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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형의 와인인문학 ②] 지상 최고의 술
[이철형의 와인인문학 ②] 지상 최고의 술
  • 이철형(와인나라 대표)
  • 승인 2019.04.23 0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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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이철형(와인나라 대표)] 최고의 술은 무엇일까? 애주가들은 이런저런 장광설을 늘어놓으며 한번쯤은 최고의 술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았을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비오는 날 부침개와 함께 들이키는 막걸리가 최고다. 무슨 소리? 죽마고우와 함께 삼겹살 구워놓고 먹는 소주가 최고지. 아니야, 술 하면 그래도 위스키야, 뒤끝 없고, 목 넘김 좋고. 글쎄, 고량주가 윗길이지, 화끈하게 취하고 깨끗하게 깬다니까...

나의 첫 술 경험은 짓궂은 이종사촌 누나 덕에 대여섯 살 때 막걸리로 시작된다. 월남전 참전에서 돌아오신 아버님 덕에 초등 3학년 때 맥주를, 그리고 집에서 경산 포도로 담근 달달한 포도주를 처음 접했다. 중학생 때 애꾸눈 해적 상표의 캡틴큐가 처음 나왔을 때 호기심에 사서 마셔본 적도 있다.

이 술은 고등학생 때 마신 제과점의 복숭아 샴페인과 함께 다음날 머리가 뽀개지듯 아팠던 나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래도 고등학생 때 마셔본 마주앙과 고량주는 향이 있어서 그리 나쁘지 않았다.

정작 남들이 흔히 마시는 소주는 대학 신입생 때 처음 맛보았다. 그냥 분위기 때문에 마셨지 맛있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사회 초년병시절엔 동료들이 소주 마실 때 나는 그들이 한약이라고 놀리던 백세주를 마셨다.

그 이후로 위스키와 위스키-맥주 블렌딩의 폭탄주로 많은 날을 지새웠다. 일본계 회사에 근무하면서 사케를 접했고 백세주와 소주의 칵테일인 일명 오십세주를 지나 불혹의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와인 애호가들의 종착역이라는 부르고뉴 와인을 처음 접했다. 루이 라투르의 알록스 꼬르통.

유레카!

나는 이 술을 마시고 완전히 다른 술의 신세계를 발견했고, 곧 그 세계에 빠져들었다.

남다른 다양한 주류 편력(?)의 결과, 나는 와인이 모든 알코올음료의 왕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것은 결코 내가 와인 사업을 하고 있어 하는 말이 아니다. 나의 인생은 와인을 알기 전과 와인을 알고 난 후로 나뉜다고 까지 단언할 수 있다. 와인을 알고부터 나는 미식의 세계에 새로운 눈을 떴다.

물리적으로 현재를 살고 있지만, 나는 와인을 통해 전혀 다른 세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과 그 다양한 세계를 최대한 폭넓게 경험하고 알 수 있게 되었다. 또 와인을 마시면서 나는 인생이라는 소풍을 더욱 재미있고 더욱 풍요롭게 즐길 수 있다는 것도 깨달게 되었다. 외인은 과연 술중의 으뜸인 것이다.

어떤 기준으로 와인을 감히 술중의 으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세계화의 한 현상으로 와인 생산국에서는 일인당 와인 소비량이 매년 감소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세계 와인시장은 화장품 시장의 1/2이상, 음반시장의 3/5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매년 2~3% 성장하고 있다. 왜 이렇게 와인 시장은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일까? 와인 시장 성장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는 무엇일까?

첫째는 선택의 다양성이다. 맛과 향의 다양성과 가격의 다양성을 와인은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자유는 곧 선택의 다양성과 직결되므로 자유라는 가치를 마음껏 누릴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와인만한 술이 없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같은 것을 이틀 연속 먹으면 물리게 마련이고 늘 새로운 것을 찾는 것이 인간의 본성 아닌가. 와인의 경우 와인을 만드는 양조용 포도의 종류만 해도 최소 1,400여 가지가 넘는다. 이 중에서 약 50종이 사실은 전 세계 와인의 80%를 만드는 주요 품종이기는 하지만, 품종만이 와인의 맛과 향을 결정하는 요소가 아니다.

여기에 기후, 토양, 양조가라는 세 가지 변수가 더해져서 와인의 맛과 향이 결정되기에 그 조합은 거의 무한대에 가깝다. 심지어는 동일한 생산자가 만든 같은 포도원의 같은 품종으로 생산한 동일 빈티지(포도가 생산된 해이자 와인이 양조된 해)의 와인조차도 병마다 향과 맛이 다를 정도이다. 와인의 이러한 변화무쌍함 때문에, 와인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병 숫자만큼의 맛과 향이 존재한다고 할 정도이다.

