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국수식당
베트남 거리에서 흔히 볼수 있는 쌀국수식당. [사진=석태문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스퀘스트=석태문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농업경제학박사] 한국 사람과 베트남 사람이 물에 빠졌다.

둘 다 수영할 줄 모른다. 누가 더 오래 생존할까? 대부분의 다른 언어와 마찬가지로 한국어는 소리를 목구멍에서 바깥으로 뱉어낸다. 베트남어는 반대로 삼키는 듯 소리낸다. 그러니 ‘살려달라’고 말하면 한국인은 목으로 들어온 물을 뱉어내지만, 베트남인은 오히려 들이키게 된다.

답이 나온 것인가? 농담이지만, 두 나라 발성이 이렇게 차이가 크다. 베트남은 왜, 이런 발성체계를 가지게 되었을까.  

베트남은 우리 못잖게 외세에 시달린 민족이다. 기원전 111년에 중국 한나라에 복속되어 서기 939년에 독립했다. 천년 이상 나라를 빼앗긴 것이다. 이후에도 속국과 독립을 반복하며 여러 왕조가 교체되었다.

1883년에는 프랑스 식민지가 되었고, 1940년에는 일본의 보호국이 되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베트남은 프랑스와의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승리한 1954년에 독립했다. 그럼에도 강대국들은 베트남을 그냥 두지 않았다.

북측은 베트남민주공화국, 남측은 베트남공화국으로 반쪽짜리 독립이 주어졌다. 베트남민주공화국은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 1975년 마침내 통일국가를 이루었다. 그런데 이것이 베트남어 발음과 무슨 상관이? 꼬치꼬치 물으면 할 말이 없다.

오랜 침탈과 국권 상실 속에서도 베트남인의 독립 항쟁은 멈추지 않았다. 숨죽여 독립 투쟁을 준비했을 것이고, 낮새도 밤쥐도 모르게 거사를 감행했을 것이다.

이런 환경이, 노출을 꺼려야 할 독립 항쟁의 방식이 삼켜버리는 베트남식 발성체계를 만든 것은 아닐까? 문외한의 단순한 상상이니 너무 귀담아 듣지는 마시길. 그만큼 그들은 외세에 맞서 오랜 투쟁을 했다는 이야기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길거리는 삶의 중심이다. 그들의 휴식, 토론, 다툼, 술자리, 식사, 심지어 낮잠까지도 길거리에서 이루어진다. 베트남에서 길거리는 사람들을 품어주는 공간이다. 길거리가 있어서 사람들은 만난다. 속으로 삼키는  발성과 노출하는 길거리 삶은 이율배반적이다. 항쟁의 역사가 베트남 사람들에게 준 스트레스를 길거리와 광장이 주는 자유와 열림으로 만회하려던 것이었을까?

이유를 찾기 위해 그렇게 멀리 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멋진 집을 놔두고 길거리를  찾는 이유는 간단하게 생각하면 더위 때문이다. 5월 중순 베트남의 기온은 25도에서 40도를 오르내린다. 한여름 밤, 한국에서 25도가 넘으면 열대야라 부른다.

베트남의 5월은 온통 열대야로 물들었다. 에어컨이 없던 시절, 선풍기도 없었던 베트남을 생각해 보자. 한낮의 더위에 집안에 있는 것이 가능할까? 낮에 달구어진 열기는 밤에도 식지 않는다. 밤인들 집안에 있는 것이 쉽지 않다. 이래저래 베트남의 길거리는 낮이고 밤이고, 사람들을 품는 광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도시에서 베트남 길거리의 진수는 카페이다. 카페는 열린 강도가 가장 높은 길거리 공간이다. 가정집과 가게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베트남에서 카페는 성업 중이다. 아예 4면이 열려 있는 공원같은 카페도 많다. 공간이 널찍하여 바람도 잘 통한다. 나무가 자연지붕이 되었으니 햇볕을 막아주고 선선한 바람도 부니 사람들이 선호할 만하다. 

교차길 카페
교차길 카페. [사진=석태문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필자도 이른 점심을 먹고 후딱 동네 한 바퀴를 돈 후 열린 카페를 자주  찾는다.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 ‘카페 스다’(연유와 얼음을 섞은 냉커피) 한 잔이면 식후의 노곤함도 이길 수 있다. 택시와 그랩택시가 많은 장소에는 길거리 카페가 아침부터 성황을 이룬다. 2개 도로가 교차하는 곳에 자리잡은 카페는 길거리 공간이 넓은 만큼 자리도 많고 찾는 사람들로 붐빈다.

최근에는 에어컨을 가동하는 닫힌 카페가 생겨나고 있다. 닫힌 카페는 고급카페란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러다 보니 소득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닫힌 카페를 찾는다. 베트남에 닫힌 카페의 새바람이 부는 것이다.   

최근 베트남 부유층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닫힌카페. [사진=석태문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베트남 음식을 먹은 지, 두 달 반이 지났다. 몸무게가 5kg나 줄었다. 아는 사람들이 보면 ‘어디 아픈’게 아니냐고 걱정할지 모르겠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닌 것 같다. 더위와 더불어 쌀국수 중심의 식단이 원인일 것이다. 담백한 쌀국수, 일품 중심의 식사에 부식은 생채소, 고기를 조금 썰어 넣은 식재료가 전부이다. 식사를 마쳐도 배  부른 느낌이 없다. 배고프지 않다는 느낌 뿐. 베트남 음식이 자연스레 이상적인 다이어트 환경을 만들어 준 것이다. 사람들은 다양한 쌀국수를 열린 식당이나 식당과 연결된 길거리에서 먹는다.

