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의 신랑신부와 혼주(전통).
베트남 전통 결혼식의 신랑, 신부와 혼주.

[뉴스퀘스트=석태문(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청춘 남녀 사랑의 결실인 결혼은 인생 최고의 이벤트, 최대의 사건이다.

격식을 중시한 동양 사회는 관혼상례(冠婚喪禮)의 으뜸을 혼례라 했다. 결혼은 두 집안이 만나고, 이질적 문화의 교류라 생각했다. 중국과 국경을 접한 우리나라와 베트남은 유교를 공통분모로 한다.

두 나라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비슷한 문화적 공감대가 있다. 결혼 문화는 어떤 유사성과 차이점이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와 베트남의 결혼 문화는 주나라의 육례(六禮)와 송나라 주자가례(朱子家禮)의 영향이 크다.

혼례의 마지막 절차는 신부가 신랑 집으로 가는 친영(親迎)이다. 그러나 우리 역사에서 조선 초까지는 신랑이 신부 집에 장가 들었다. 장가 제도는 굳건한 관습이었다.

결혼식의 신랑신부와 혼주(현대).
베트남에서 치러진 현대식 결혼의 신랑, 신부와 혼주.

한국의 혼례, 장가에서 시집으로

성리학은 조선의 건국이념이다. 적장자 상속이 기본인 종법제도(宗法制度)를 사회질서로 추구했다. 지배층 입장에서 볼 때 장가 제도는 조선의 건국이념에 배치되는 혼례였다. 자녀에게 재산을 똑같이 나눠주는 균분상속은 조선의 경제 질서를 망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세종 임금은 1430년 12월, 김종서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시집가는 제도를 만들 수 있소.” 김종서는 “왕실에서 선례를 보이면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라 답했다. 시집간 전례가 없었던 것이다. 임금이 왕실에서 먼저 선례를 남기면 사대부는 물론, 민간에서도 따라 할 것이라고 답한 것이다.

세종은 이복동생 숙신옹주를 시집보냈다. 숙신옹주는 우리 역사에 이름이 알려진 최초의 시집간 여성이 되었다. 하지만 시집제도가 법제화되려면 85년을 더 기다려야했다.

중종(1515년)은 “혼인은 만사의 시작인데, 남자가 여자의 집으로 장가 들러 가는 것은 천도(天道)가 역행하는 것이니 어찌 옳겠는가? 친영(親迎)의 습속으로 행하기를 전교(傳敎)하였다.” 임금이 명령을 내려 시집제도가 법제화되었다.

한국에서 시집가는 문화는 여성에게 큰 부담을 강요했다. 시집 문화가 여성의 삶을 바꾸기도 했다.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이 짊어진 결혼 문화는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 율곡의 어머니였던 사임당, 허균의 누나였던 난설헌은 고향이 강릉으로 같았다. 쟁쟁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부터 타고난 천재성으로 주목받았다.

결혼 이후 두 사람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사임당은 결혼 후 친정에 머물렀다. 자녀도 거기서 키웠다.

친정어머니와 남편, 시모로부터 사랑도 듬뿍 받았다. 난설헌은 안동김씨 문중으로 시집갔다. 남편과 시집 식구로부터 모진 미움을 받았다. 두 자녀도 잃었다. 친정이 옥사(獄事)를 겪는 불행이 겹치며 27세에 요절하였다.

두 여성은 왜 이런 차이를 경험했을까? 사임당은 1504년생이고, 난설헌은 59년이 늦은 1563년생이다. 중종의 시집가는 문화가 법제화된 것은 1515년이었다.

사임당은 신제도 도입 초기에 느슨한 시집살이를 경험했다. 난설헌은 제도 정착 이후, 혹독한 시집살이를 겪었다. 난설헌이 59년 일찍 태어났더라면, 혹은 두 사람의 생년이 바뀌었다면, 우리는 두 사람 삶의 달라진 궤적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형화면까지 띄운 결혼식 장면.
대형화면까지 띄운 베트남 결혼식 장면.

