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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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이규창 경제에디터] 프롤레타리아 독재(Dictatorship of the proletariat)라는 용어는 사실 프롤레타리아 민주제 정도로 번역돼야 한다. 특히 오랜 군사독재 시절을 겪은 우리나라에서는 소수에 의한 억압적 권력을 뜻하는 독재라는 표현이 해당 용어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다. 

마르크스에 의해 사용된 프롤레타리아 민주제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에 과도기적 사회를 뜻한다. 무산계급인 프롤레타리아가 유산계급의 정치 체제를 전복한 후 이른바 중앙집권적 노동자 국가를 건설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제는 공산주의로의 이행이 아닌 일당독재에서 일인독재에 이어 권력이 세습되는 봉건적인 독재로 나타나는 경우를 보게 된다.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했으나 소련에서의 일국사회주의론을 거치면서 프롤레타리아 민주제는 말 그대로 독재의 길을 걷게 된다. 

수세기를 관통한, 아니 아직도 관통하고 있는 정치사상과 체제를 단 몇 줄로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북한을 완벽한 협의체 사회라거나 서구 열강의 위협에서 체제 수호를 위한 세습이 정당하다는 주장도 있으니 말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명제는 세습이다. 경제 관점에서 경영권 세습은 정치권력의 세습만큼 많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3세, 4세 경영으로 이어지며 100년을 바라보는 기업이 그렇다. 

사실 경영 2세는 창업주와 호흡을 같이 한 경우가 많다. 아버지와 함께 현장에서 먼짓밥, 기름밥을 함께 먹어가며 기업을 키웠다. 창업주의 경영철학이 그대로 2세에게도 투영된다. 무한 팽창할 것 같았던 산업화 흐름을 탄 덕도 있지만 창업주와 2세는 어쨌든 기업을 성장시켰다는 자부심도 공유한다.  

하지만, 3세부터는 달라진다. 이미 부가 축적된 상황에서 별 어려움 없이 자랐다. 어렸을 때부터 경영수업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창업주나 2세가 살아온 환경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     

3세는 성장 배경뿐만 아니고 선대와 전혀 다른 경영 환경도 극복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변화는 과학계에서 시작해 다양한 분야에서 회자되는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라는 표현조차 부족하게 느껴질 정도다. 기존 굴뚝산업으로는 성장은 커녕 버틸 수조차 없다. 

고생담을 내세워 임직원을 대하고 경영하는 선친 세대와 달리 최신식 교육과 새로운 사고로 무장한 3세가 이러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일부 대기업의 3세가 임직원은 물론 시장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한다. 

문제는 이러한 3세, 4세가 극히 드물다는 데 있다. 산업화 기간이 짧은 우리나라에서는 3세 경영 사례의 모수가 아직 많지 않고 경영능력을 평가하기에 이른 감이 있지만 기대보다는 우려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사회적 지탄을 받은 '일탈 전과'가 있으면 기업 안팎에서는 불안한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다. 북미에서는 3세 이후 자녀에게 기업을 물려주는 사례가 많지 않다. 유럽의 경우 '가문'이 기업을 세습하는 사례가 있으나 세대가 이어지면서 점차 전문 경영인을 임명하는 기업이 많아지는 추세다. 소유와 경영이 엄격히 분리된 풍토가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경영권 승계가 이뤄진다고 해도 이사회와 감사의 견제가 우리나라의 그것과 다르게 매우 독립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오너가는 거의 '황제'에 가깝다. 이사회는 거수기 역할만 할 뿐이다. 봉건적 독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영권 세습은 단순한 부의 세습이 아니다. 기업, 특히 대기업에는 수천, 수만 명의 직원이 종사하고 있다. 직원의 부양가족까지 포함하면 기업은 '내꺼'가 아니다. 수많은 주주들도 권리가 있다.

이런 점에서 최근 시끄러운 한진그룹을 보는 시각은 기대보다는 우려가 많다.

2대 회장인 조양호 회장이 갑작스럽게 별세하고 아들 조원태 회장이 한진그룹을 물려받았다. '물컵 갑질' 조현민 전무가 경영에 복귀했고 '땅콩 회항' 조현아 전 부사장도 곧 경영 전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조원태 회장이 대한항공과 그룹을 총괄하고 조현아 전 부사장이 호텔사업을 담당하며, 조현민 전무가 진에어를 맡는 이른바 '분할 경영' 시나리오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역시 '갑질' 논란을 일으킨 바 있는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한진가(家) 삼남매가 세습 경영의 폐해를 극명하게 보여줄지 의외로 잘 이끌어갈지는 알 수 없다.

후자일 경우 우리나라 경제에서 한진그룹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다행이라고 하겠으나, 전자가 된다면 국내 기업의 세습에 의한 봉건적 경영 행태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세습이 영원할 수 없고 그것은 경제 정의에도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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