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정상(629미터) 표지석. [사진=김재준 시인]
관악산 정상(629미터) 표지석. [사진=김재준 시인]

[뉴스퀘스트=김재준 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관악산은 한강 남쪽, 서울 경계에 솟은 바위산으로 청계·백운·광교산의 한남정맥(漢南正脈)이 이어진다. 갓을 쓰고 있는 모습을 닯아 관악산인데 능선마다 바위가 많고 큰 바위가 봉우리로 연결되어 북한·남한·계양산과 더불어 분지를 둘러싼 천혜의 자연요새를 만들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백제·신라가 각축전을 벌일 때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다. 북서쪽 자운암을 지나 서울대, 동쪽으로 연주암과 과천향교, 남쪽으로 안양유원지가 자리한다. 연주대 정상에서 조선시대에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서쪽으로 삼성산(481미터)이 이어지고 삼성(三聖)인 원효, 의상, 윤필이 각각 일막·이막·삼막의 암자를 지어 수도를 했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고 지금은 삼막만 남아 삼막사(三幕寺)이다.

양의 기운과 기암괴석이 치유력을 높인다고

일반적으로 흙으로 덮인 흙산(肉山)은 지리산, 덕유산이 대표이고, 관악산처럼 악(岳)자가 붙은 것은 대개 험준한 바위산이다. 설악·관악·치악·월악·감악·송악·모악·화악·운악산 등인데 설악·관악·월악산을 전형적인 바위산(骨山)으로 친다. 화강암의 바위산은 바위기운이 흘러나와 기가 강한 산이다. 지하 수천 킬로미터에 있는 지구 핵(mantle)의 운동으로 만들어지는 전기 지자기(地磁氣)가 광물질을 지닌 바위를 통해 끊임없이 분출된다. 바위산에 오래 앉아 있으면 기(氣)를 받을 수 있다. 혈액에 녹아있는 철분을 타고 몸속으로 유입되는데 뇌세포를 자극하면서 기운이 감응한다는 것이다.

관악산 일대는 화강암의 풍화로 이루어진 선돌(Tor, 立石)형태의 물고기, 동물 등 다양한 형상으로 장군·하마·마당·토끼·거북바위 등 기암괴석이 많다. 나의 소견으로는 물이 없는 바위산은 양(陽)이 상승하고 그렇지 않은 곳은 음(陰)이 강해서 치유(治癒)는 양, 치성(致誠)은 음이 유리하다고 여긴다. 관악산을 굳이 음양으로 구분하자면 아침 해를 듬뿍 받는 위치에 있고, 거칠고 씩씩해서 양의 기운이 센 것으로 본다. 서울지역에는 관악·북한·도봉·수락·인왕산 등 바위산(骨山)이 많아 사람들의 성품이 옳고 그름(曲直)을 잘 따지는 편이고, 산세가 웅장한 강원·경상도는 충직하며 전라도 산은 가지런해서 재인(才人)이 많고, 충청도 산세는 순해서 인정이 많다고 생각한다.

관악산 등산로는 주로 신림동 서울대 입구에서 정상까지 약 4킬로미터 구간을 많이 이용한다. 맑은 계곡물과 호수공원을 따라 오르는 길은 걷는 재미가 남다르고 과천 중앙동으로 오르는 3킬로미터 구간, 풍광이 좋지만 5킬로미터 거리로 다소 먼 안양 동안구 쪽에서도 정상에 오를 수 있다. 햇살이 따가운 바위산 곳곳마다 흙이 씻겨 내려가 척박한데 소나무·진달래·철쭉 종류와 팥배나무 등 거친 환경에 잘 견디는 나무들이 자라고 바위틈에서 회양목이 관찰되기도 한다. 산 아래로 내려갈수록 신갈·상수리·물푸레나무, 생강·국수·병꽃나무 등이 대표식물(優占種)이다.

레이더에서 바라본 정상, 절벽 위에 연주암. [사진=김재준 시인]
레이더에서 바라본 정상, 절벽 위에 연주암. [사진=김재준 시인]

바위와 어울려 사는 노란 감국, 팥배나무를 바라보다 11시경 낙성대로 가는 봉우리에서 잠시 쉰다. 쇠물푸레·싸리·노린재·작살나무를 수첩에 기록하는데 땀이 뚝뚝 떨어져 볼펜이 잘 구르지 않는다. 20분 더 걸었다. 지도바위(아래 관악문)너머 케이블카는 서쪽에 있고, 정상의 바위들이 우뚝 솟아 잘 보이는 곳이다. 11시 25분 갈림길(사당4.5·관악사지0.8킬로미터)에서부터 장날처럼 붐빈다. 도시 근교 산이라 오가는 사람들끼리 어깨를 부딪치기 일쑤인데 빨갛게 단장하고 올라온 여성들이 대다수, 오리·신갈·소나무들이 단연 푸르지만 온산에 팥배나무도 붉은색 립스틱이다.

눈앞에 있는 헬기장에서 산위를 쳐다보니 역광을 받은 억새가 일품이다. 하늘거리는 깃에 달린 햇살이 붉은 듯, 흰 듯 반짝이는데 관악산과 억새가 만들어준 실루엣, 자연의 신비로움을 다시 느끼면서 내려간다. 시끄러운 헬리콥터 소리에 눌려 11시 55분 하마바위 지난 갈림길(낙성대3·사당역·2.7·연주대2.3킬로미터)이다. 사당역 방향에서 사람들이 많이 올라오는 상봉약수터 쉼터까지 불과 5분 거리인데도 졸졸졸 감질 나는 물줄기처럼 지루한 내리막길이다. 정오 무렵 고구마 한 개 들고 바위에 앉아 먼 산을 바라본다. 콜럼버스가 유럽으로 가져오기 전 중앙아메리카 대륙에서 허기를 면했듯 나도 배고픔을 달래면서 처사(處士)가 되어 보지만 금강산 식후경의 유혹임에랴……. 팥배·오리·신갈·리기다소나무를 두고 12시 25분 서울대 갈림길, 곧 왼쪽 낙성대 방향으로 10분 거리에 서울시과학전시관, 서울대 후문 쪽이다.

