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뉴스퀘스트=이규창 경제에디터] 기업이 수행하는 IR의 종류는 다양하다.

기업은 장소를 빌려 주주나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직접 설명회를 열기도 하고 전화로 하는 컨퍼런스 콜(conference call)을 진행하기도 한다.

대규모 자금이 필요할 때는 투자자를 찾아가 하는 설명회, 즉 로드쇼(road show)를 수행한다. 당장 자금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기존 투자자 또는 잠재적 투자자에게 기업을 설명하기 위한 NDR(Non-Deal Road show)도 있다.

개인 투자자나 애널리스트, 신평사 연구원 등을 대상으로 일대일 미팅, 또는 소규모 미팅을 갖기도 한다. 이를 애널리스트나 연구원 입장에서는 기업탐방이다. 개인 투자자의 경우 직접 만나기보다는 전화나 메일로 응대하는 경우가 많다. 모두 IR의 다양한 형식들로 기업의 소통구조에는 별로 빈틈이 없어 보일 정도다.

그렇다면 현실은 그럴까. 대기업조차도 실적발표회를 제외하고 IR을 자주 갖지 않는다. 중견·중소기업은 말할 것도 없다. 투자자와의 소통에 소홀한 이유는 다양하다.

기업은 굳이 IR을 통해 약점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또, 많은 사공을 반기지도 않고 비용대비 효과도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중소기업은 담당한 전문 인력조차 부족하다.

이처럼 많은 기업들이 IR을 귀찮은 일정 정도로 치부해버린다. 이렇다보니 종목 토론방에서는 개인 투자자들이 문제제기, 확인되지 않는 정보 짜깁기, 토론, 결론을 내리는 풍경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꾸준히 성장하고 대규모 자금을 조달할 요인도 없으며, 기업 경영에 대한 별다른 투자자들의 저항이 없는데도 굳이 많은 돈을 들여 설명회나 로드쇼를 열어야 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주주자본주의가 강화되는 추세에 기업 스스로 잡음을 만들 필요가 있냐고 따질 수도 있다. 적지 않은 오너나 CEO가 실제로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IR을 통한 투자자와의 소통은 기업 스스로의 장기 투자행위이자 지속가능 기업의 출발점이다. 평소 충실한 IR은 특히 위기 때 그 위력을 발휘한다.

한 때 재계 서열 열 손가락 안에 들었던 A그룹은 전형적인 B2B에다 이익률이 높지는 않지만 상당히 안정적인 사업을 주력으로 삼고 있었다.

꾸준히 성장했지만 속도는 다른 대기업보다 훨씬 더뎠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큰 재미없는 투자처’이자 ‘그래도 망하지는 않는 곳’ 정도라고 볼 수 있었다.

이익률이 떨어졌지만 손실도 입지 않았다. 수십 년 연속 흑자라는 자랑스러운 타이틀도 따라다녔다. 따라서 평소 IR 등을 통한 소통에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A그룹은 창업주에 이은 2대 회장이 갑자기 작고하면서 전문경영인을 CEO로 영입했다. 상속 받을 아들이 아직 학생 신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전문경영인은 기존과 달리 M&A를 통한 외연 확장에 집중했다. 당시 기술 개발을 통해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에 집중하려고 했으나 주력 사업의 이익률은 치열한 경쟁으로 점점 더 하향 곡선을 그렸기 때문에 당연한 선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A그룹의 움직임은 나중에 일부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그것도 일부 M&A에서 잡음이 나고 재무상 변화가 감지된 후였다.

귀신같이 냄새를 맡은 해외 투자자들이 A그룹의 발행 채권을 내던지기 시작했다. A그룹의 채권 금리가 치솟기 시작하자 보도와 분석 보고서 내용이 심각해졌다.

결국, A그룹이 비교적 짧은 기간에 주력 사업과 관련 없는 M&A와 차입 인수로 경영상 어려움에 빠진 사실이 하나씩 드러났다.

나중에 구조조정 과정에서 밝혀졌지만, 경영권을 담보하지 않은 지분 투자도 많았다. 이는 추후 매각을 통한 구조조정을 상당히 어렵게 했다.

초기 A그룹의 대응 방식에도 문제가 있었다. 일부 언론이 M&A 행보를 거론하고 재무적 부담을 언급하자 A그룹은 공개적인 IR보다는 홍보 담당자를 앞세워 개별 대응에 나섰다.

개별 대응도 전반적인 그룹 사정에 대한 설명보다는 지적한 부분에 대한 해명에 무게를 뒀다. A그룹은 위기설이 점차 확대될 조짐을 보이자 홍보 담당자를 새로 영입하는 등 나름대로 위기관리에 애를 썼다.

그러나 급한 불만 끄고 보자는 식의 대응은 곧 한계를 보였고 위기설은 일파만파로 퍼졌다. 신용등급은 갈수록 떨어졌고 워크아웃설까지 나돌았다. 급기야 채권단이 나서게 되면서 A그룹은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치게 됐다.

당초 A그룹의 사업 다각화 의지가 잘못되지는 않았다. 주력 사업이 성장의 한계에 부딪히면 당연히 어떤 식으로든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A그룹은 평소 IR을 통한 커뮤니케이션 작업에 소홀했다. 물론, 오너 또는 CEO가 경영적 판단을 하나하나 투자자에게 물어가면서 진행하라는 말은 아니다.

시장 변화에 빠른 대처가 필요한 시대에 이런 과정은 오히려 시의적절한 경영적 판단에 해가 될 수도 있다. 다만, 합리적 지적에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오판할 확률이 줄어든다. 결국 투자자들의 분노는 A그룹의 위기에 그대로 투영됐다.

A그룹의 교훈은 평소 IR에 소홀하고 위기 때 미시적인 대처로 나설 경우 어떻게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매각 대상의 명단을 보고 투자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A그룹은 자산을 매각할 때도 과거에 왜 인수했었는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도 하지 않았다. 손실을 입고 매각하는 처지에 설명이 궁색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뒤늦게 자산 매각 성과를 홍보할 때마다 오히려 ‘불투명한 기업’이라는 인식만 강화시켰다. A그룹이 평소 소통을 잘했으면 어땠을까.

 

저작권자 © 뉴스퀘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