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아라리·아리랑·멧돼지·1,400살 주목 그리고 사북항쟁

[사진=김재준 시인]
[사진=김재준 시인]

[뉴스퀘스트=김재준 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오후 1시 넘어 숲을 내려가는 길. 구름 속에서 잠깐 해 나오니 매미소리, 물소리 더 요란하다. 누리장나무도 붉은 꽃봉오리 맺었고 말채·층층나무 사이 맞은편 산은 깎아 섰다. 30분 더 내려와서 바위로 쏟아지는 계곡물에 땀을 씻는다. 워낙 물이 차가워 시리지만 한참 있으니 덜하다.

바위 물이끼에 미끄러져 하마터면 머리를 다칠 뻔 했다. 골반 쪽이 오래도록 욱신거린다. 천일굴 다시 보고 아침에 올라갔던 나무다리 햇살이 살갑다. 오후 2시경 휴양림으로 내려왔다. 산삼금표 이정표가 왜 없냐고 물으니 안 내지도 에 연필로 표시를 해 준다. 가리왕산은 조선 시대 산삼이 많이 나서 마항치에 강릉부삼산봉표(江陵府蔘山封標)빗돌을 세웠다. 산삼을 못 캐도록 한 일종의 금지구역 표석이다.

오후 3시, 경치가 빼어난 아우라지에 는 햇볕이 따갑고 덥다. 물이 길게 흘러가 는 강, 오전에 비가 내려선지 하늘은 높고 구름도 하얗다. 강가의 처녀 상을 두고 다 리를 건너오는데 옥수수 파는 촌집 팻말 이 하도 엉뚱해서 잠시 들렀다. “삶은 찰옥수수 팝니다. 뒤편 파란지붕 3개 2천 원.”

“…….”

내놓고 파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러 오라는 것이다. 장사도 이렇게 당당 하게 할 수 있는가? 호기심에 들러봤다. 솥을 걸어놓고 나무를 때서 찌는데 덜 여물어선지 생각보다 맛이 못하다. 관광지라 빨리 팔려고 급히 딴 모양이다. 그렇게 자신 있게 팻말까지 세워놓고 나그네를 유혹하더니 책임도 못 지면서 처녀 가슴만 설레게 만들던, 딱 아우라지 총각 짝 났다.

아우라지는 두 갈래 물이 한데 모여 어우러지는 나루라는 뜻이다. 북쪽 구 절찬을 양수(陽水), 남동쪽 골 지천을 음수(陰水)로 여기는데, 장마 때 양수가 많으면 홍수 나고 음수가 많으면 장마가 그친다고 전해온다. 물줄기는 영월을 지나 남한강 상류를 만들며 흘러간다. 물길 따라 목재운반과 행상을 위해 떠난 님을 애절하게 읊은 것이 정선아라리다. 뗏목 터로 뱃사공의 소리 끊이지 않아 아리랑 유래지로 알려져 있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 다.” 정선은 조선개국을 반대한 고려 충신들이 위협을 느끼며 검은 구름을 피해 숨어든 산간오지였으니, 비통한 심정을 담아 부르던 가락은 민초들의 소리 에 실려 애절함을 더해갔다. 정선아라리는 조선 초기에 전승되어 충절과 남녀 의 사랑·그리움, 남편에 대한 원망, 시집살이 서러움, 고부 갈등·신세한탄 등 삶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 고스란히 담겼다.

아우라지 마주한 처녀총각이 사랑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동백 열매를 따러 가기로 하고 헤어졌는데, 야속한 빗줄기에 강물이 넘쳐흘러 나룻배를 띄울 수 없었다. 강가에서 이름만 애타게 부를 뿐.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리 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 사시사철 님 그리워 나는 못 살겠네.”

시집 간 색시가 있었다. 사랑도 모르는 어린 철부지 신랑 시중만 들다 지쳐 죽기로 했는데, 빙글빙글 도는 물레방아를 보고 마음을 바꿨다. 