베트남의 시집가는 혼례 문화

베트남은 2천년 넘게 이어져온 시집가는 혼례 문화가 있다. 유구한 역사만큼 쌓여진 풍습도 많다. 베트남 여성은 21세, 23세, 26세, 28세에 결혼하지 못한다는 풍습이 있다. 우리가 아홉수라고 29세에 결혼을 꺼리는 풍습과 같다.

음력 7월은 불행의 달이라고 믿는다. 1년 중 가장 음기(陰氣)가 센 달이다. 결혼을 꺼리는 정도가 아니다. 아예 결혼을 하지 않는다. 7월은 귀신 활동이 왕성하여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고 믿었다. 그래서 크고 작은 집안일도 하지 않는다. 매월 보름(음력 15일)과 초하루(음력 1일)는 음기가 센 날이다. 이 날은 음식도 채식을 하고, 가정과 상가에서는 제사까지 지낸다. 모두 귀신의 발호를 막기 위한 노력인 것이다.

결혼은 날씨가 좀 시원해지는 9월부터 3월까지가 성수기이다. 많은 혼례 절차들이 현대적으로 변하고 있다. 그러나 상견례, 약혼식, 결혼식의 세 절차는 베트남 혼례에서 반드시 치르는 필수 예법이다.

약혼식의 예물을 든 신랑친구들.
약혼식 예물을 든 신랑친구들.

상견례와 약혼식은 신부 집에서 한다. 결혼식은 신부와 신랑 집에서 각각 한번씩, 두 번 한다. 약혼식과 결혼식의 간격이 한 달이 되기도, 6개월이 될 수도 있다. 신랑․신부 집이 먼 경우에는 약혼식과 결혼식을 같은 날 할 수도 있다. 경제력과 두 집의 거리에 따라 예식을 올리는 방식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두 집안이 혼인을 합의되면 신부 측은 신랑 측에 예물의 품목과 수량을 제시한다. 여기에 현금인 지참금(lan nhai: 신랑 측이 신부 측에 주는 돈이다)이 포함된다. 좀 많다 싶으면 신랑 측에서 깎아 달라고 요구한다.

신부 측도 전례에 비추어 적당한 선에서 타협한다.

혼례의 첫 단계인 상견례는 우리와 거의 같다. 신랑․신부가 양가 부모와 만나는 날이다. 다만 우리와 달리, 베트남의 상견례는 신부 집에서 한다. 몇 가지 먹을거리는 신부 집에서 준비한다.

약혼식은 혼인을 약속하는 절차이다. 우리는 생략을 많이 하는 추세이지만 베트남에서 약혼식은 결혼식 못잖은 중요 혼례이다.

약혼식에는 베트남 전통혼례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신랑․신부는 붉은 색(혹은 핑크 색) 전통의상(아오자이)을 입는다. 신부만 아오자이를 입고, 신랑은 양복을 입기도 한다. 혼례에서 붉은 색은 부와 번영을 상징한다.

약혼식의 백미는 신랑 측에서 신부 측에 주는 선물이다. 약혼 선물은 각종 음식과 지참금이다. 음식에는 빈랑나무 열매(까우; Cau), 구장나무 잎(쩌우; trau), 그리고 차, 찹쌀떡, 케이크, 구운 돼지고기 등이 있다. 구장나무는 빈랑나무에 붙어 사는 덩굴식물이다. 신랑․신부의 백년해로를 상징한다.

약혼식의 예물.
베트남의 약혼식 예물.

신랑과 신부는 반지를 서로 교환한다. 신랑은 신부에서 금귀걸이, 금목걸이, 금팔찌 등 각종 귀금속을 선물로 준다. 신부 가족과 친지에게도 선물을 준다. 신랑 측은 현금으로 준비한 지참금도 신부 측에 준다.

준비한 선물은 5개, 7개, 9개 등 홀수로 마련한 쟁반에 담는다. 붉은 보자기로 선물을 덮은 쟁반을 신랑 친구들이 들고 간다. 선물은 같은 수의 들러리인 신부 친구들이 받는다. 선물은 신부 가족에게 전달한다.