또한 천금을 주어야 살 수 있는 비싼 와인도 있지만, 대중들이 즐길 수 있는 가격대의 좋은 와인도 얼마든지 많다.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서 일부 특권층만이 향유할 수 있다면 그것은 만인에게 최고일 수는 없다. 빈부를 넘어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술이어야 가격으로도 선택의 다양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와인은 그러한 조건을 충분히 충족시킨다.

둘째는 문화적 요소의 다양성이다. 술도 문화의 소산이므로 맛과 향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스토리가 담겨 있을수록 매력적이다.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술이 와인이다. 생산되는 나라가 북위 20~50도, 남위 20~40도의 벨트에 속하는 나라 중에 겨울이 우기이고 여름이 건기인 나라들에서는 모두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그래서 이 와인들은 역사적으로도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수많은 역사와 스토리를 담고 있다. 즉 와인에 담긴 문화적 요소의 풍부함에 다른 술은 감히 명함을 내밀 수가 없다.

셋째는 건강에 대한 유익성 여부이다. 과음은 몸에 해롭다고 하지만 적당한 음주는 몸에 유익할 수 있다.

음주와 장수와의 상관관계에 관한 의학 연구들은 전혀 음주를 하지 않거나 과음하는 사람보다는 오히려 하루에 두세 잔 정도로 적당히 음주하는 사람이 장수하는 것으로 결론짓는다. 한걸음 더 나아가 주종별로 비교하면 다른 주종보다 와인을 마신 사람이 더 장수한다고 한다.

게다가 뇌과학자들에 따르면 와인 마실 때 뇌는 활성화된다고 한다. 손흥민 선수가 결승골을 넣는 것을 보거나, 사랑을 나누거나, 아름다운 풍광을 보거나, 눈물 나게 감동을 받거나 하는 등의 경우도 뇌가 활성화되겠지만, 와인을 마실 때 역시 그런 활동성을 보인다고 한다.

다만 와인을 마시는 경우 쾌락과 행복을 지배하는 호르몬까지 분비되어 중독성까지 띄게 한다고 하니 이것만 경계하면 된다.

넷째는 술을 마셔도 음주자에게 좋은 이미지를 부여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와인은 남녀 모두에게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술이라고 할 수 있다. 와인은 마시는 사람에게 우아하고 고급스럽고 밝고 유쾌한 이미지를 선사한다. 이것은 와인은 귀족의 술이었고 맥주나 소주는 서민의 술이었으니 이것을 마시는 사람은 문화 수준도 다를 것이라는 선입견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

와인에 대해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영화나 광고 등의 메스미디어를 통한 학습 효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거나 와인에는 고급한 이미지가 따라다닌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와인이 만국 공통 음식 언어가 되고 있고 시장이 꾸준히 성장하는 데는 ‘와인을 마시는 사람에게는 품격이 있다’라는 이미지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다섯째 함께 마시는 사람들 사이에 소통의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와인은 서양 식사에서 우리의 국이나 국물이 있는 반찬 같은 역할을 담당한다. 와인 생산국들은 대부분 물이 좋지 않아 물을 그냥 마실 수 없다. 더구나 주식이 육류여서 수분이 반드시 필요하니 그 보완책으로 발달한 것이 와인이다.

와인이 음식과의 궁합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리고 우리네 식탁에서는 말없이 조용히 먹는 것이 미덕이었지만 서양사회는 식탁에서 즐겁게 대화하면서 서너 시간을 보내는 것이 기본이다. 당연히 대화를 촉진하고 대화를 이어나가게 하는 화제의 역할도 해야 하는데 이런 역할에 와인만한 술이 없다.

적당한 알코올이 있으니 소독제와 소화제 역할도 하고 적당히 기분이 좋게 되니 내성적인 사람조차 유쾌하게 대화의 장으로 나오게 만드는 마술을 부리는 것이다. 와인은 취하기 위해 마시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와인은 잔의 볼이 제일 넓은 부분까지 따라서 그 이하로 내려가면 첨잔하는 것이 매너이다. 자신이 더 이상 마시고 싶지 않으면 그대로 두면 첨잔을 하지 않게 되어 각자가 마시는 양을 조절할 수 있다. 과음을 피하면서도 식사 시간 내내 대화를 즐길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와인이다.

여섯째 술의 원료 자체가 주식용 곡물이거나 원료 재배지가 주식용 작물의 경작지거나 동물 사육지가 아니어야 한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꽤 오랜 기간 막걸리를 쌀 대신 밀가루로 만들게 한 적이 있었다.