“정선 읍내 물레방아는 물살을 안고 도는데, 우리 집에 서방님은 날 안고 돌 줄 왜 몰라.”

정선아라리 노랫말은 자그마치 수백 곡이 넘는데 후렴은 “아리랑 아리랑 아 나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로 끝난다. 한국의 서정민요 아리랑은 201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정선·진도·밀양아리랑을 3대 전통민요 아리랑으로 친다.

아리랑은 박혁거세 부인 아령(閼英)과 밀양 아랑(阿娘)낭자, 경복궁 공사 때 원납전을 내라는데 반발해 내 귀가 멀었다는 아이론(我耳聾), 나와 헤어진 낭군을 뜻하는 아리랑(我離郞), 고대 아리안 족에서 갈린 우리 민족이 동쪽으로 이 동했는데 하느님의 아들, 신성하다는 뜻인 아리아에서 유래됐다는 등 여러 가지가 있으나 정립된 것이 없다.

정선읍내로 가는 길에 나전역에 들러 옛 정취를 느끼며 지난다. 어제는 시원하더니 무척 덥다. 거의 6~7도 높은 28도, 뙤약볕에 습도까지 높으니 푹푹 찐다. 저녁때 오래된 자전거가 있는 정선 쌀 상회, 여인숙 간판을 보며 아직도 남은 옛것의 소중함을 생각해 본다.

새벽 5시경 일어났다. 지난밤보다 거리의 떠드는 소리 없어서 잘 잤다. 두 위봉 주목나무 보러 6시 넘어 정선을 나서며 김밥 몇 줄 샀다. 거의 1시간 정도 산꼭대기 오르는 꼬불꼬불한 도로를 지나 단곡 등산로 입구에 차를 세운다. 큰 산 한 개 넘어 하늘 아래 첫 동네로 온 것이다. 임도입구에서 병에 물 채우고 판초비옷을 챙겨 입는다. 조금 전 맑던 하늘이 안개와 구름으로 뒤덮여 빗방울 떨어진다. 8시에 임도 따라 오르는데 계곡에는 요란한 물소리. 옛날 이 근처에 탄광이 있었는지 시커먼 빗물이 흘러내려온다.

사방댐 지역을 지나 낙엽송이 하늘 쳐다보며 쭉쭉 뻗었다. 소나무 벤 자리에 심었는지 40년 더 된 것 같다. 박달·생강·산 목련, 산수국은 흰 꽃을 피웠다. 비는 점점 많이 내려 산본·거 제수·까치박달·난티나무 잎을 때리는 소리 더 세게 들린다. 두위봉 정상까지 1.7킬로미터 팻말이 반갑다. 8시 30분에 비 쏟아지는 감로수 샘터, 물맛이 좋아 물병에 가득 채운다.

산 목련 넓은 잎에 빗줄기 다닥다닥 더 요란하다. 겉 에는 빗물, 안쪽에 땀이 젖어 비옷을 입었지만 안팎으로 다 젖었다. 비와 땀이 분간 안 된다. 당단풍·사위질빵·국수나무, 동자꽃·잔대·중나리, 분홍빛 이질풀 꽃을 보며 돌계단 오른다.

9시경 능선 산마루 갈림길에 닿는다. 왼쪽은 남면 방향 내려가는 길, 우리 는 곧장 오른쪽으로 나아간다. 길가에 동자꽃, 이질풀·송이풀, 비비추 꽃망울 은 비를 맞고 축축 늘어져 있다. 철쭉, 만병 초를 만나고 9시 15분에 두위봉 철 쭉 기념비(자뭇골4.5·자미원4.2·증산6.2·도사곡5.5·단곡4킬로미터)에 서니 안개와 빗줄기에 갈 길이 어느 쪽인지 알 수 없다. 우리나라 최대 철쭉 군락지라 해도 보이지 않아 이정표 따라 힘겹게 도사곡 향해 간다. 

