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미상, '이원기로회도', 1730년, 종이에 옅은 채색, 34cm×48.5cm, '이원기로회계첩',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작자 미상, '이원기로회도', 1730년, 종이에 옅은 채색, 34cm×48.5cm, '이원기로회계첩',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뉴스퀘스트=백남주 큐레이터] <이원기로회도>는 이원(梨園), 즉 장악원(掌樂院)에서 열린 기로회 장면을 그린 기록화다. 

버드나무 늘어진 아름다운 봄날, 스물 한 명의 노인이 한자리에 모여 잔치를 열었다. 이들이 잔치를 연 곳은 조선 시대 궁중에서 연주되는 음악과 무용을 관장하던 장악원, 다른 말로 이원이라 부른 관청 내 누정이다. 이 잔치에 참석한 인물들은 전 장악원 도정 홍수렴을 포함하여 모두 21명으로, 65세부터 85세까지 20년을 아우르는 연령대의 노인들이다. 이들은 5품에서 6품의 관직을 역임했다.  

조선 초기만 해도 기로회는 전·현직 고위 관리들의 공적인 모임이라는 성격이 강했는데, 18세기가 되면서 사적인 모임으로 성격이 변하고, 참여 범위도 확대되었다. 원래 ‘기로(耆老)’는 퇴임하거나 나이 든 관료들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18세기 이후에는 일반 사대부 노인들을 지칭하는 말로 의미가 확대되었다. 이에 따라 일반 노인들의 모임도 아취를 가미하여 기로회라고 부른 것으로 보인다. 

기로회에 참여 할 수 있는 계층이 다양해지면서 모임을 기념하고자 제작된 <기로회도>에도 형식의 변화가 생겼다. 전 시대에 그려진 <기로회도>나 <계회도>가 족자로 만들어진 것과 달리, <이원기로회도>는 첩(帖) 형식으로 제작되어 전해진다. 제일 앞면에 그림을 그리고, 이어서 좌목(목록)을 적었는데, 여기에는 모임의 표제와 참석자의 이름, 참석자들의 자와 본관 및 출생 연도, 그리고 품계와 관직을 적었다. 또한 영조 6년(1730)에 모임을 갖고 이 <이원기로회도>를 제작했다는 내용을 밝히고 있다. 현재 <이원기로회도>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과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본이 각 한 점씩 남아있다.

그림을 살펴보면, 산수화가 그려진 12폭 병풍을 친 누정 마루에 21명의 노인들이 반원형으로 앉아있다. 원래 누정 마루의 공간은 사각형인데, 원근법을 적용하여 앞보다 뒤를 좁게 그리는 바람에 반원 모양처럼 되었다. 독상을 받은 노인들 아래 쪽 양쪽 구석에는 이 모임의 축하객으로 참석한 것으로 보이는 갓과 도포를 차려입은 남자들이 두 줄로 앉아있고, 그들 옆에는 시중을 들기 위한 여인들과 현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기녀들이 술과 음식이 차려진 붉은 색 탁자 주위에 삼삼오오 모여 있다. 기녀들은 저고리를 입고 치마허리가 보이는 주름 잡힌 치마를 입고 있으며, 두 가닥으로 나뉘어 등까지 내려오는 띠를 머리 장식으로 매었다. 

건물의 중앙 부분에는 포구문을 중심으로 두 그룹으로 나뉜 무희들이 춤을 추고 있다. 화면 오른쪽에서는 오방(五方)을 상징하는 색상의 옷을 입은 다섯 명의 무희가 처용가면을 쓰고 한삼 자락을 휘날리며 오방처용무(五方處容舞)를 추고 있으며, 왼쪽에서는 세 명의 무희가 포구문에 공을 던져 넣으며 추는 춤인 포구락(抛毬樂)을 추고 있다. 두 춤 모두 궁중에서 열리는 잔치에서 시연되는 궁중정재(宮中呈才)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궁중 밖에서는 시연되기 어려운 춤이다. 

장악원은 주로 국가와 왕실의 공식적인 행사에서 음악과 춤을 담당하였던 관청이다. 때때로 왕은 특별히 축하 선물로 장악원 소속 악사와 무희를 일반 사가에 내려 보내 연주를 하게 했다. <이원기로회도>에 등장하는 장악원 소속으로 보이는 악사와 무희들이 왕이 축하의 의미로 보낸 선물인지, 아니면 이 기로회에 참석한 장악원 관리들이 재량으로 악사와 무희를 사적인 모임에 데리고 왔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누정마루의 난간 바깥에는 장구 1명, 피리 2명, 대금 2명, 해금 1명, 북 1명 등 모두 7명의 악사가 푸른색 포를 입고 갓을 쓴 채 삼현육각(三絃六角)을 연주하고 있다. 또한 악사들 왼쪽에 서있는 붉은 포를 입은 사람은 박(拍)을 잡고 있는데, 이 사람은 음악의 시작과 끝을 담당한다. 건물 밖 계단 아래에는 댕기머리 소년들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잔치를 구경하거나 담소를 나누고 있는 중이다. 

<이원기로회도>는 18세기에 제작된 다른 기록화에 비해 등장인물들의 표정이나 복식, 기물들을 매우 섬세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풍속화의 대가인 단원 김홍도나 혜원 신윤복의 필치와는 다르지만, 지붕이나 담장 등 건물의 세부 묘사와 나무의 표현아 매우 섬세하고, 사람들의 동작이나 옷자락까지 사실적이고 꼼꼼하면서도 생생하게 그린 것으로 보아 이 그림은 도화서 화원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여민동락 조선의 연희와 놀이(고려대 박물관, 민속원, 2018), 조선시대의 삶, 풍속화로 만나다(윤진영, 다섯수레,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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