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의 유래, 수수깡나무·생강나무·산삼금표·아우라지

두위봉 천일굴. [사진=김재준 시인]
두위봉 천일굴. [사진=김재준 시인]

[뉴스퀘스트=김재준 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영동고속도로 진부 나들목 내려서 정선으로 간다. 주말 여름 휴가철이지만 동서울, 호법을 지나자 다행히 정체구간이 짧다. 구불구불 강을 따라 가는 길 은 산이 아니라 산으로 둘러쳐진 벽이다. 산이 만든 벽. 기교를 부릴 줄 모르는 무표정한 강원도 산들, 모두 90도로 곧추 섰다. 백석폭포를 지나 어느덧 산그늘이 내린다. 서울에서 거의 4시간, 저녁 6시 40분경 읍내 여관에 짐을 풀고 장터골목으로 나서니 모든 것이 정겹다.

곤드레 비빔밥, 콧등치기국수, 메밀부침개, 막걸리 한 잔. 으스름 내린 교육 청 시커먼 뒷산을 바라보며 걷는데 벽화의 아리랑 노랫말이 재밌다. 

“술 잘 먹 고 돈 잘 쓸 때는 금수강산일러니 술 못 먹고 돈 떨어지니 적막강산일세.”
“매일 금수강산?”
“…….”

정선(旌善)은 백제에서 신라로 망명한 전씨(全氏)에 내린 시호가 정선군이라 는 데서 유래한다. 정선이라는 표현은 우리글이 없던 시절 “넓고 큰 언덕·산 고을”을 뜻하는 돍(旌)·슭(善)의 차음(借音)이 후대에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고려 말 문인 이색, 곽충룡 등은 “풍속이 순박하여 백성들은 송사가 없고 일백 번 굽이쳐 흐르는 냇물은 바다로 향하고 절벽은 하늘에 의지해 가로질렀다.” 했다. 남한강 물길 따라 서울로 오가던 뗏목 터로도 이름났다.

다음날 읍내에서 15분가량 달려 가리왕산휴양림에 도착하니 아침 7시다. 산책하는 사람에게 등산로 입구를 물었더니

“산이 깊어 두 사람이 가긴 좀…….”

주눅 들게 하는 것도 아니고 나의 호기심을 이길 수는 없었다. 

“어차피 먼 길 왔는데 올라가자.”

심마니교에서 정상까지 5.2킬로미터, 물이 콸콸 쏟아지는 계곡 나무다리를 지나자 쉬땅나무 흰 꽃, 분홍빛 노루오줌도 바위에 흘러내리는 물과 어울려 폈다. 바위 속에 뚫린 천일 굴에 잠시 선다. 어른 서넛이 들어가 앉을 만한 뾰족한 바위굴이다. 천 일 동안 기도하면 도를 얻을 수 있다는데 90년대 초 젊은 여인이 3년 수도 후 행방이 묘연하다고 씌어있다. 험상궂은 산세를 보니 과연 행방불명 될 만한 산이로다. 심산유곡 어디로 갔을까? 의문을 가지고 산으로 오른다.

당단풍·쪽동백·신갈·굴참·고추·고광·생강·고로쇠·소나무들이 숲을 만들고 있다. 좁은 산길로 분홍빛 칡꽃이 떨어졌고 물소리 더욱 요란하다. 다래·개다래·박쥐나무는 잎이 훨씬 크고 고광·고추나무가 바윗길 에워쌌다. 산 목련·산본·난티나무 아래 꽃대를 올린 별가치, 박쥐나물, 실처럼 가는 줄 파리풀, 잎이 크고 날카로운 도깨비부채, 머리 풀어헤친 요강나물……. 물봉선도 한껏 물을 머금고 흰색 꽃을 피웠다.