5분 후 두위봉 정상 (1,465미터)인데 표지석 대신 널빤지 같은 돌들이 미끄럽다. 정선군 신동·사북읍·남면, 영월군 중동면의 넓은 산세가 두루뭉술해서 두리봉, 두위봉(斗圍峯) 으로 불린다. 남쪽 단곡계곡으로 흐르는 물이 석항천을 만든다. 동북쪽은 도사 계곡, 억새풀 민둥산, 뒤편으로 가리왕산, 백두대간의 함박·태백산일 것이다. 사방으로 안개에 싸여 길을 모르고 금방 흙을 뒤져놓은 멧돼지 자국이 선명하다.

하도 미역줄나무가 우거져 단검으로 숲을 헤치면서 앞으로 간다. 마 치 정글의 개척자처럼 혹시 멧돼지라도 나타나면 도망갈 것이다. 보통 큰 멧돼지는 수백 킬로그램이다. 깊은 산 숲이 우거진 곳을 좋아하고 초식이지만 뱀· 들쥐·물고기·곤충도 먹는다. 청각과 후각이 발달해 인기척을 느끼면 1~2백 미터 앞에서 피한다. 그러나 먼저 집적대면 날카로운 송곳니로 가리지 않고 공격한다. 최근 개체수가 늘면서 영역싸움에 밀려난 놈들이 사람에게 덤벼들기도 한다.

아침으로 라면을 먹어선지 배가 고프다. 그냥 비를 맞은 채 서서 김밥 한 줄 정신없이 먹고 앞으로 가는데 사람 소리 들린다고 한다.

“빗줄기 쏟아지는 이 험한 산에 누가 오겠어?” 
“…….”
“환청이었나 봐.”

가만 들으니 빗속에서 인기척이 나는 듯하다. 
10시 30분, 남자 세 사람 만났다. 

“이 외진 산중에……. 반갑습니다.” 
“대단하십니다.”
“어디서 올라오셨어요?” 
“…….”

이들은 비 때문에 정상을 포기하고 도사곡으로 다시 내려가는 길이라고 한다.

조금 더 걸어 아래쪽에 드디어 1,400살 주목 어르신을 만난다. 아니 산신령을 알현하는 것이다. 두위봉 정상에서 사북 도사곡으로 내려가는 능선 길 바로 아래 세 그루. 안개에 둘러싸여 신비감을 준다. 말 그대로 신령(神靈)이며 신목 (神木). 나무 기둥은 어른 두엇이 팔 벌려 안을 만하고 높이는 20미터쯤 된다. 붉은 빛이 하도 선명해서 경건하게 기운을 느껴본다.

1,400년 전이면 서기 617년경 삼국시대에 서 지금까지…….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이라 더니 앞으로도 몇 천 년 더 살아 세상을 지켜 볼 것이다. 한갓 100년도 못 사는 인생, 저 발아래 떨어지는 빗물과 다를 게 뭔가? 제일 꼭 대기 신목 아래서 안개 자욱한 계곡 내려 보니 인간세상이 아니라 선계(仙界)다.

비 내리 는 풀밭 위로 분홍빛 노루오줌 꽃이 호위우 사처럼 울뚝울뚝 솟아있다. 빗속에 엎드려 네 번 절한다. 한 번의 절은 살아있는 사람에게, 두 번은 죽은 이에게, 세 번은 종교적인 절대자, 네 번은 거룩한 신령에게 올리는 것이다. 가운데 1,400살, 아래 위 1,200살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어 천연기념물이다.

일행이 된 이들과 서로에게 사진을 찍어주며 헤어졌다. 주목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만주·러시아·일본 등에 자라는 상록수다. 소백·태백·오대·설악 산 등 고산지대에 잘 자란다. 붉은 빛을 띠므로 주목(朱木)인데 가을에 달리는 붉은 열매는 약으로 썼고 목재는 장기판·공예품 등을 만들었다.

