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문인 차에 빠지다

(사)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연구원인 함은혜와 최혜인이 여러 그림 속에 나타난 우리 전통 차(茶)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품다도(品茶圖)

[뉴스퀘스트=함은혜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연구원] 명나라를 세운 태조 주원장(朱元璋, 1328~1498, 재위 1368~1398)은 산차(散茶: 잎차) 문화의 시대를 열었다. 주원장은 제다(製茶) 과정에 노력이 많이 드는 단차 제조를 중지하고 잎차를 진상하게 했다. 이로 인해 뜨거운 물에 잎차를 직접 우려서 마시는 포다법(泡茶法)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이와 같은 이유로 명대(明代)에는 장원(張源)의 『다록(茶錄)』과 허차서(許次紓)의 『다소(茶疏)』, 주권(朱權, 1378~1448)과 고원경(顧元慶, 1487~1565), 그리고 전춘(錢春)에 의해 연이어 편찬된 『다보(茶譜)』 등 잎차와 관련된 다양한 다서들이 저술되었다. 명대 황실에서 시작된 제다법의 변화가 민간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현대의 잎차에 이르게 된 것이다.

명나라의 대표적인 다인들 중 하나인 문징명(文徵明, 1470~1559)은 시서화(詩書畵)에 모두 능통했던 문인으로, 차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차를 주제로 한 다양한 그림들을 그려냈다. 그가 활동했던 명대 중기는 도시 사회의 경제적 기반이 안정되고, 사회 모든 분야에서 문화의 정통성을 회복하여 안정된 시기였다.

또한 그가 활동했던 지역은 강남지방의 소주(蘇州) 지역이었다. 원대(元代)부터 문인화의 전통이 확립된 소주는 경치가 수려하고 농업의 발달로 인해 경제가 번영하여 강남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특히 문인들은 그림과 글씨를 수집하고 감상하며, 시서화와 차를 논하는 모임을 갖는 등 명대 문인들의 문화의 중심지였다.

오파(吳派)는 이러한 배경에서 나타난 화파(畵派)로, 명대 중기 대표적인 문인화가였던 심주(沈周, 1427~1509)로부터 시작되었고, 그가 태어나고 활동한 소주의 옛 지명인 ‘오’를 따라 오파라고 하였다. 그 뒤를 이었던 심주의 뛰어난 제자인 문징명은 이 화파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오파(吳派)의 지도자 격인 문징명은 자신만의 풍격을 이룬 대가로, 오파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컸다. 동시대에 활동했던 축윤명(祝允明, 1461~1527)과 당인(唐寅, 1470~1523) 등의 문인들과 교유하며 늘 시와 그림을 주고받았고, 배움을 함께 나누었다. 문징명은 그림 속에 ‘사기(士氣)’, 즉 문인의 기개와 정신을 잘 나타낸 작품을 높이 평가했고, 이는 ‘문인스러움’, ‘문인다움’에 높은 가치를 부여한 것이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문징명의 대표적인 차 그림인 <품다도(品茶圖)>를 보자. <품다도>는 명나라 가정 신묘(嘉靖 辛卯)년(1531년), 그가 62세일 때 제작된 것으로, 자신과 벗과 함께 초옥에서 차를 마시는 장면을 그려냈다. <품다도>의 ‘품다(品茶)’는 ‘차를 논한다’는 뜻으로, 차를 마시고 품평하면서 모임을 가졌던 당시 문인들의 문화를 알 수 있는 그림이다.

