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가 즐겼던 차 모임

문회도(184.4X123.9cm) [사진=대북고궁박물원]
문회도(184.4X123.9cm) [사진=대북고궁박물원]

[뉴스퀘스트=함은혜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연구원]  송대(宋代)의 황실과 귀족, 문인들이 주축이 차문화는 북송 휘종 대에 백차(白茶, 하얀 거품을 즐기는 차)가 유행하면서 예술미가 드러나는 새로운 차문화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는 용봉단(龍鳳團)과 소용단(小龍團)이라는 최상품의 단차(團茶)가 생산되었고, 백차 즉 연고차(硏膏茶, 찻잎을 연에 갈아낸 차)도 생산되었다.

 송대에 차문화가 민간에까지 생활화된 것은 오자목(吳自牧)이 1274년에 완성한 『몽량록(夢梁錄)』에 “모든 가정에서 매일 빠뜨리지 않는 것이 땔나무, 쌀, 기름, 소금, 장, 식초, 차(茶)이다”라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송대의 차는 쌀, 소금과 같은 생활필수품으로까지 그 인식이 확장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구양수(歐陽脩, 1007~1072)와 소식(蘇軾, 1037~1101), 황정견(黃庭堅, 1045-1105), 나대경(羅大經, ?~?) 등과 같이 송대를 대표하는 문인들은 대부분 차를 마시며 문인다운 삶을 즐겼다. 그들이 남긴 다시(茶詩)와 다양한 종류의 다서들은 송대 차문화를 더욱 풍요롭게 했다.

 중국 송대 차문화에서 반드시 언급해야 되는 인물이 있다. 바로 북송(北宋)의 마지막 황제인 휘종(徽宗, 재위 1100~1125)이다. 그는 차의 애호가로, 시·서·화에 매우 능했고 차에 대해서는 깊은 지식을 가지고 연구하여 『대관다론(大觀茶論)』이라는 전문 다서를 저술하였다. 

예술에 남다른 감각을 지녔던 휘종이 그린 <문회도(文會圖)>는 궁중에서 열린 다회(茶會), 즉 다연(茶宴)을 즐기는 장면을 자세히 그려낸 작품이다. 당시 송대의 음다법에 대한 기록성과 사실성을 이 그림을 통해서 상상할 수 있어 중요한 자료이다. 지금 이 연회의 중심에는 바로 차가 있다. 

이 그림에서 차를 준비하는 장면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화면 중앙에는 커다한 버드나무 아래에서 문사들이 차와 각종 음식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으며, 화면 하단에는 차를 준비하는 모습이 보인다. 먼저 차를 준비하고 있는 탁자를 좌측부터 살펴보자. 숯불을 피운 풍로와 물을 끓이는 다병(茶甁)을 비스듬히 놓아두고, 반쯤 열린 문 틈 사이로 찻잔으로 쓰일 잔들이 겹쳐져 놓여 있는 이층 구조의 함이 나란히 보인다. 바로 그 옆의 긴 다리 탁자 위에는 검은색 차받침이 쌓여있으며, 차 분말을 담으려는 듯 차받침 위의 찻잔들이 서너 개 준비되어 있다. 

이 탁자 주변에서 분주하게 차를 준비하고 있는 3명의 다동(茶童)들을 보자. 가장 좌측에 있는 다동은 물을 끓이고 있으면서 찻잔을 받으려는 듯 두 손을 조심스레 내밀고 있다. 그 옆에 있는 다동은 둥근 통에서 뜬 차 분말을 다완에 담으려 하고 있다. 두 손을 내민 다동은 이 찻잔을 받기 위해서인지 신중해 보인다. 또 나머지 한 명은 하얀 다건(茶巾)으로 우측 탁자의 찻자리를 청결하게 하는 중이다. 이 모습들은 송대 여러 작품들 속의 차를 준비하는 도상과도 매우 유사한데, 송대 왕족이나 귀족, 문인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다회의 장면이자 도상이다. 

이렇듯 이 그림 속의 차를 준비하는 모습에서 당대(唐代)의 자다법(煮茶法)과는 달리 송대에는 점다법(點茶法)으로 차를 마셨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당대 육우가 『다경』에서 서술한 자다법은 물을 끓이는 가마솥에 차 분말을 넣어 고르게 저은 후 다완에 담아 마시는 것이었다. 하지만 송대에는 <문회도>에서 보이는 것처럼 차 분말을 다완에 직접 넣은 후 끓인 물을 부어서 다선(茶筅)으로 거품이 날 때까지 휘저어 차 거품이 흰 눈이나 흰 구름처럼 피게 하여 마시는 방법이다. 이는 차의 향과 맛을 극대화하는 음다(飮茶) 방법이다. 여기서 ‘점다’의 ‘점(點)’은 ‘물을 붓는다’는 주수(注水)의 의미이다.

함은혜(사)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연구원
함은혜(사)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연구원

따라서 휘종의 <문회도>는 송대의 점다법을 확연하게 드러낸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에 그들이 즐겼던 차는 백차(白茶)이다. 백차란 제다 과정에서 고(膏)를 짜내서 엽록소를 최소화한 차로, 흰 색의 차 거품을 즐기며 마시는 차이다. 휘종 이후에 이 백차가 성행하게 되고 고려시대에까지 그 영향을 미치게 된다. 
 
화면의 문사들 뒤로 검은 빛의 거문고가 준비되어 있는 것을 보면 황실, 귀족들의 연회에서는 음식과 술, 그리고 차와 음악을 함께 즐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차를 준비하는 다동들의 신중하고도 즐거워하는 모습을 느껴볼 수 있고, 거문고를 연주하는 문인들의 즐거운 다회의 일면도 느껴지는 듯하다. 

여기 <문회도>를 통해서 약 천 년 전의 황실 귀족들이 즐겼던 다연(茶宴)을 함께 상상해보자. 차를 준비하는 모습이 별도의 도상화된 것을 통해, 이들이 즐긴 연회가 차와 술을 함께 즐기던 연회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오늘날 이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차 모임에도 문향(文香)이 스며들었으면 한다.

저작권자 © 뉴스퀘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