10시 45분께 비를 맞으며 왔던 미역줄나무 밀림을 헤치며 오른 다. 접골목인 딱총나무 잎은 확실 히 큰데 빨간 열매는 빗물에 붉은 빛이 뚝뚝 듣는다. 동자꽃도 더 붉게 폈다. 배낭을 짊어진 채 허리 굽혀 고개를 숙이며 걷는 이런 자 세는 산행을 더디게 만들고 빨리 지치게 한다. 어차피 고난의 행군, 걸음을 빠르게 디뎌도 친구는 잘 따라온다. 정오 무렵 사방이 더 캄캄한데 어느덧 정상이다. 여기부터는 안개를 헤치며 내려가는 길.

어려운 구간을 거의 지나온 것 같다. 30분쯤 돌길을 내려서서 샘터에서 물마시며 한숨 돌린다. 비는 멎을 줄 모르고 하염없이 내린다. 등과 배낭 사이 비 닐을 댔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배낭 속까지 모조리 젖었을 것이다.

드디어 낙엽 송 군락지 산길이다. 안개 걷힌 길도 한결 넓고 걷기 쉽다. 12시 45분, 아래쪽 잘 보이는 길가에 주저앉아 한 잔. 비옷을 입었지만 다 젖었고, 내리는 빗줄기 논박 맞으면서 기울이는 이런 경험을 언제 또 할 것인가? 오후 1시경 되돌아오니 빗줄기가 약해져 있었다. 콸콸 쏟아지는 물을 뒤집어쓴 뒤 옷을 갈아입었다. 날아갈 기분으로 운전대 잡으니 차 유리는 온통 부옇다.

10여 분 달려 오후 1시 45분 안경다리 탄광마을, 아침에 두리봉 들어가는 입구를 찾지 못해 헤맸는데 여기가 진입로인 셈이다. 해방 후 북한의 지하자원을 쓸 수 없게 되자 정선일대는 신동에 ý 들어서면서 탄광개발이 이 눠졌다. 50년대 후반 영월·정선 철도, 70년대 초 태백선이 개통되면서 사북· 고한이 대표적 석탄 생산지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철도개통으로 건설된 다리 모양이 동그랗게 생겨 안경다리인데 사북에도 있다. 사북항쟁 때 광부들이 투석전 벌인 곳이다. 민주화투쟁 시대인 1980년 4월 몽둥이·곡괭이를 든 동원 탄좌 노동자 수천 명이 노동착취에 충돌하여 파출소를 습격, 1명이 죽고 수십 명 다쳤다. 80년대 노사분규를 촉발시킨 계기가 됐다.

차창으로 보이는 빛바랜 건물들, 70년대 미장원 간판 앞에 내려 한참 동안 사진을 찍는다. 지금도 연탄난로에 고대기 올려놓고 머리 매만지던 언니들이 “어서 오세요.” 하고 나올 듯하다. 회색빛 함박, 적항을 지나서 달리니 언제 안 개 끼고 비가 왔느냐는 듯 햇살이 쨍쨍하다.

<탐방길>
● 가리왕산(정상까지 6.7킬로미터, 3시간 10분 정도)

자연휴양림 → (1시간 20분)어은골 임도 → (10분)상천임(바위) → (40분)묘지 → (30분)마
한 치 삼거리 → (20분)헬기장 → (10분)정상 → (20분)마항치 삼거리 → (30분)마항치 사거
리*중도 포기 → (30분)마항치 삼거리 → (50분)어은골 임도 → (1시간 40분)자연휴양림

● 두위봉(정상까지 3.5킬로미터, 1시간 20분 정도)
단곡등산로 입구 → (30분)샘터 → (30분)능선 갈림길 → (15분)철쭉기념비 → (5분)정상 →
(1시간 20분)천연기념물 주목 → (1시간 20분)두위봉 → (30분)샘터 → (30분)단곡등산로
입구
*두 사람이 빠르게 걸은 시간(기상·인원수·현지여건 등에 따라 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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