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응백 문화에디터
하응백 문화에디터

[뉴스퀘스트=하응백 문화에디터] 신라시대의 노래인 향가나 고려시대의 노래인 고려가요를 해석할 때 학자들은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

그 노래가 만들어진 사회의 여러 문화적, 사회적 맥락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 사회의 특정한 말도 상당한 세월이 흐르면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신조어가 훨씬 빠른 속도로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여성 정치인이 말해 논란이 되고 있는 ‘달창’도 그러한 말 중 하나다. ‘달창’이란 ‘달빛 창녀단’의 준말이라고 한다. 이게 도대체 어떤 맥락에서 만들어진 말일까?

1980년대 초반 한국의 대중가수 중 조용필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특히 조용필에게는 10대 소녀 팬들이 많았다.

그전에도 나훈아나 남진 같은 가수들이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고, 10대 소녀팬들이 많았지만 조용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조용필의 팬들은 훨씬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팬심을 폭발시켰다. 1982년 발매된 조용필의 4집 앨범 '못찾겠다 꾀꼬리'에 수록된 노래는 거의 다 히트를 쳤다.

그 중 '비련'이라는 노래가 있다. “기도하는 사랑의 손길로 떨리는 그대를 안고 포옹하는 가슴과 가슴이 전하는 사랑의 손길....”로 시작하는 노랫말이다. 이 노래는 첫 음절 ‘기도하는’ 이후 잠시 휴지부가 있고, 이 휴지부에 조용필의 소녀팬들은 공연장마다 대규모로 따라다니며, ‘오빠’를 외쳤다. 조용필의 '비련'은 “기도하는(오빠!) 사랑의 손길로”로 대중들에게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부대’라는 말도 한국적 특성을 반영한 말이다.

한국에는 국민 개병제에 의한 군사 문화가 전 사회에 자연스럽게 퍼져 있었던 만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소녀팬들은 군대의 한 편성 단위인 ‘부대’를 연상하기에 딱 적합했던 것이다. ‘오빠부대’라는 표현은 그 이후 한국사회에서 누구나 알 수 있는 자연스러운 말이 되었다.

2000년대 ‘오빠부대’라는 말은 새로운 영역으로 진입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열성 지지자들을 일컬어, 반대 진영에서 좀 비아냥거리듯이 부르던 말이 신조어로 탄생했던 것인데, 그게 바로 ‘노빠’다. ‘노빠’란 바로 ‘노무현 오빠부대’의 준말이었던 것이다.

이 ‘노빠’는 노무현대통령의 계승자라고 볼 수 있는 문재인 열성 지지자들을 의미하는 말인 ‘문빠’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문빠’라고 하면 아무래도 문재인 지지 그룹에서는 듣기 불편한 말이다.

이에 새로운 신조어가 탄생한다. 그게 바로 ‘달빛 기사단’이다.

문재인대통령의 성인 문(文)은 발음상 영어 단어 Moon과 같고, Moon이 달을 뜻하니, 그리고 기사라는 건 중세시대 영주나 국왕을 보호하고 호위하는 집단이었으니, 그런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그런데 한 인터넷 모임에서 이런 이름을 비아냥거리며 조롱하는 말을 또 만들어냈다.

“너희들이 뭔 기사냐? 창녀지.” 이런 생각으로 ‘달빛 창녀단’이라 명명했고, 이걸 줄여 ‘달창’이라고 불렀다. ‘문빠’가 ‘달창’이 된 것인데, 이 정도까지 오면 우리말의 오염이 심하다 할 것이다. ‘창녀’라는 말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으로 보면, 지극히 부정적이고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한 특정 개인을 지칭하여 ‘창녀’라고 불렀다면 바로 명예훼손에 해당한다.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한 특정 인터넷 사용자 모임이 그 말을 사용했다면 그건 비속어이긴 해도 은어(隱語)에 해당하여 달리 비난할 방도가 없다. 하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 정치인이 대중들에게 이런 말을 사용하면 문제가 달라진다.

공개석상에서 ‘달창’이란 말을 한 사람이 여자이건 남자이건 상관이 없다. 여기서 그 말을 한 야당 원내대표를 비난할 생각도 없다. 알고 했건 모르고 했건 그러한 말을 사용했다는 것 자체가 한국의 현실 정치 수준을 말해준다고 할 것인데, 정치란 바로 말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품격 있는 정치는 결국 말에서 나온다. 위트가 담긴 말로 정쟁(政爭)을 하고, 유머가 있는 말로 상대를 공격하는 그런 정치 현장을 보고 싶다. 다수 국민들은 ‘일베’보다 훨씬 수준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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