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감악산비석· 설인귀·안수정등

[사진=김재준 시인]
짐승이 바위에 앉아 멀리 보는 듯하다. [사진=김재준 시인]

[뉴스퀘스트=김재준 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임꺽정이 관군의 추격을 피해 숨었다는 장군봉 아래 임꺽정 굴, 그는 홍길동·장길산과 조선의 3대 의적으로 불린다. 임꺽정(林巨正, 林巨叱正 1504~ 1562)은 명종 때 경기도 양주 백정 출신으로 황해·경기 일대 관아를 습격, 창고를 털어 가난한 이들에게 곡식을 나눠 주었다. 관군의 동향을 백성들이 미리 알려주어 근거지를 확보할 수 있었으나 1562년 1월 대대적인 토벌 작전으로 구월산에서 항전하다 끝내 서울로 압송·사형 당했다. 민담으로 전래되면서 근대에는 소설과 영화 등으로 다시 살아났다.

설인귀의 전설 무성한 적성 일대

12시 40분 감악산 정상 675미터. 사람들 많이도 올라왔다. 비석이 이정표 뒤에 섰고 그 너머 통신 중계탑, 빗돌의 글씨는 알 수 없다. 하얀색 가는쑥꽃이 널브러졌다. 저 무거운 걸 어떻게 메고 올라왔는지 막걸리·아이스케키를 외친다. 정상의 비석은 글자가 없는 몰자비(沒字碑)인데, 사람들은 비똘대왕비·빗돌대왕비로 부른다. 진흥왕순수비, 또는 설인귀와 관련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감악산은 바위사이로 검푸른 빛이 비친다 해서 감악(紺岳), 먹빛·감색 바위산이라 불렸다. 화악·송악·관악·운악산과 함께 경기오악(京畿五岳)으로 알려졌다.

출생과 성장에 대한 의문이 많은 설인귀(薛仁貴)인데, 중국보다 적성 일대에 전설이 많은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 설인귀는 감악산에서 무술을 익혔으며, 당나라로 가서 고구려를 쳤고, 후에 이를 자책해 죽은 뒤 감악산 산신이 되어 나라를 지킨다고 한다. 말을 타고 달렸대서 설마치(薛馬馳), 눈 쌓인 감악산으로 말을 달려 무예를 익혔다 해서 설마리(雪馬里)라 불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감악 산사는 민간에 전하기를 신라가 당나라의 설인귀를 산신으로 삼고 있다(紺岳祠諺傳 新羅以唐薛仁貴爲山神)”고 하였다. 

설인귀(薛仁貴)는 농민 출신으로 당나라 장군이 되어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의 도호(都護)가 되어 침략전쟁을 수행하였다. 어쨌든 감악산 일대는 멀게는 당나라가 쳐들어왔고 6·25전쟁 때는 중공군이 쳐들어왔던 곳이다.

멀리 구름너머 임진강. [사진=김재준 시인]
멀리 구름너머 임진강. [사진=김재준 시인]

오후 1시경 팔각정(오른쪽 객현리2.4·까치봉0.3킬로미터, 정상150미터)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흐리다. 아스라이 보이는 개성의 송악, 청명한 날이면 임진강 너머 선명하게 보일 것이지만 산길마다 군사시설만 눈에 들어온다. 강물이 굽어지는 지점이 임진각이라고 가리키면서 후식으로 사과 한 입 베어 문다. 내려 가는 바위길 가을바람이 살랑살랑 싸리나무 잎들을 한순간에 떨어뜨린다. 1시 40분 까치봉, 바위 아래 쪽동백·때죽·신갈·쇠물푸레·소나무, 바위 옆에 철쭉은 먼지만 보얗게 덮어썼다. 2시쯤 삼거리(범륜사1.2·까치봉0.6·선고개1.2 킬로미터)에서 범륜사로 내려간다. 잠시 후 묵은밭 지나 숯가마터, 노랫가락 얼마나 구성지게 들리는지.

“정든 사람 우는 마음 모르시나 모르시나요. 무정한 당신이~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80년대 해금(解禁)된 가요인데 기타나 대금 연주하기 좋은 곡조다. 그래서 노래는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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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봉 [사진=김재준 시인]

백옥으로 만든 범륜사 관음보살

오후 2시 10분 범륜사에 닿는다. 예전에는 감악·운계·범륜·운림사 등 여러 사찰이 있었는데 범륜사만 남아 있다고 전한다. 목탁소리, 바람소리, 발 자국소리, 친구는 대웅전에 일배(一拜)를 하고, 햇살이 쨍쨍한데 나는 겨울옷을 입었으니 땀이 뻘뻘 난다. 절집 마당엔 보리수라 부르는 피나무, 건너편 돌 벽 이 멋스럽다. 주엽나무 팻말을 붙였는데 아무리 봐도 회화나무 같다. 백옥으로 만들었다는 관음보살은 얼굴이 정말 크다.

4시 반 경 운계폭포로 걸어가는데 바위 옆으로 기계 소리 윙윙거린다. 물을 퍼올려 다시 흘려보내고 있으니 양수폭포인 셈이다. 떨어지는 물살을 자연폭포로 알고 하류에서 온갖 포즈로 사진 찍는 사람들, 위에서 내려다보니 인간세상을 알 듯하다. 마음에서 비롯된 탐욕의 삶은 얼마나 위태로우며 쾌락은 또 얼마나 부질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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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악산 정상, 뒤에 몰자비. [사진=김재준 시인]

들판을 가던 사람이 불길에 휩싸여 어쩔 줄 모르는데 갑자기 코끼리가 달려든다. 죽을 힘을 다해 도망치다 등나무 넝쿨이 드리워진 우물 안으로 내려가는데 구렁이가 입을 벌리고 있다. 위에는 독사가 날름거리며 내려 본다. 힘은 점점 빠지고 쥐가 넝쿨을 갉아먹는 절체절명의 순간, 이때 벌집에서 꿀 한 방울 흘러내려 꿀맛에 정신이 팔려 있는 것이다. 절벽의 나무와 우물의 등나무 넝쿨, 안수정등(岸樹井藤)1)이다. 덧없는 한갓 인간 세계임에랴?

“덜 갖고 더 많이 존재하라.” 
“가질 게 없다.”
“…….”

줄을 서서 출렁다리 건너고 신발을 끄는 사람들마다 먼지가 보얗다. 아침보다 주차장엔 사람들이 더 많다. 오후 3시경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고 설마리, 양주시내, 의정부를 거쳐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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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계폭포. [사진=김재준 시인]

<탐방길>
● 정상까지 4킬로미터, 2시간 정도

설마리 주차장 → (20분)운계폭포·범륜사 → (15분)숯가마터 → (45분)임꺽정봉 → (40분)정
상 → (20분)팔각정 → (20분)까치봉 → (20분)삼거리 → (10분)범륜사·운계폭포 → (35분)
주차장
* 기상·인원수·현지여건 등에 따라 시간이 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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