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윤복 '주사거배', 19세기 초, 종이에 채색, 28.2cm×35.6cm, 국보135호, 《혜원전신첩》, 간송미술관 소장

[뉴스퀘스트=백남주 큐레이터] 조선 후기의 대표적 풍속화가인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 ?~1813 이후)이 한양의 선술집 풍경을 그린 풍속화다.

선술집은 경제적 부담 없이 싼 가격으로 술과 안주를 먹을 수 있는 술집으로, 손님들이 모두 서서 술을 마신다고 해서 선술집이라 하였다. 조선 시대의 선술집은 술값에 안주가 포함되어 있어서 술 한 잔에 안주 하나를 먹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주사거배(酒肆擧盃)>, 즉 ‘술집에서 술잔을 들다’라는 이름이 붙은 이 작품은 기생과 한량, 양반들의 놀이와 유흥을 주제로 한 그림 30점을 한 권으로 묶은 신윤복의 풍속화첩인 《혜원전신첩》에 들어있는 작품이다.

진달래로 보이는 분홍색 꽃이 활짝 핀 어느 봄날에 선술집을 찾은 다섯 명의 남자들과 그들에게 술을 떠주는 주모, 그리고 그 옆에서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상투 차림의 젊은 남자가 그림 속 주인공이다.

두 개의 가마솥이 걸린 부뚜막 앞에 앉아서 손잡이가 긴 술구기로 술을 옮기고 있는(혹은 따라주고 있는) 주모는 깃과 소매 끝동, 고름에 색이 들어간 회장저고리에 남색 치마를 입고 있다. 머리를 땋아 정수리에 둥글게 고정시킨 얹은머리와 길이가 짧고 꽉 조이는 저고리, 속옷을 여러 겹 입어 풍성하게 보이게 한 치마는 당시 유행하던 양식이다.

화면 가운데에서 왼쪽 소매를 걷은 채 젓가락을 들고 안주를 집으려다, 갓을 쓴 두 사람을 돌아보는 붉은 옷을 입은 남자는 별감이다. 겉에 입은 붉은 포(袍)와 머리에 쓴 노란색 초립은 별감들만 입던 복색이다.

별감은 궁궐 내에서 왕과 왕족의 명령 전달과 알현 안내, 문방구 관리, 궐내 각 문의 출입 통제 및 단속, 궐내의 각종 행사 준비 등의 잡무를 담당하던 하급 관직이다. 하지만 이들은 왕과 왕비, 세자를 곁에서 모셨기 때문에 양반 못지않은 권세를 누렸고, 사치와 유행, 유흥 문화를 주도하였다.

가장 오른쪽에 검은 색의 고깔 모양 모자를 쓰고 있는 사람은 의금부 나장이다. 겉옷 위에 덧입은, 검은 바탕에 굵은 흰색으로 무늬를 넣은 옷은 더그레, 호의(號衣) 등으로 부르는 것으로, 깃이 없고 소매가 짧은 겉옷이다. 무늬 때문에 까치등거리라고도 부른다. 나장은 죄인을 문초할 때, 매를 때리거나 죄인을 압송하는 하급 관리였지만, 왕명을 받드는 특별사법기관인 의금부의 나장은 당시에 꽤 권세가 있었다.

그 옆에 의금부 나장과 함께 막 주막에 들어온 듯 뒷모습을 보이고 서있는 사람은 갓을 쓰고 소매통이 넓은 연한 남색의 철릭을 입었다. 철릭은 저고리 모양의 상의와 주름이 잡힌 치마 모양 하의를 허리에서 연결한 옷으로, 왕에서부터 무관·하급 관료·악공·무당까지 다양한 계층에서 받침옷 또는 겉옷으로 입었다.

가운데 양태가 넓은 갓을 쓰고, 소매통이 넓고, 옆선이 트인 중치막을 입고 가죽신을 신은 두 사람은 전형적인 양반 사대부의 차림을 하고 있다. 중치막은 왕실과 사대부의 남성들이 평상시 외출복이나 도포의 받침옷으로 입었다. 하지만 이때는 신분에 따른 옷차림이 흐트러지던 시기이므로, 차림새만으로 갓을 쓴 세 사람의 신분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화면 가장 왼쪽에는 술집에서 술잔을 나르거나 아궁이에 불을 때는 허드렛일을 하는 중노미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맨상투에 바지저고리 차림으로 서있다.

이 당시 술집과 기방의 주요 고객은 앞에서 말한 별감과 의금부 나장·역관 등 기술직 중인·중앙관청의 서리·군영의 장교·포도청의 포교·승정원 사령·서울 시전의 상인과 같은 중간계층과 일부 양반층과 상민이었다. 이 그림에서 양반에서 하급 관료까지 여러 신분의 남자들이 출입하던 당시 서울의 주막 모습을 볼 수 있다.

신윤복은 수평선과 수직선을 기본으로 하여 전체 화면을 구성하였다. 건물의 기둥과 가구는 수직선으로 그리고, 담장과 지붕 그리고 마루는 수평선을 이루며, 전체적으로 안정된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당대의 어떤 화가보다 색을 잘 쓴 화가였던 그답게 선명한 색채의 사용으로 화면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그림 중앙에 배치한 주모와 별감의 복색을 남색과 붉은색으로 대비시켜 보는 이의 시선을 화면 속에서 벌어진 상황으로 집중시킨다. 또한 가장 강한 색의 대비를 보여 주는 장면 주위로는 부드러운 색을 옅게 칠했다. 한편 “술잔을 들어 밝은 달을 맞이하고 술항아리 끌어안으며 맑은 바람을 마주 한다(擧盃邀皓月 抱甕對淸風)”는 화면 상단에 적힌 제시는 술을 즐기는 사람들이 기분 좋게 취하고 있는 그림 속의 분위기를 그림 밖의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 백남주

신윤복의 그림은 뛰어난 예술 작품이기도 하지만, 당대의 생활상을 알려주는 역사 자료로서도 가치가 높은데, 다양한 복식 외에도 당시에 사용된 각종 식기류와 가구 등 일상의 모습이 섬세하게 묘사되고 있다.
신윤복(申潤福)은 고령 신씨로 호는 혜원(蕙園)이다. 아버지 신한평(申漢枰, 1726~?)은 도화서 화원으로 특히 초상화와 속화에 빼어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윤복 또한 화원이 된 것으로 보이나, 그의 생애나 행적에 대한 문헌의 기록을 찾기는 어렵다.

또한 그의 작품 중에는 제작 연대가 밝혀진 작품이 드물어 정확한 활동 시기를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주로 19세기 초에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김홍도가 주로 농촌의 생활상을 그린 것과는 달리, 신윤복은 변모하는 도시의 사회상을 그렸으며, 조선 시대의 회화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에로티시즘을 대담하게 표현하였다. 당대에 금기시되었던 남녀의 애정 표현이나, 시정의 질펀한 유흥 장면도 종종 그의 풍속화에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간송미술관 소장 <蕙園風俗畵帖>을 통해 본 19세기(순종~고종년간) 민간의 복식과 생활상(이태호·양숙향, 강좌미술사 15권, 한국미술사연구소, 2000)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강명관, 푸른역사, 2001)
조선의 뒷골목 풍경(강명관, 푸른역사, 2003)
조선후기회화의 사실정신(이태호, 학고재, 1999)
한국의식주생활사전-의생활편(국립민속박물관,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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