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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응백의 국악인문학 ⑤] '관산융마'와 석북 신광수의 시(2)
[하응백의 국악인문학 ⑤] '관산융마'와 석북 신광수의 시(2)
  • 하응백 문화에디터
  • 승인 2019.03.27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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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회도
연회도

[뉴스퀘스트=하응백 문화에디터] 석북 신광수는 50세가 되어서 처음 관직에 오른다. 영릉(寧陵:효종의 능)을 돌보는 참봉으로 종 9품 벼슬이었다. 그야말로 뒤늦게 겨우 미관말직의 벼슬자리를 하나 받은 셈이었다. 하지만 한양 풍류가에서 석북은 시로 명성을 제법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무렵 석북이 지은 시로 가객 이응태에게 주는 시가 있는데 바로 그러한 사정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증가자이응태((贈歌者李應泰)

당대의 명창 이세춘이

십년동안 한양사람들을 경도시키네

청루에 협소들은 능히 창을 전하고

백수로 강호에서 신가락을 움직이네

9월9일 국화꽃이 벽사를 찾고

한 잎 배 옥피리로 섬강을 올라와

영동에 와 놀며 내 시를 많이 얻어가

또 장안 안에 이름을 가득 퍼뜨리겠구나

(當世歌豪李世春 十年傾倒漢陽人 靑樓俠少能傳唱 白首江湖解動神 九日黃花看甓寺 孤舟玉笛上蟾津 東游定得吾詩足 此去聲名又滿秦)

능지기라는 게 사실 별 할 일 없는 자리다. 여주에서 능지기를 하면서 석북은 늘 그랬듯이 소일거리로 시를 지었는데, 몇 년 전 다녀온 서북여행을 잊을 수가 없었다. 여행도 여행이지만 그를 위해 곡을 지어 노래를 불러 준 모란의 음성과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무렵 석북은 홍성원(洪聖源)이라는 사람에게, “모란의 소리는 슬픈 옥같은 소리/ 마흔 세 고을 가운데서 제일 가는 미인이라/대동강 밝은 달밤에/관산융마 들어봄이 어떠리(聲如哀玉牧丹歌 四十三州冠綺羅 明月大同江上夜 關山一曲聽如何, <送奏請副使洪侍郞聖源赴燕>)”라는 시를 지어 준다. 마침 홍성원이 청나라에 사신을 가게 되었으니 평양을 들르면, 꼭 모란이 부르는 노랫소리를 들러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랑삼아 이 시에 “기생 모란이 나의 관산융마를 잘 불렀기 때문(丹妓善歌余關山戎馬詩 故云)”이라는 주석을 달아 놓았다. 모란과 모란의 노래에 흠뻑 빠져있는 석북의 심정을 잘 나타내 주는 시라고 하겠다.

능지기 자리를 무사히 마친 후 석북은 53세 때는 금부도사가 되어 죄인을 호송하기 위해 제주를 다녀오기도 하는 등 관직 생활을 하다가 60세에는 연천 현감에 임명되기도 한다.

그러던 1772년 2월 61세의 석북에게 천재일우의 기회가 우연히 찾아 왔다. 나이가 많은 영조 임금은 나이가 든 사람들 중에서 대과에 급제하지 못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특별한 과거시험을 치게 하였는데(耆老科), 이 기로과에서 석북은 장원을 한 것이다. 이 장원으로 해서 석북은 승지로 임명되었다. 가난했던 석북은 나이 드신 어머니와 함께 직방(直房:숙직실)에서 살고 있었고, 이를 알게 된 영조는 집을 하사하는 특전을 베풀기도 했다. 석북의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시절을 노년에 이르러 맞게 된 것이다.

