를 키우고 숲과 문화를 알리는 데도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 흘러온 산·숨 쉬는 산, 한국유산기를 펴내며 오늘도 발길을 새로 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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