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 배 위에 퍼진 차향

전 이상좌 '주유도' 견본채색, 155.0x86.5cm, 개인 소장
전 이상좌 '주유도' 견본채색, 155.0x86.5cm, 개인 소장

[뉴스퀘스트=최혜인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연구원] 거대한 산봉우리 아래 흐르는 강줄기를 따라 내려오면 한 척의 낚시 배가 보인다.

시원한 소나무 그늘 아래서 머물며 고사(高士)는 낚싯대를 던져놓고, 그 뒤에서 다동이 찻물을 끓이려는 듯 작은 바가지로 물을 뜨고 있다. 배 위에 차향이 가득 퍼져 있는 것 같다. 이 그림은 조선 초기 전(傳) 이상좌(李上佐, ?~?)의 〈주유도〉이다.

그는 본래 어느 사대부의 종이었다가 뛰어난 그림 실력을 인정받아 중종(中宗, 재위 1506~1544)이 천민의 신분을 면해 주었고 도화서 화원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의 전칭작 중 잘 알려진 것은 <송하보월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불화첩』(보물 제593호,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이다.

화면 원경에 높이 솟아오른 험준한 산봉우리들은 2단으로 배치하여 깊이감을 더하고 있고, 중경에서 근경까지 이어지는 넓은 강은 작품 전체에 고요한 느낌을 준다. 이를 감상하고 있으면 자연의 웅장함에 압도되는 듯하다.

근경에는 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강 쪽으로 기울여져 있다. 기울어진 나무가 만들어 주는 그늘 아래에 있는 배 한 척 외에 강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사람 발길이 드문 곳임을 알 수 있다. 한편,〈주유도〉처럼 인물보다 산수의 비중이 큰 그림을 대경산수인물화(大景山水人物畵)라고 한다.

한가롭게 정박한 배를 자세히 살펴보자. 고사는 낚싯대를 던져놓고 무심하게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본래 ‘낚시’는 물고기를 잡는 것이 목적인데, 정작 그것엔 관심이 없는 듯하다. 이 고사를 보고 있으니 두 명의 인물이 떠오른다. 대표적 은일지사인 태공망(太公望, ?~?)과 엄광(嚴光, BC.39~AD.41)이다.

태공망은 주나라 문왕(文王)의 스승이었고, 무왕(武王)을 도와 주나라가 대국이 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로서, 우리에게는‘강태공’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문왕은 폭정과 방탕한 생활로 민심을 잃은 상나라 주왕(紂王)을 토벌하고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자신을 도와 줄 인재가 필요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강가에서 유유히 낚시를 하고 있는 한 노인을 발견하게 된다. 문왕은 그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예사롭지 않아 함께 궁으로 왔다. 훗날 그는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여러 방면으로 문왕와 무왕을 도와 주나라가 강성한 국가를 세우고 선정(善政)을 베풀도록 했다. 그의 성은 강(姜)이고 이름은 상(尙)으로, 태공이 바랐던 인물이라 하여 태공망으로 불렸다고 전해진다.

엄광은 어릴 적부터 유수(劉秀; 훗날 광무제)와 절친한 관계였다. 그러나 유수가 황제에 즉위하자 이름을 바꾸고 깊은 산에 은거했다. 광무제는 그가 매우 보고 싶어 곳곳을 물색하였는데, 연못에서 한가로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그를 궁으로 불러 환대하면서 몇 번이나 벼슬하길 권하였으나, 엄광은 끝내 거절하고 다시 산으로 돌아갔다.

태공망과 엄광의 행보는 달랐지만, 고아한 인품과 실력을 갖춘 인물의 표상으로 떠올랐다. 그 둘이 은거하였을 때 홀로 낚시하며 소요한 모습은 문인들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모습이 되었다. 낚시는‘속세를 벗어나 유유자적 즐기는 행위’로 인식되면서 문학과 회화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였다. 문인들에게 낚시는 세월을 낚는다는 의미로, 세상일을 관조하거나 조급해 하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하는 일로 인식된 것이다. 〈주유도〉속 인물에서 태공망과 엄광의 모습이 연상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차를 준비하는 모습이 그려졌다는 것이다. 은일의 행위인 낚시와 함께 등장한 것은 차를 마시는 일도 동일한 의미로 바라봤음을 알 수 있다. 차는 문인들에게 내면에 평온을 주고, 자신을 수신(修身)하기 위한 음료였던 것이다. 혼란한 정치적, 사회적 상황에서 벗어나 낚시를 하거나 차를 마시는 일은 소요하며 수양하고자 한 문인들의 바람이었다.

최혜인 연구원
최혜인 연구원

조선 초기 문신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은 세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한탄하며 이를 잠시 잊고 마음껏 노닐고자 시를 지었는데, 이 그림에서 추구하는 이상향을 엿볼 수 있다. “생각하건대 응천에 가서 마음껏 노닐자면 필상과 차 끓일 도구 낚시 배에 실어 가겠지… (憶向凝川放意遊, 筆床茶竈釣魚舟…. 金宗直, 『佔畢齋集』卷1 「和兼善送鄭學諭致韶之大丘」”라 하였다. 차향 가득한 낚시 배 위에서 마음가는대로 시를 쓰며 이리저리 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니 무척 자유로워 보인다.

차 그림에서 다동은 보통 풍로에 불을 붙이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반면,〈주유도〉에서는 물을 뜨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소매를 걷어 붙이고 몸을 숙인 모습은 고고하게 앉아 있는 고사의 모습과 대비되어 해학적이다.

멋스러운 그늘 막 아래에는 서적들과 찻잔 등 여러 물건들이 놓여있다. 낚시를 하다가 잠시 독서하고, 목이 마를 땐 차 한 모금 마시는 고사를 상상해보니 당시 문인들이 추구한 풍류를 맛본 것 같아 마음이 시원해진다.

*참고사이트

한국고전종합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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