사람 먹을 쌀도 없는데 그것으로 술을 빚는다는 이유에서였다. 모래나 자갈 땅처럼 척박한 땅에서 오히려 맛있는 포도가 열리니 주식인 밀이나 쌀과 경쟁할 필요가 없는 것이 바로 와인이다.

오히려 유기농이나 바이오 다이나믹 농법으로 포도를 재배하는 포도원에서는 양이나 닭 등을 포도원에서 함께 키우기까지 하니 동물 사육지로도 활용하고 포도나무 사이에 자라는 풀을 사료로 제공하기까지 한다.

일곱째는 우리 일상 생활의 다양한 상황에서 이용되는 범위가 넓어야 한다. 축하, 위로, 감사, 사과, 집들이, 승진, 개업, 파티 등등의 모든 상황별로 스토리텔링을 통해 진심과 정성을 담아 전할 수 있는 술은 와인 밖에 없다.

여덟째 컬렉팅의 묘미까지도 부여하여 준다. 사람들의 취미 중의 하나가 무엇을 모아놓고 세월이 가면서 지켜보는 것이다. 와인은 인간의 수집 본능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것이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양주를 모으는 취미를 가진 사람도 있었고 집집마다 인테리어로 양주 몇 병은 기본으로 가지고 있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양주는 알코올 도수가 높아서 변질되지 않은 채 장기 보관은 가능하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지나면서 맛과 향이 발전하거나 개선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와인은 이것이 가능하다. 컬렉팅의 대상은 기본이고 시간이 지나가면서 맛과 향이 변하여 새로운 빈티지와 과거의 빈티지를 한 자리에서 비교 테이스팅까지 할 수 있는 것은 와인밖에 없다.

특히나 50년, 100년 이상의 세월을 와인은 품고 있으니, 그 세월의 축적마저도 한 자리에서 비교해볼 수 있다.

아홉째 재테크의 수단도 되어야 한다. 골동품, 미술품과 함께 재테크의 수단이 되는 술은 와인 밖에 없다. 서양에서는 유명인이 사망하는 경우 제일 먼저 달려오는 사람이 장례사가 아니라 와인 옥션 담당자라는 유머가 있을 정도다.

자손들 입장에서는 술보다는 유산의 균등 배분이 중요하기에 옥션에 내놓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우스운 현실도 존재하지만.

객관적으로 변질 없이 오랜 기간 동안 믿을 만한 장소에 잘 보관된 와인은 시간이 흐르면 희소성의 가치에 의해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술중에 주식처럼 시장 거래 지표가 매일 다루어지고 있는 술은 와인이 유일하다.

열째 예술과의 결합성도 인간의 삶에서 아주 소중한 요소이다. 마실 때 인간의 모든 감각을 불러 일깨워 집중하게 하고, 음악, 미술, 영화 등 모든 종류의 예술 장르와 결합되는 술은 와인 말고 딱히 떠오르는 술이 없다.

소주, 위스키, 중국 백주 등의 잔이 작은 이유는 독주라서 입안이나 혀끝부터가 아니라 저 목 깊숙한 곳에 털어 넣어야 하기 때문인데 결국 이 술들은 맛과 향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곡류나 포도를 제외한 여러 과일로 만든 저도주들은 입 안 가득 물고 그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도록 큰 잔에 마신다. 하지만 그 술들도 와인만큼 다양하게 맛과 향을 선사하지도 않고, 마신 후 뒷맛의 여운까지도 챙겨야 하는 술은 별로 없다.

입안에서부터 목넘김까지 챙기는 술이다 보니 어찌 감성과 결합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래서 그런지 예술이나 속담에서 와인만큼 여러 소재로 많이 사용된 술이 없다. 그냥 술이 좋아 술을 마시고 시를 읊은 시인들은 많았지만 특정한 술 종류를 주제로 삼은 경우가 와인만큼 많은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이상의 열 가지 기준들만으로도 와인은 충분히 마셔볼 만하지 않을까?

와인 마시기를 부담스러워하는 많은 분들이 와인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일종의 공포심(?)이나 강박 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표현한다. 사실 술이란 것이 마시고 즐기는 것이지 굳이 공부하면서까지 마셔야 한다는 것에는 나도 반대한다.

하지만 마시다보면 저절로 궁금해지게 되고 그래서 그것이 알고 싶어 스스로 인터넷 검색을 통해 배워가는 것이 와인이기에 마지막 열 한 번째 기준은 마시면서 지식에 대한 목마름으로 교양과 지혜까지 쌓이게 하는 술이 와인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결국 자신도 모르게 감성과 교양이 풍부한 사람으로 익어가게 하는 것이 와인이기에 와인이야말로 술중의 왕이요 최고의 술이라고 거침없이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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