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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해정의 명(命) 이야기③] 상대적 행복과 절대적 행복 (5)
[노해정의 명(命) 이야기③] 상대적 행복과 절대적 행복 (5)
  • 노해정 휴먼멘토링 대표
  • 승인 2019.05.30 15: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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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행복한가?
노해정 휴먼멘토링 대표
노해정 휴먼멘토링 대표

[뉴스퀘스트=노해정 휴먼멘토링 대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유한하다.

언젠가는 우리 삶의 마지막 날이 반드시 다가온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바이오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평균 수명을 엄청나게 늘려 놓게 될 것이며 이는 기존의 사피엔스가 종말을 맞이하고 새로운 사피엔스가 출현하는 사변적 변화라고 예견한 바 있다.

하지만 아무리 기술이 발전한다고 하여도 사실상 생명의 유한함을 무한정으로 연장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양자 역학에 따르면 우주는 유한한 프랭크 공간들의 연결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같은 유한한 공간의 상대적 결합으로 연속되어 이루어져 있는 것이 우주인 것이다.

상대적이라고 하는 것은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상호작용이 가능한 물리법칙이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물리법칙은 무한하지 않다.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다는 것도 상대적 작용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생명을 얻어서 탄생한 시점부터 이미 죽음이라고 하는 유한한 시점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는 존재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생명의 유한성을 알기에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생각을 미뤄놓거나 꺼리게 된다.

즉 심리적으로 인간은 죽음의 불안을 느끼는 존재이다.

기(忌)라는 단어에 ‘꺼리다’, ‘미워하다’는 뜻이 있는데, 예전에는 상(喪)이 나면 상갓집 문밖에 기중(忌中)이라고 써놓은 등불을 매달아 놓았다.

그만큼 죽음은 꺼리고 싶은 순간인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우리의 인생이 죽음을 향해서 달려가기 때문에 인간의 존재 방식을 ‘죽음에로 향하는 존재’라고 말한 바 있다.

필자가 느끼기에는 우리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사실은 우리가 철학 할 수 있는 근본적 바탕이 되는 요소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죽음 뒤에 우리는 어떤 물질도 소유할 수 없다. 죽음이라는 생명의 유한성이 주는 불안감은 소유하고 싶어 하는 우리의 욕망이 얼마나 덧없는 것임을 알게 해준다.

이로 인해서 우리는 사유할 수 있게 되며 또 결단을 내릴 수 있게 된다. 이 같은 신비한 능력은 어느 누구나 공통적으로 가지고 태어난다.

불가(佛家)에서는 모든 중생이 부처의 자성(自性)을 가지고 있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깨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인가?

우리는 여전히 많은 것을 소유하고 싶어 하고, 또 죽음을 연기하거나 망각하면서 유한한 세상의 굴레 속에서 투쟁하듯이 살아가고 있다.

운전을 하다가 얄밉게 끼어드는 차를 보게 되면 나도 모르게 욕을 하게 되고, 남들보다 더 빨리 가기 위해서 신호가 떨어지기 전에 엑셀레터를 밟게 된다.

지혜를 쌓기 위해서 공부하기보다는 다른 아이들보다 더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 공부한다. 친구가 구입한 주택 가격이 올랐다면 축하해 주어야 할 일인데도 괜히 질투가 나고 화가 난다. 생(生)과 사(死) 사이에 존재하는 우리의 삶은 이처럼 애락(哀樂)으로 표현되는 슬픔과 즐거움이 상대적으로 공존하는 세계이다.

이 속에서의 행복은 유한하고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다산(茶山) 정약용은 행복(幸福)을 ‘열복(熱福)’과 ‘청복(淸福)’의 두 가지로 설명한다. 요약하자면 ‘열복(熱福)’은 공부를 잘해서 관직에 나아가 세상을 다스리는 권력을 행사하거나 돈을 많이 벌어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복록을 뜻한다.

이에 비해 ‘청복(淸福)’은 아침이슬이 영롱하게 맺힌 꽃잎을 보면서 세상을 즐겁게 소요(逍遙)하는 마음의 행복이다.

다산(茶山)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이 두 가지 가운데서 택하는 것은 다만 그 성품에 따른다. 하지만 하늘이 몹시 아껴 잘 주려 들지 않는 것은 바로 청복(淸福)이다. 그래서 열복(熱福)을 얻은 사람은 아주 많지만 청복(淸福)을 얻은 자는 몇 되지 않는다.”