이 그림 속의 배경은 실제 문징명의 다실(茶室)인 것으로 보인다. 소나무와 오동나무 아래의 초옥에 두 문사가 앉아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고, 멀리서 다른 한 명의 문사가 걸어오고 있다. 아마도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문사 중에, 정면을 바라보며 상의 가운데에 앉아 있는 문사가 문징명 자신일 것이다. 그 바로 옆의 작은 초옥에서는 다동 한명이 풍로 앞에 앉아 막대기를 들고서 찻물을 끓이고 있다. 당시는 문사들이 만나거나 모임을 가질 때, 차를 함께 즐기는 것이 예사였다. 이 작품은 소슬하고 정적인 분위기의 절정을 이루어, 섬세하면서도 우아한 품격이 느껴진다. 문인의 고아한 정취와 감정이 표출된 예술적 경지를 추구하는 그만의 풍격(風格)을 이루었다.

<품다도>의 화제(畵題)에 “푸른 산 깊은 곳, 작은 티끌조차 용납하지 않고, 모든 창문, 물을 향해 열려있구나. 차사에 좋은 때, 곡우가 막 지나서라. 찻물 끓자 멀리서 벗이 찾아오누나.(碧山深處絕纖埃. 面面軒窗對水開. 榖雨乍過茶事好. 鼎湯初沸有朋來.)”라고 하였다. 문징명이 그린 초옥은 그가 친한 벗들과 자주 모여 차를 마시던 장소이다. 깊은 산 속 고요하고 아취가 있는 초옥에서 독서하고 그림을 감상하고, 홀로 앉아 차를 마시며, 또 벗을 맞이하고 손님을 대하고, 오랫동안 청담(淸談)을 나누는 것, 이것이 바로 명나라 문인들이 추구하던 이상적인 삶이었다. 그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차는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3년 후, 1534년에 그가 그린 또 다른 차 그림 <다사도(茶事圖)>는 <품다도>의 주제와 구도 면에서 매우 유사하다. <다사도>에는 당나라 시인 육구몽(陸龜蒙)의 다구 시 10수를 적었으며, 특히 소나무와 오동나무 아래의 초옥 2채의 모습이 <품다도>와 같은 장소임을 알 수 있고 자신과 차를 마시고 있는 문사의 모습, 그리고 찻물을 끓이는 다동의 도상을 정형화한 듯 보인다.

이렇듯 명대 다화의 특징은 1~2명의 인물이 모옥에서 차를 마시는 장면이 그려진 점이다. 문징명의 <품다도>와 <다사도> 이외에도 <다구십영도(茶具十詠圖)>, <임사전다도(林榭煎茶圖)>, 당인의 <품다도(品茶圖)>와 <사명도(事茗圖)>, 구영(仇英, 1498~1552)의 <송정시천도(松亭試泉圖)>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위의 작품들에서는 다양한 나무로 둘러싸인 모옥 안에 홀로 사색을 하거나 벗과 함께 담소를 나누는 인물들이 있고, 그 주위에서 다동이 차를 준비하는 장면이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서문장(徐文長, 1521~1593)이 『서문장비집(徐文長秘集)』에서 품다(品茶)할 때 주변 환경과 분위기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던 것처럼, 이러한 모습이 즐겨 그려진 이유는 명대 문인들이 차 마시는 공간을 선택하는데 많은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이다.

함은혜 연구원
함은혜 연구원

산수자연이 단연 최고였고, 일상에서도 깊이 있는 차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다소(茶所)’나 ‘다실(茶室)’로 불리는 공간을 따로 만들기도 했다. 차를 마시는 환경도 문인들에게는 세속을 벗어나 유유자적하고자 하는 정신세계의 일부가 되었고, 만약 다옥(茶屋)을 짓지 못할 경우에는 서재나 서옥에 다구를 진열하여 항상 품다에 대비하였다. 당·송대와 비교하였을 때 명대 문인들은 차를 마시는 공간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심미적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더욱 집중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품다도>는 차인으로서의 문징명 자신을 투영시킨 작품이다. 그가 그린 차 그림들과 그 속의 제시(題詩)들을 통해서 문징명은 차에 밝은 문인이었고, 차에 취하는 것에 만족하며 시서화를 즐긴 명대 문인들의 문화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 화제 번역 및 감수 :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박동춘 소장

저작권자 © 뉴스퀘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