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 색·향·맛을 겨루다

유송년, 투다도, 남송, 견본채색, 61.8x56.4cm, 대북고궁박물원
유송년, 투다도, 남송, 견본채색, 61.8x56.4cm, 대북고궁박물원

[뉴스퀘스트=최혜인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연구원] 차 문화는 11~12세기 이후 더욱 화려해지고 다양해졌다. 황실·귀족과 관료들은 다연(茶宴)을 열어 음악을 듣고 시를 지으며 차를 즐겼고, 서민들은 도시경제가 번영하면서 거리 곳곳에 다관(茶館)을 두어 차를 마시며 여러 사람들과 어울렸다.

송나라 사람 오자목이 1274년에 편찬한『몽양록』에는 모든 가정에서 매일 필요한 7가지[開門七件事] 중 하나가 차라는 내용이 있는데, 차를 마시는 일이 생활 곳곳에 퍼져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송대 차 문화의 여러 양상 중에서 특기할만한 것은 차 겨루기, 즉‘투다(鬪茶)’이다. 당나라 육우의『다경』에서 최상품의 차가 만들어지는 조건과 차를 잘 다루는 방법 등을 서술한 것이 차 품질 향상의 전환점이 되었고, 이를 토대로 어디서 생산된 차가 좋은 품질인지, 어떻게 다뤄야 온전한 차 맛을 내는지와 같은 차 품평을 하기 시작했다.

관료문인들이 하나 둘씩 모여 여러 지역에서 생산된 차를 평가하고, 누가 차의 색·향·맛을 잘 내는지 경쟁하였다. 오대(五代)에는 문인들이‘탕사(湯社)’라는 모임을 결성하고 차 겨루기를 하였다. 송나라 초기부터 유행한 투다는 이러한 차 문화의 연장선이었다.

차 겨루기는 어떤 모습으로 진행되었을까? 남송대 걸출한 인물화가 유송년(劉松年)은 그 순간을 잘 포착하여 그림으로 남겼다. 그가 그린〈투다도〉(대북고궁박물원소장)를 살펴보도록 하자.

아름드리 소나무 아래에서 4명의 사람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마주보고 서 있다. 주변은 고요하고 소나무 사이로 잔잔한 바람 소리만 들리는 듯 긴장감이 감돈다. 화면 왼쪽에 있는 사람을 보면 한 손에는 주구가 긴 차 주전자를 들고, 또 다른 손에는 찻잔을 쥐고 있다. 고운 차 가루가 든 찻잔에 뜨거운 물을 붓기 바로 직전의 장면이다. 세 사람의 관심이 그에게 모두 집중돼 있다. 뜨거운 찻물을 끓이는 이, 차 맛을 보려는 이, 그리고 차향을 맡으려는 이는 자신들이 하는 모든 행동을 멈추고 물을 붓는 순간에 시선을 빼앗겼다.

송나라의 탕법은 점다법(點茶法)이 주를 이룬 시기다. 다시 말하면, 차 가루가 든 찻잔에 뜨거운 물을 부어가며 다말(茶沫; 차 거품)을 내 마시는 것이 그 시대에 차를 마시는 방법이었다. 그렇다면 송대 사람들은 차 겨루기에서 어떤 차를 최상급으로 평가했는지 알아보자.

송대에는 차에 대한 전문서적이 많이 저술되었는데, 이는 차 문화가 체계화되고 그 수준이 향상되어갔음을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정위(丁謂, 966~1037)의 『북원다록(北苑茶錄)』, 채양(蔡襄, 1012~1060)의『다록(茶錄)』, 황유(黃儒, 11C)의 『품다요록(品茶要錄)』, 휘종(徽宗, 재위110~1125)의 『대관다론(大觀茶論)』등이 있다. 황제인 휘종이 차 전문서를 저술했다는 것만 보아도 당시 차에 대한 수준과 관심이 얼마나 높고 사회적으로 지대했는지 알 수 있다.

위 서적들을 정리해서 살펴보면, 차색은 백색을 가장 귀하게 여겼다. 그 다음으로 청백색, 회백색, 황백색 등으로 구별된다고 하였다. 채양은 차색을 잘 감별하는 것은 관상가가 사람의 기색(氣色)을 살펴보는 것과 같다고 기술하였다. 차향은 차가 갖는 본래의 향만을 온전히 지녀야 하며, 차 맛은 감미롭고 풍부하고 매끄러워야 으뜸이라 했다.

건요 흑유다완, 송대, 높이 5.5cm 입지름 13.3cm 바닥지름 3.7cm, 개인소장.
건요 흑유다완, 송대, 높이 5.5cm 입지름 13.3cm 바닥지름 3.7cm, 개인소장.

특히 다말이 백색인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는데, 찻잔에 담긴 흰 다말이 마치 하얀 꽃 같다고 하여 이를 유화(乳花)라 지칭하기도 했다. 그리고 ‘유화’를 극대화 시킬 수 있는 다완을 선호하면서 흑유다완(黑釉茶碗)이 유행하게 된다. 그중 건요(建窯)에서 만들어지는 토끼털 문양의 토호다완(兎毫茶碗)이 가장 유명하다. 흑유다완에 흰 다말이 피어난 것을 상상해보면 그 아름다움이 어떨지 가늠할 수도 없다.

당연히 투다의 모든 과정은 법도에 알맞아야 했다. 최소한으로 다말이 수면 위로 고르게 잘 펴져야 했으므로 점다 기술의 세밀함과 치밀함이 요구되었으며, 기본이 되는 차의 품질과 도구는 모두 최고의 상태를 필요로 하였다.〈투다도〉속 인물들도 모두 이것을 염두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백색의 다완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계층이 높은 사람들은 아닌 듯하다. 차의 색·향·맛을 품평하여 그 승패를 겨루었기 때문이다. 그들 주변에는 차 도구들을 정리할 수 있는 정리함이 놓여 있는데, 보통 대나무로 만들어진다.

유송년, 명원도시도, 남송, 견본채색, 27.2x25.7cm, 대북고궁박물원.
유송년, 명원도시도, 남송, 견본채색, 27.2x25.7cm, 대북고궁박물원.

유송년이 그린 또 다른 차 겨루기 그림은 〈명원도시도(茗園賭市圖)〉(대북고궁박물원소장)이다. 이 그림도 마찬가지로 마주보는 대결구도로 서 있으며, 주구가 긴 차 주전자를 높이 들어 다완에 붓고 있다. 다말을 잘 내기 위한 노력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장면이 ‘투다’를 주제로 한 작품에서 송나라뿐만 아니라 명·청대까지 똑같은 형식으로 그려진다.

동시대 고려에서도 차를 품평하고 겨루는 문화가 있었다. 이연종의 「박충좌가 차를 보내준 것에 사례하다[謝朴恥菴惠茶]」에서 “… 차를 겨루며 산승들과 노닐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투다는 차의 품질이나 다구를 발전시키는데 원동력이 되었지만, 결국에는 외형에만 치중하다보니 사치스럽게 변모되어 큰 폐단을 가져왔다. 이는 오늘날 우리들도 경계해야할 것이다.

〈투다도〉속 흐르는 긴장감을 느끼고, 다완 안에 핀 유화, 은은한 차향, 그리고 부드럽고 감미로운 차 맛을 상상하며 감상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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