1993년에 입적하신 퇴옹 성철(退翁性徹) 스님은 해인사 총림의 방장에 취임한 날인 1967년 12월 초부터 약 100일간에 걸쳐서 설법을 진행하신 바 있다. 이때 설법하신 스님의 중도사상(中道思想)은 매우 유명하다.

성철스님께서는 ‘백일법문’에서 ‘행복’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동서고금을 통해 철학자나 과학자나 종교가나 어느 누구랄 것도 없이 분명히 ‘살아가는 목표가 무엇인가? 라고 물으면 ‘행복에 있다’고 말합니다.

행복에는 일시적 행복과 영원한 행복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모든 것이 다 상대 유한으로 되어 있어서 모순과 모순이 대립하는 투쟁의 세계라 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상대적이고 유한한 세상을 생멸문(生滅門)이라고 한다. 연꽃이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것처럼 생멸(生滅)이라고 하는 생사고락의 고통은 우리를 번뇌 속에서 헤매게 하는 것이지만 우리를 깨어나게 하는 터전이기도 하다.

이에 비해 절대 무한의 세계를 진여문(眞如門)이라고 한다. 성철 스님은 종교의 근본 목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파하셨다.

“종교의 목표라고 한다면 상대 유한의 세계에서 절대 무한의 세계로 들어가 영원한 행복을 얻는 것입니다. 상대 유한의 세계는 살고 죽는 생멸(生滅)의 세계이고 절대 무한의 세계는 해탈(解脫)의 세계이니,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으로 건너가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것이 종교의 근본 목표입니다.” <중략>
“불교는 상대 유한을 벗어난 절대 무한의 세계를 자기의 마음속에서 찾는 과정입니다. 오직 자력으로 마음을 밝히려는 데 그 뜻이 있어요. 즉 자기에게 절대 무한의 세계가 갖춰져 있으므로 ‘내 마음이 곧 부처’라는 것을 믿는 것이 근본 조건입니다.”

어떤 종교이건 간에 신앙은 행복을 위해 존재한다. 가톨릭과 개신교에서는 행복은 하나님의 택함과 하나님의 나라에서 존재한다. 이를 믿을 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성이 신의 뜻과 동기화된다. 가톨릭과 개신교는 절대적이고 무한한 세계는 하나님의 나라에 있고, 불교에서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이 차이일 뿐이다.

숨 가쁘게 살아가고 있는 당신! 과연 행복한가?

삶의 목표를 이뤘던 당신! 과연 행복한가?

사랑을 얻었던 당신! 과연 행복한가?

우리는 왜 목표를 이루고도 성취를 해놓고도 힘들어하고 괴로워하고 있는 것일까?

느긋하게 살아가고 있는 당신! 과연 불행한가?

삶의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좌절하는 당신! 과연 불행한가?

사랑을 잃고 슬픔에 빠졌던 당신! 과연 불행한가?

우리는 왜 목표를 이루지 못한 채 힘들게 살아가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현실 상황 자체를 바꿀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한 존재이다. 예를 들면 영화 어벤져스에 나오는 것처럼 자유자재로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

과거로 되돌아가서 사건 자체를 바꾸고 싶어 하는 욕망은 모든 인간의 공통적인 욕구이기도 하다.

유리하게 상황을 돌리고 싶어 하는 생멸적인 욕구는 생명을 가진 인간에게는 본능에 가까운 것이다. 따라서 가질 수 없는 것을 욕망함으로써 유한한 욕구를 채우려는 상상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라캉은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바 있다.

인간은 시간까지도 바꾸고 싶은 욕망을 욕망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일어난 사건을 바꿀 초능력은 없지만, 마음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욕망을 가지기도 하지만 욕망을 버릴 수도 있는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마음을 바꿀 수 있는 시작은 일어난 사건 그 자체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비롯된다. 동양의 사상가인 장자(莊子)는 “비롯된 사실에 순응하여 때에 따른다면 고통과 즐거움이 끼어들 수 없다. (安時而處順 哀樂不能入也)”는 말을 남겼다.

우리는 종종 일어난 사실과 자신의 실책에 대해서 심한 후회와 자책감에 빠지곤 한다. 심지어 원하던 목표를 이루어 놓고도 더 최선의 목표가 아니었다는 비교 논리에 의해서 결코 최선이 존재할 수 없게 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이 모든 사태는 비롯된 사실에 순응하지 못한 결과로 발생하게 된다. 절대적 행복의 경지는 결코, 멀리 있지 않다. 마음으로 현 사태를 받아들인다면 애락이 끼어 들 틈이 없는 행복이 즉시 시작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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