7시 45분, 밀림을 헤치고 오르니 여기는 검은 숲이다. 아직 정상은 4.5킬로미터 남았는데 맹수가 나올 것도 같다. 15분 더 올라 계곡물 한 잔, 산길에 하 얀 꽃을 피운 쉬땅나무 향기다. 하룻밤 짙은 분 냄새? 파마 냄새 같다. 쉬땅나무는 산골짜기, 계곡에 잘 자라며 열쇠가 작고, 높은 산에 사는 마가목은 큰키나무다. 긴 삐침 모양인 마가목에 비해 쉬땅나무 잎은 약간 넓다. 꽃피는 때도 7 월, 마가목은 6월경이다. 둘 다 장미과 깃꼴겹잎(羽狀複葉)은 같다. 새순은 나물로 먹고 줄기껍질을 진 주매(珍珠梅)라 해서 늦가을 햇볕에 말려 가루로 쓴다. 피를 맑게 하고 골절·타박상·종기·통증을 없애는 데 좋다고 알려져 있다. 하얀 꽃무더기가 수수깡1)처럼 생겨서, 나무 탈 때 줄기에 있던 공기가 “쉬~” 새 며 더 뜨거워지면 “딱”소리 난다고 쉬땅나무다.

이 숲의 위층은 신갈·물푸레나무, 중간은 생강·고추나무, 아래에는 물봉선이 자란다. 다래 줄기가 온갖 나무들을 친친 감고 있으니 아마존의 원시 밀림지대다. 이끼가 바위 돌을 파랗게 덮어버려 왕관을 닮은 관중은 더욱 기세등등하다. 컴컴한 오르막길, 따라오며 뭐라고 중얼거리는데 독사를 봤다고 한다.

밧줄로 친 난 간대를 잡고 오르는데 고개 들어보니 차츰 환해진다. 정상 가 끼워지는 걸까? 8시 20분 어은골임도(정상2.4·휴양림4.3·광산 골임도7·마항치 사거리임도14.8킬로미터)에 닿는다. 물고기가 숨어 살만한 어은골(魚隱谷) 골짜기 다 올라왔다. 깊은 계곡 이무기를 피해, 찬물을 피해 숨었는지 모르지만 물고기나 사람이나 숨어살기 좋다. 택리지에도 정선을 은거(隱居)하기 좋은 곳이라 하였다. 자두, 빵, 곤드레 한 잔에 잠시 쉬다 가려니 모기가 가만두지 않는다. 다시 오르막길 걷는데 친구는 곤드레만드레 되었는지 한참 뒤처져 온다. 10여 분 올라 상천임 바위팻말이다.

두위봉 미역줄나무. [사진=김재준 시인]
두위봉 미역줄나무. [사진=김재준 시인]

9시경 신갈나무 고목에 붉은 덕다리버섯, 다람쥐 한 마리 쪼르륵 올라간 다. 오르막 산길은 신갈·물 박달·당단풍·생강·미역줄거리나무들이 주인 이다. 확실히 이산의 생강나무 열매는 굵고 크다. 오죽했으면 “싸릿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고 했을까? 아우라지 처녀는 동백열매 찧어 사랑하는 이를 위 해 머릿기름 예쁘게 바르고 싶은데 궂은 날씨는 속만 태운다. 억수장마에 열매 다 떨어지면 머릿기름은 허사가 될 것이니 처녀는 애가 탈 지경이다. 그래선지 꽃말도 “수줍음”이 됐다. 강원도에서는 생강나무를 동백·동백나무라 부른다. 가지와 잎에 생강 냄새가 나서 생강나무다. 계곡이나 숲속에서 5미터까지 자란다. 3월에 노란 꽃이 뭉쳐 잎보다 먼저 피며 열매는 검게 익는다. 연한 잎은 장아찌, 나물로 먹고, 열매로 술을 담그거나 기름을 짜 머리에 발랐는데 강원도에서 말하는 동백기름이다. 위장병·오한·감기·산후에 껍데기를 달여 마 섰다. 타박상에 잎을 찧어 바르고 가지 말린 것을 황매목(黃梅木)이라 해서 기 침·해열·배앓이에 썼다.

첩첩산중 박달나무가지는 하늘 덮었고 안개도 앞길을 막지만 산에 미친 우 리를 멈추게 하지 못했다. 엄나무 고목이 길게 위로 뻗었다. 신갈·박달나무 숲에 나무들이 군데군데 넘어져 주무신다. 바위벽에 붙은 고사리는 안개를 먹 고 사는지 자못 생기 넘친다. 9시 10분 한 씨 묘지, 10분 더 지나 정씨묘지다. 이 깊은 산 무덤은 천수를 누릴 것이다. 잎이 심장을 닮은 찰피나무, 당단풍, 안개구름 속에 기화이초들이 자라니 인간세상이 아닌 듯.