외식이 일상화된 베트남에선 세 끼를 다 바깥에서 해결하는 경우도 있다. 가게는 작아도 길거리는 넓다. 작은 테이블, 초등학생이 앉을만한 작은 의자만 내놓아도 길거리 식사가 가능하다. 차와 오토바이의 경적, 사람들이 뒤섞인 혼잡함에도 길거리에서 식사하는 사람은 게의치 않는다. 

호안끼엠 맥주골목.
호안끼엠 맥주골목. [사진=석태문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밤 즐기기에 한국사람 능가하는 나라가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베트남 사람들의 밤도 우리와 많이 닮아 있다. 그들에게 한낮은 폭염의 사막과 같을 터, 상대적으로 시원한 밤은 오아시스가 아니겠는가. 오아시스를 찾아 베트남 사람들은 밤거리로 나선다. 밤을 즐기는 사람들을 우린 ‘호모나이트쿠스’(밤족)라 한다. 베트남인들은 무시할 수 없는 밤족들이다. 이들에게 밤은 가까이 있는 장소이고, 만나서 즐길 수 있는 시간이다. 

하노이 호안끼엠 호수 주변 맥주골목의 밤은 유별났다. 청년들의 열정과 하드한 음악, 고성의 대화가 호안끼엠의 골목길을 불태웠다. 행인에 불과했던 우리도 틈새에 끼어들었다. 우리는 곧 맥주골목의 밤을 즐기는 유쾌한 동반자가 되었다. 베트남의 밤은 하노이뿐이 아니다.

다낭, 훼(Hue) 등 크고 작은 도시의 선술집, 라이브 음악을 연주하는 곳, 열린 호프집은 물론이고, 일반시민들이 사는 주택가에도 사람들은 모여 노래 부르고, 이야기하고, 술 마시며 밤의 열기를 씻어낸다. 

맥주가게(꼰시장).
맥주가게(꼰시장). [사진=석태문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베트남을 여행한 분들 중 우리의 반상회와 같은 장면을 목격한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지난  4월 첫 주에 필자는 아주 우연히 그런 행운(?)을 얻었다.

가게 안 중년의 남자는 선 채로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주민들은 가게 안과 길거리를 가득 채운 채 경청하고 있었다. 그 장면을 찍은 후 베트남 친구에게 물었더니, 한국의 반상회 같은 것이라 했다. 월 1회 반상회도 길거리에서 열리는 것이다. 회의를 하기 위해 별도의 시설도 필요없다.

[사진=석태문]
[사진=석태문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주민이 운영하는 가게에 모여 행정에서 전할 사항은 전하고, 주민 의견도 수렴한다. 이번 반상회는 4월에 시행된 전국 주민 총조사가 주요 전달내용이었다. 그리고 보니 내가 사는 아파트에도 거주자 조사를 하였다.

필자도 외국인 거주자로 베트남 통계에 잡힌 것이다. 특정한 사무실이 아니라, 주민의 생활 공간과 길거리에 임시 사무실을 만들고, 주민과 행정이 교류하고 있는 것이다. 

베트남의 가정집도 열려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문이 있어도 항상 열어놓고 사니, 바깥에서 집안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다.

우리도 옛날에는 그랬던 것 같다. 열린 문으로 그들이 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바깥에서 정면 우측으로 재물과 행운을 준다고 믿는 신주가 놓여져 있다. 거실 중간에 테이블과 의자를 갖춰놓거나, 소파를 들인 집도 있고, 맨바닥 그대로 비워둔 곳도 있다. 그곳에서 생활한다.

가정 집 신주.
가정 집 신주. [사진=석태문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식사를 하거나, 누워서 쉬거나, TV를 본다. 그곳은 아이들 공부방이 되기도 하고, 사람들이 찾아오면 차를 마시는 카페 역할도 톡톡히 한다. 굳이 닫지 않고 열어 둔 공간이기에 바깥에서 볼 수 있는 베트남의 가정집  풍경인 것이다. 

베트남의 길거리가 변하고 있다. 에어컨 설치가 많아지면서 열어 놓았던 가게와 가정이 닫히고 있다. 길거리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간다. 가게와 가정이 닫히면서 안과 바깥이 구별된다. 더 많은 에어컨이 설치되면 더 많은 가게와 가정이 문을 닫을 것이다. 

천둥번개를 동반한 스콜성 비가 내리자 전기가 두 번이나 단전되었다. 필자가 작업하는 데이터도 약 10분 가량이 날아갔다. 부족한 전기 송배전 인프라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TV에는 한국과 일본산 에어컨 제품 광고가 뜨겁다. 더 많은 에너지 소비를 권장하는 에어컨은 베트남의 여름을 시원하게 해주지만, 동시에 가게와 가정의 문을 더 빨리 닫히게 할 것이다.  

닫힌 공간은 사람들이 만나는 횟수를 줄일 것이고, 온라인과 사이버 등 간접만남으로 대체할 것이다. 베트남 사람들이 오랜 관습처럼 누려왔던 공유와 자유의 길거리 공간을 줄일 것이다. 열림에서 담힘으로의 공간 변화는 베트남 경제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는 징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이 혹여 사람들의 마음까지 닫게 하지는 않을까?

그들의 언어가 닫힌 목 안에서 나오는 소리인데다 사람 사는 공간마져 닫혀 버린다면, 그 답답함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이방인의 쓸데없는 걱정을 넘어, 길거리를 사랑하는 베트남인들의 열린 마음이 앞으로도 변치 않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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