12시 45분 낙성대에 도착한다. 사당(祠堂)은 공사 중인데 날렵한 장군의 동상은 관악산을 등지고 말을 타고 달려가는 용맹의 상징이다. 멀리 관악산 정상이 흐릿하게 다가온다. 낙성대(落星垈)는 관악구 봉천동 강감찬(姜邯贊 984∼1031)장군의 사적지로 태어날 때 별이 떨어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애국충정을 기리고자 사당 안국사를 짓고(1974년) 사적공원으로 만들었다. 인근 집터에 고려시대의 삼층석탑이 있었는데 이곳으로 옮겨 왔다. 소년 강감찬이 산을 오르다 칡덩굴에 걸려 넘어지자 모두 뽑아 관악산에는 칡이 없고, 발자국처럼 깊이 팬 곳이 많은 것은 무예가 뛰어나 바위를 박차면서 생긴 흔적이라고 한다.

고려는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에 북진정책을 폈다. 이로 인해 소손녕이 침입하자 서희의 담판으로 압록강 동쪽을 회복하였고, 강동6주1)를 차지할 목적으로 두 번째 침략했으나 실패, 1018년 소배압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세 번째 쳐들어왔다. 강감찬은 정예군 1만 명으로 의주(흥화진)에서 쇠가죽으로 만든 둑을 터뜨려 몰살시켰고, 청천강(귀주)에서 도망갈 곳 없는 적을 계곡으로 유인한다. 불어오는 바람에 화살을 퍼부어 10만 대군 중 살아간 사람은 수천 명에 불과하였다. 보통 두 전투를 일컬어 귀주대첩이라고 부르는데, 이후 거란은 침략 야욕을 버리게 되었고, 을지문덕의 살수·한산도대첩과 함께 3대첩이라 한다.

아스팔트길을 걸으니 덥고 다리도 아프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물었더니 다시 올라가거나 건너편 산으로 가라고 한다. 오후 1시, 관악구민 운동장쪽으로 올라가는데, 무슨 재경 군민회를 하는지 차를 막아놓아 다니기 불편하다. 골목길 이리저리 걷고 물어서 아침에 차를 대 놓은 관악산 주차장을 찾아걷는다. 걷는 것이 마냥 즐겁지만 봉천7동 주택단지를 20분가량 걸어 큰길로 나오니 배고프다.

낙성대 강감찬 장군 기마상. 멀리 관악산 정상이 흐릿하게 보인다. [사진=김재준 시인]
낙성대 강감찬 장군 기마상. 멀리 관악산 정상이 흐릿하게 보인다. [사진=김재준 시인]

봉천동 고갯길 도로 옆에 청진동 해장국집. 이를 쑤시는 사람들이 길가에 서서 수군대는 이른바 문전성시(門前成市)를 방불케 하는 곳이다. 피곤한 나그네는 어깨에 짊어진 배낭을 내려놓는데 넙죽 인사하는 주인인 듯 종업원인 듯 반갑게 맞는다. 깍두기 곁들인 한 잔에 피로를 잊는다. 서울식 선지국이라 콩나물을 섞어 짜지 않아서 별미다.

해장국집 주인은 남장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오가는 손님에게 인사하기 바쁘다. 지나칠 정도로 인사 잘하는 곳 처음 봤다. 원목 탁자마다 밑에 휴지통을 가지런히 놓았는데 입 닦고 불편하지 않도록 한 것이 좋다. 어쩌면 이렇게 생리적인 실례를 배려했을까? 서비스가 아니라 감동이다. 해장국 한 그릇 3만 5천 원이래도 줄 수 있겠다.

관악소방서·경찰서, 문영여고를 지나 고갯마루 내려서니 가까이 세 번, 멀리서 일곱 차례, 산 형세를 알듯한데 근삼칠원(近三七遠) 관악이 불타는 연기처럼 부옇다. 오후 1시 50분 대학 정문 앞에는 도로공사로 혼잡하다.

“아스팔트길 오래 걸어 다리 아프다.”

“…….”

“도로에 서서 하루 종일 신호기 흔드는 사람도 있어.”

“…….”

아침부터 신호기를 흔들던 마네킹은 아직도 그 자리에 꼼짝없이 서서 손짓을 하니, 아무리 사람이 아니래도 중노동이다. 박절(拍節) 스위치를 넣어 간헐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도 괜찮을 텐데…….

오후 2시경 주차장까지 원점회귀 하는데 5시간 걸렸다. 주차요금 몇 만 원. 일요일은 도로변에 일렬주차를 허용하는데도 구태여 주차장을 고집했으니 융통성 없긴 참……. 서울깍쟁이처럼 햇살도 인색한 10월 오후 시내를 달려간다.

<탐방길>

● 정상까지 4킬로미터, 2시간 15분 정도

관악산 입구 주차장 → (25분)호수공원 갈림길 → (15분)연주대·무너미고개 갈림길 → (25

분)토끼바위 → (15분)제3왕관바위 → (10분)국기봉 → (45분)정상 → (20분)지도바위 → (5

분)사당·관악사지 갈림길 → (35분)상봉약수터 → (45분)낙성대 → (15분)관악구민운동장

→ (40분)관악소방서·문영여고 → (20분)관악산 입구 주차장

* 바위길 보통 걸음 평균 시간(기상·인원수·현지여건 등에 따라 다름).

글 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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