선물을 주고받는 신랑․신부 친구는 미혼이어야 한다. 친구들을 모두 시집․장가보내고 가장 늦게 결혼하는 친구는 들러리 친구들을 어떻게 장만(?)할까.

약혼식에서 신랑 측이 신부 측에 주는 지참금 문화는 오래된 풍습이다. 지참금 협의가 원만하지 않아 혼인이 무산되기도 한다.

무리한 요구에 신랑 측이 할 수 없이 응했다면, 신부는 독한 시집살이를 겪을지도 모른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합의하는 지참금이 우리 돈으로 5백 7십만 원(5천 달러) 정도라고 한다. 베트남 물가로는 적지 않은 금액이다.

지참금 문화는 고대사회 노동력 매매가 기원이다. 고대로 갈수록 노동력 매매와 결혼을 통한 노동력 교환은 가까워진다. 장가를 가든, 시집을 가든 결혼은 한 집의 노동력이 다른 집으로 이전되는 과정이라고 본 것이다. 지참금 문화는 과거보다 강도는 많이 약해졌으나 요즘도 성행하고 있다. 가족과 젊은이들의 부담이 큰 부분이다.

혼례의 마지막 절차는 결혼식이다. 까우․쩌우와 각종 음식물 차림은 약혼식과 같다. 혼례는 전통식으로 하거나, 서양식으로도 한다. 전통과 현대의 두 예식을 같이 하기도 한다. 다들 집안 사정에 맞추어 예식의 범위를 정한다.

집에서 결혼식을 할 때는 전통의상을 입지만 요즘은 웨딩드레스를 입는 모습도 자주 보인다. 신부 집과 신랑 집에서 각각 식을 올린 후 신랑 집에서 피로연을 개최한다.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치를 때는 거의 웨딩드레스를 입지만 우리와 같은 폐백의식을 치를 때는 전통의상으로 갈아입는다. 신랑․신부의 집이 먼 거리일 때는 약혼식과 결혼식을 같은 날 치르기도 한다.

신부․신랑 집에서 각 1회, 예식장 1회를 포함, 모두 세 차례 예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집에서는 가족․친지만 모시고, 예식장에서 친지, 친구들을 모두 초대하여 식을 올리고 피로연을 연다.

결혼식장에는 초대장을 받은 하객만 참석한다. 초청받은 하객은 최소 1인당 20만동(1만원) 정도의 부조금을 낸다. 재미있는 것은 부조금 받는 통이 하나 밖에 없다. 신랑, 신부 측이 따로 부조금을 받는 우리와 다르다.

두 집은 부조금으로 모든 예식 경비를 지불하고 남은 돈은 신랑․신부에게 준다. 일종의 지참금 형식으로 신부에게 준다. 이 금액이 적게는 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에 이른다. 신랑․신부가 새 출발하는데 유익한 마중물 돈인 것이다.

농촌의 결혼식은 시간이 더 걸린다. 전통의상을 예복으로 입지만, 서양식 의상도 입는다. 요즘은 많이 간소해져서 보통 하루 만에 예식이 다 끝난다. 그러나 두 집이 멀리 떨어져 있거나, 예식을 좀 여유 있게 할 때는 신부․신랑 집에서 각각 하루씩 걸리기도 한다. 공동체 사회인 농촌은 결혼식이 곧 마을 잔치가 되기 때문이다.

조심해야 할 일도 있다. 신랑 집에서 예식을 할 때는 신부 측 사람 중 이혼한 사람은 참석하면 안 된다. 백년해로를 망친 사람이 예식에 참석하면 부정 탄다고 여긴 것이다. 두 집 모두 예식을 올리기 전에 조상의 제단에 인사를 드린다.

결혼식 선물은 신부 측 친지와 친구들이 신부에게 준다. 반지, 목걸이, 귀걸이 등 금붙이들이다. 선물을 많이 받은 신부는 열손가락과 팔, 목에 금붙이를 주렁주렁 달기도 한다. 금붙이 선물은 값이 비싸 2~3백만 동(10~15만원)에 이른다. 부조금이 큰 만큼, 나중에 다 갚아야 한다.