“옆을 보고 있으니 중나리다.”
“하늘 보면 하늘나리, 땅을 보면 땅나리…….” 
“그런 거야?”
“맞다.”

흰 깃털 같은 승마 꽃을 보며 올라가는데 박쥐나물, 사초, 단풍취도 꽃대를 올렸다. 분홍꽃잎이 다섯인 이질풀……. 멧돼지가 숲속에 밭을 매 놨다. 숲이 울창해서 희귀한 약초가 많이 자라는 곳이니 멧돼지가 좋아할 수밖에…….

9시 30분 산 능선이다. 마가목 열매는 아직 파랗고 접골 목은 빨갛게 익어서 빗물이 뚝뚝 듣는다. 10분지나 마항치(馬項峙) 삼거리(가리왕산0.8·마항치사거 리2.3·휴양림5.9킬로미터).

“말목 고개를 한자로 썼을 거야.” 
“…….”
“숲이 우거졌지만 말안장 같은 곳이다.”

10시 헬기장(정상0.5·어은골임도1.2킬로미터) 지나 미역줄나무와 노박덩굴 연노랑 꽃은 서로 비슷해서 헷갈리겠다. 분홍 잔대꽃, 노란 동자꽃, 참취나물 흰꽃, 검붉은 바디나물 꽃도 모두 어울려 있지만 각양각색이다. 정신없이 바라보며 올라오다 마항치 근처에 모자를 두고 왔다.

10시 10분, 정상에는 시커먼 돌무더기가 우릴 맞는데 마치 고원에 돌로 제 단을 쌓은 것처럼 가지런하다. 안개바람에 몸이 떨려 춥다. 멀리 광활한 군웅할거의 산맥들이 보일 듯 말 듯 안개가 짙어서 답답하다. 맑은 날 동해를 바라 볼 수 있는데 오늘은 허탕이다. 바람 불고 안개 날리는 여기서 처음으로 반대쪽에서 올라온 사람을 만났다. 1,561미터 가리왕산(加里旺山, 휴양림6.7·장구목이4.2·숙암분교 중·허봉7.2킬로미터), 정선읍 북면과 평창군 진부면 경계지점으로 한강의 지류 동강에 흘러드는 오대 천과 조양강朝陽江) 발원지다. 옛날 춘천 맥국(貊國)의 관왕(葛王)이 피난 와서 성을 쌓고 머물러 갈 왕산으로 부르던 이름이다. 강릉 예국(穢國)의 왕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왔던 길로 내려서 산 목련, 피나무 고목을 만나고 10시 30분 마항치 삼거리에서 모자를 찾는다.

“마항치 사거리까지 가자. 2.3킬론데.” 
“바로 내려가. 날씨도 안 좋아.”
“이 멀리까지 왔는데 산삼금표 보러가자.” 

앞서 걸으니 체념한 듯 따라온다.

멧돼지가 어질러 놓은 신갈나무 숲, 오래된 피나무, 마가목을 지나 작은 능성이 넘어서니 내리막인데 길도 잘 나타나지 않고 이정표도 없다. 헬기장인 듯 온갖 풀들이 뒤덮었다. 자꾸 돌아가자고 해서 고집 피울 수 없는 노릇이라 이쯤에서 진행을 멈췄다. 30분 정도 왔다가 산삼금표도 못 찾고 아쉽게 되돌아간다.

“이럴 때 맥이 다 빠진다.” 
“…….”

마가목, 신갈나무 고목을 두고 1시간 만에 마항치 삼거리로 되돌아 왔다. 

“행방불명된 여자도 못 찾고, 산삼금표도 못 보고 왔던 길 내려가려니 발길이 무겁네.” 

정오 무렵 큰 바위 상천임(上千岩)을 내려서서 어은골 임도에 늘어져 쉰다. 자두·빵 한입에 배고픔을 달래니 비로소 매미소리도 들린다. 땅바닥엔 웬 개미들이 그렇게 많은지 가방에 깔려 다친 놈들 없는지 살펴본다. 나름대로 분주 하게 기어 다니는 개미는 인간들보다 열심히 산다. 땅바닥에 누워보니 자연이 참 좋다.

“매일 이렇게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골탕 먹어서 제 명에 못살 거다.” 
“…….”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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