이 무렵 석북은 체제공(蔡濟恭)에게 또 한 번 모란을 언급한다. 석북은 자신보다 8세 아래였지만 관료로서는 훨씬 상급자였던 체제공이 평안도 감사로 부임할 때 축하의 시 6수를 보낸다. 먼저 석북은 체제공을 잔뜩 칭찬하고, 평양의 문물을 늘어놓은 다음 마지막 수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15년 전 내가 필마로

초초히 서관을 다녀왔네

맑은강 강뚝에서 두루 시를 짓고

지는 해 붉은 다락 홀로 자주 올랐어라

옥잔에 계당주를 취토록 마시진 못했지만

유람 배위엔 한떨기 모란의 노래를 실었었네.

(十五年前騎一騾 西關草草布衣過 淸江白堞高吟遍 落日朱欄獨倚多 玉椀雖空桂糖酒 蘭舟猶載牧丹歌 如今寂寞成陳跡 無計重游奈老何)

이 정도면 석북의 모란에 대한 정성은 가히 눈물겹다. 모란 홍보대사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석북의 모란에 대한 이러한 정성 때문인지, 이 무렵 석북에게는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 벌어진다. 꿈에도 그리던 모란이 서울에 올라와 이원(장악원)에서 노래를 하게 된 것이다. 문헌적인 증거는 없지만 당시 승지였던 석북이 그런 자리를 마련했거나 평안감사였던 체제공이 주선했거나, 그랬을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석북이 여러 로비를 통해 모란의 국립국악원 공연을 성사시킨 것이다. 석북은 감격했다. 그토록 그리던 모란과 모란의 노래를 재회한 것이다. 석북은 이 장면에서 시 한 수를 읊지 않을 수 없었다.

평양기생 모란이 이원에서 소리함을 듣고 붙임

(내가 일찍이 평양에서 놀 때 매양 모란과 함께 경치 좋은 누각에 오르거나 멋진 배를 타고 등잔불 앞과 달 아래에 있었다. 모란이 문득 관산융마를 노래하면 그 목소리가 지나가는 구름도 멈추게 하는 것 같았다.)

명기 모란이 머리 희어 소리하러 서울에 왔네

그 노래 솜씨 만인을 놀라게 한다네

평양 연광정 위에서 듣던 관산융마

오늘밤 다시 들을 수 있을까

청류벽 아래 유람배 타고

노래 소리 듣고 놀기를 몇 번이나 하였던고

서울 장안 오늘밤도

그 때 가을 대동강 밤같이 소슬하다

이원은 남으로 광통교에 접하고

지척에 아름다운 여인의 치마, 하지만 신선은 멀다

들으니 그대 고운 노래 소리 여전히 좋은데

아름답던 홍안에는 주름이 잡혔네

聞浿妓牧丹肄樂梨園

戲寄(余之西遊 每携丹妓於湖樓畵舫間 燈前月下 丹妓輒唱余關山戎馬舊詩 響遏行雲)

頭白名肄入漢京 淸歌能使萬人驚 練光亭上關山曲 今夜何因聽舊聲 淸流壁下木蘭舟 憶聽蔆歌幾度遊 萬戶長安今夕月 可憐猶似浿江秋 梨園南接廣通橋 咫尺仙裙弱手遙 聽說歌聲依舊好 秪應顔色到今凋

처음 만난 지 15년 정도가 지난 어느 가을, 석북은 드디어 서울 장안에서 모란과 해후했다. 모란의 노래 소리는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아름답던 그녀의 홍안에는 주름이 잡혔다. 모란의 명성이 대단했는지 그날 장악원에는 그녀의 노래를 듣기 위해 수많은 관객이 모여들었다. 모두들 모란의 노랫소리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요즘말로 하면 ‘평양 명기 모란의 소리공연’은 성황리에 끝났다.

그 만남으로 그들의 해후는 끝이었다. 이후 석북은 64세가 되던 1775년 4월 장릉(長陵:인조의 능)에 제관으로 차출되어, 비를 맞고 감기에 걸려 4월 26일에 유명을 달리했다.

석북과 모란의 애절한 사연이 담겨있는 <관산융마>는 지금도 서도소리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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