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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응백의 국악인문학 ⑦] 소상팔경과 신도팔경과 몽유도원도(1)
[하응백의 국악인문학 ⑦] 소상팔경과 신도팔경과 몽유도원도(1)
  • 하응백 문화에디터
  • 승인 2019.05.08 06: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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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팔경도 중 어촌낙조, 전 안견(작자미상),16세기
소상팔경도 중 어촌낙조, 전 안견(작자미상),16세기

[뉴스퀘스트=하응백 문화에디터 ] <심청가>에는 심청이가 공양미 3백석에 몸이 팔려 인당수에 빠지기 직전, ‘범피중류’와 ‘소상팔경’ 대목이 나온다. ‘범피중류’는 중국의 여러 경승지를 노래하는 대목이고, ‘소상팔경’은 억울하게 혹은 안타깝게 죽은 중국의 여러 사람들의 원혼을 달래는 대목이다. ‘범피중류’는 사람을 물에 제물로 바치러가면서 한가하게 경치 타령이나 한다고도 볼 수 있다. 전체 스토리와는 상관없이 보이는 장면이 판소리 다섯 바탕에서는 가끔 등장하는 것이다. ‘소상팔경’은 단가로도 부르는데, 한 대목은 이렇다.

격안어촌(隔岸漁村) 양삼가(兩三家)에 밥 짓는 연기 일고

파조귀래(罷釣歸來) 배를 매고 유교변(柳橋邊)에 술을 산 후

애내성(欸乃聲) 부르면서 흥을 겨워 비겼으니

소림(疏林)에 던진 새는 지는 해를 설워 울고

벽파(碧波)에 뛰는 고기 빗긴 볕을 맞어 노니

어촌낙조(漁村落照) 이 아니냐

이 대목을 쉽게 풀이하면, “강안 민가에서는 밥 짓는 연기가 일고 낚시하다 돌아와 배를 매고 고기 주고 술을 사서 취하게 먹은 후에 어부들이 노래 부르고, 숲 속에 있는 새는 저녁이 오니까 슬피 울고, 파도에 고기가 뛰면서 노니 이것이 바로 어촌에 해가 지는 풍경이 아니냐” 정도가 된다. 이는 서사적이라기보다는 대단히 서경적이다. 마치 한 폭의 그림을 설명하는 듯하다. 즉 어촌낙조에 대한 풍경인 것이다. 이 어촌낙조가 바로 소상팔경 중의 하나다.

소상팔경은 11세기 북송(北宋)의 문인화가 송적(宋迪)의 그림에서 확립되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이후 소상팔경도는 남송의 여러 문인화가들에 의해 유행처럼 계승되었다. 소상팔경도는 중국의 명승지 호남성 동정호 남쪽 언덕 양자강 중류 소수(瀟水)와 상강(湘江)이 합쳐지는 근처의 경치를 그린 것으로 추정되며 소상팔경은 그 화제(畫題)에 해당한다. 그 화제는 다음과 같다.

산시청람(山市晴嵐·푸르고 흐릿한 아침나절의 산마을)

연사모종(煙寺暮鐘·안개에 싸여 저녁 종소리 울리는 산사)

원포귀범(遠浦歸帆·먼바다에서 돌아오는 돛단배)

어촌석조(漁村夕照·저녁노을 비친 어촌 풍경)

소상야우(瀟湘夜雨·소강과 상강이 만나는 곳의 밤비 풍경)

동정추월(洞庭秋月·달이 비친 동정호의 가을 정취)

평사낙안(平沙落雁·기러기 날고 있는 모래사장)

강천모설(江天暮雪·저녁 눈 내리는 강과 하늘)

송나라의 소상팔경도는 남송과 교류가 잦았던 고려에 영향을 미쳤다. 『고려사절요』

에 보면 그 내용이 비교적 상세히 전한다. 고려 19대 임금 명종은 그림그리기를 아주 좋아했다. 좋아한 정도가 아니라 정사를 돌보지 않고 그림에 매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명종은 1170년 정중부 등 무신들이 난을 일으켜 의종을 폐위하고, 그를 추대해서 왕이 된 인물이다. 때문에 애초부터 실권이 없었고 그림그리기로 무료함을 달랬다.

『고려사절요』에는 “왕이 그림에 익숙하여 화공(畫工) 고유방(高惟訪)ㆍ이광필(李光弼) 등과 더불어 종일토록 물상(物像)을 그리면서도 피로함을 잊었고, 더욱 산수를 잘 그려 군국(軍國)의 정무(政務)를 마음에 두지 않으니, 근신이 왕의 뜻에 맞추어 무릇 정무를 아뢸 때에는 간략한 것을 위주로 하였다”고 되어 있다.

이 명종이 1185년 “문신(文臣)에게 명하여 소상팔경(潚湘八景)의 시를 짓게 하고 왕이 그 시의 내용대로 모사(摹寫)해서 그림을 만들었다.” 이것이 소상팔경에 대한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이다.

중국 북송에서 최초로 소상팔경이 시작되었지만, 남송대에 와서 더욱 꽃피웠고, 고려 때는 무신란에 의해 권력을 빼앗긴 허수아비 왕대에 시작되었다는 것은 소상팔경이 단순한 회화나 시제가 아니라 문치주의에 의한 평화와 태평성대에 대한 갈망이 담겨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무릉도원과 같은 동양적 이상주의의 시적·화화적 표현이 바로 소상팔경도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동양적 유토피아가 시화(詩畫)로 표현된 것이 바로 소상팔경도여서, 이는 고려 명종의 단순한 소일거리에 그치지 않고, 그 후대에도 계속 소상팔경(도)은 전통을 이어나가면서 새로운 팔경으로 진화하기도 했다. 관동팔경, 관서팔경, 송도(개경)팔경, 신도(한양)팔경 등으로 토착화되면서 확대 재생산된 것이다.

이 소상팔경도가 절정을 이룬 것이 바로 ‘비해당소상팔경시첩(匪懈堂瀟湘八景詩帖:보물 1405호)’이다. 비해당은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의 호.

안평대군은 왕자 시절인 1442년,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안견에게 소상팔경도를 그리게 하고, 고려시대의 문장가 이인로와 진화의 팔경시를 옮겨 적고 김종서·성삼문·박팽년·신숙주 등 당대 유명 문인 19명의 시문을 넣어 두루마리 상태로 꾸미게 했다. 이 시첩 중 그림은 현존하지 않으나 시문은 남아 있어 보물 1405호로 지정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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