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쌈’은 길쌈하는 장면을 그린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45~1806 이후)의 풍속화로 《단원 풍속도첩》에 들어있다. [김홍도, 18세기 후반, 종이에 먹과 옅은 채색, 28cm×23.9cm, 보물 제527호, ‘단원 풍속도첩’,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길쌈’은 길쌈하는 장면을 그린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45~1806 이후)의 풍속화로 《단원 풍속도첩》에 들어있다. [김홍도, 18세기 후반, 종이에 먹과 옅은 채색, 28cm×23.9cm, 보물 제527호, ‘단원 풍속도첩’,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뉴스퀘스트=백남주 큐레이터] 길쌈은 부녀자들이 주로 가정에서 하던 일로, 삼(麻)·모시·목화·누에 등에서 실을 뽑아 삼베와 모시, 무명, 명주 등의 천을 짜는 전 과정을 말한다. 길쌈은 크게 실잣기와 천짜기 두 가지 공정으로 나뉘는데, 원재료의 종류에 따라 실을 잣는 방법도 달랐다. 조선 시대에 가장 대표적으로 사용됐던 천으로는 비단·삼베·모시·무명이 있는데, 이 가운데 고려 말에 중국에서 전래된 무명이 생산 과정이 간단하면서도 보온성이나 내구성이 뛰어나 가장 많이 생산되는 일반적인 옷감이 되었다.

이 그림은 길쌈의 두 가지 공정을 위아래 2단으로 배치한 뒤, 전체 구도를 ‘S’자 모양으로 역동적이게 구성하였다. 또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은 크게 그리고 먼 곳에 있는 사람은 작게 그리는 원근법을 사용하여 심도 깊은 화면을 보여준다.

위쪽에 등을 보이고 앉아 있는 여성은 실에 풀을 먹이는 일을 하고 있는데, 이 일은 베매기라고 하며 이렇게 풀을 먹인 실이 날줄이 된다. 본격적으로 옷감을 짜기 전에 베매기를 해야만 실을 날줄과 씨줄로 엮어 옷감을 직조할 수 있다. 그림 상단에서 팽팽하게 당겨진 실에 열심히 풀칠을 하고 있는 여성은 작게 표현되었는데, 이로 보아 이 여성과 그림 하단에 있는 여성 사이에는 물리적인 거리가 상당히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림 하단엔 나무로 만든 베틀에 앉아 베를 짜고 있는 여인이 있다. 길쌈을 한 시간이 오래 되었는지, 여인의 허벅지 위에는 완성된 옷감이 꽤 놓여있다. 오른손으로 씨줄을 감은 북을 날줄 사이로 통과시키고, 왼손으로는 바디를 내려치며 옷감을 짜고 있는데, 오른 발 엄지발가락에 실을 매 베틀신대에 연결시킨 뒤 팽팽하게 당기고 있다. 이 여인 뒤에는 시어머니로 보이는 노인이 젖먹이 아이를 등에 업고 서있으며, 그 옆에는 바람개비를 든 꼬마가 할머니의 치마 고름을 잡고 서있다. 할머니는 지금은 아이를 보는 일을 하지고 있지만, 본인 역시 평생을 베틀에 앉아 길쌈을 했던지라 며느리가 제대로 옷감을 만들고 있는지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는 듯하다.

우리 역사에서 길쌈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어 삼한시대 이전부터 한 것으로 추정한다. 삼국시대에도 길쌈은 매우 성행하여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유리왕이 나라의 여자들을 두 패로 나누어 한 달 동안 길쌈을 하게 한 뒤, 마지막 날 성패를 가르고,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시대에 천은 단순히 옷만을 짓는 재료가 아니었다. 옷감은 나라에 바치는 세금이 되기도 하고, 필요한 물품을 살 수 있는 화폐가 되기도 했다. 먼 길을 떠날 땐 노잣돈 대신 가져가 필요한 경비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렇게 쓰임이 많고 중요하다 보니, 수요에 비해 생산량이 늘 부족하여 천을 짜는 여성들은 힘든 노동의 굴레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 조선 시대에 여성들이 해야 했던 수많은 가사노동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크고 힘든 일이 바로 길쌈이었고, 여성들은 육아와 가사 노동을 병행하며 베틀에 앉아 밤늦게까지 옷감을 짜야했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길쌈노래·물레노래·베틀노래 등은 지루한 노동의 고통을 잊고 졸음을 쫒기 위해 여성들이 불렀던 노동요로, 그녀들이 겪은 인고의 순간을 전해준다.

이 그림에서 한 공간에 표현된 여성 삼대의 모습은 끊어지지 않는 노동의 굴레에 묶인 여성의 삶이 대를 이어 계속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김홍도는 조선 후기의 화가로 김해 김씨이고, 호는 단원이다. 그는 조선 시대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산수화·인물화·도석화·풍속화·영모화·화조화 등 회화의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했다. 김홍도의 풍속화에는 특히 예리한 관찰과 정확한 묘사력, 서민들의 생활에 대한 깊은 공감이 잘 드러나 있다.

【참고문헌】 단원 김홍도 연구(진준현, 일지사, 1999),

조선 풍속사1 : 조선 사람들 단원의 그림이 되다(강명관, 푸른역사, 2016)

풍속화(둘)(이태호, 대원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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