하객이 돌아갈 때 농촌에서는 담배를 선물로 준다. 결혼식 날의 기쁨이 담배 연기처럼 넓게 멀리 퍼지라는 의미이다. 도시에서는 건강을 염려하여 담배를 선물로 주는 풍습이 사라졌다고 한다.

결혼 예식을 다 마치고 3일이 지나면 신부는 더 이상 친정에 가지 않는다. 우리가 많이 들었던 출가외인(出嫁外人) 문화이다. 지금은 관습 정도로만 남아있다.

혼례에서 비즈니스로, 문제 있다

전통의상을 입고 웨딩사진 촬영을 하는 베트남의 예비 신랑 신부.
전통의상을 입고 웨딩사진 촬영을 하는 베트남의 예비 신랑 신부.

베트남에서 법적 혼인 시기는 남자 20세, 여자 18세이다. 2015년도 다낭시의 결혼 연령은 남자 28.2세, 여자 24.2세로 남자가 네 살 높다. 갈수록 결혼 연령이 높아지고 있다. 대학졸업자 증가로 청년들의 교육기간도 늘어났다. 당사자들이 부담하는 혼수 비용의 몫이 커진 영향도 있다.

신랑․신부가 부담하는 결혼비용은 평균 4백6십만 원이다. 대학 초임이 월 30만원 수준이니, 두 사람이 나누어도 7개월 반의 급여를 쓰지 않고 모아야 한다. 물론 살림집 마련 비용은 별도이다.

딘(Dinh)은 다낭에서 대학 졸업 5년차 샐러리맨이다. 월수 75만원으로 동기들보다 많은 편이다. 결혼을 위해 40㎡(12평) 규모 2층 집을 마련하고 싶어 한다. 다낭에서 그 정도 집을 마련하려면 보통 1억2천만 원이 든다.

받은 월급을 다 모아도 집 장만은 요원하다. 결혼한 딘의 형이 한국에서 근로자로 일하는 것도 집 장만을 위해서라고 한다. 사실 베트남에서는 식품류의 가격이나 물가나 저렴해서 집만 장만하면 생활에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베트남은 청년의 나라이다. 30세 이하 인구가 전체의 60%에 육박한다. 결혼 적령기 인구도 100만 명이 넘는다. 매년 50만 건의 결혼식이 치러진다. 베트남의 웨딩산업 규모는 어림잡아도 연 2조 4천억 원(20억 달러)의 거대시장이다.

전문 웨딩컨벤션센터는 증가일로에 있다. 관련된 신종 직업도 출현 중이다. 웨딩 컨설턴트, 웨딩 플래너, 드레스업체, 뷰티 컨설턴트, 웨딩 사진사, 웨딩 음식조달업체, 신혼여행사 등은 결혼시장에 등장한 새로운 직업들이다.

웨딩 비즈니스는 점점 더 전문화되고 있다. 더 나은 결혼 서비스가 경쟁적으로 만들어진다. 베트남에서 신사업을 검토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분야가 좋을까.

“만약 특별한 기술이 없다면 결혼 산업에 뛰어들라.”

농담이지만 뼈가 있는 말이다. 베트남의 인구 구조로 볼 때 당분간 결혼 산업은 호황을 누릴 것이다. 결혼 산업이 호황을 누릴수록 청년들이 지출해야 할 비용도 커진다.

과도한 지참금도 바뀌어야 할 혼례 문화이다. 집 장만의 어려움은 베트남 사회가 새 출발하는 청년과 가족에게 주는 사회적 부담이다. 한국의 청년들도 ‘작은 결혼’이라는 자기들의 결혼 문화를 만들고 있다. 청년들이 당면한 결혼 문화를 되돌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2천년 역사의 혼례 문화가 탄생시킨 아름다운 풍속이 베트남에서 지속되길 바란다. 그러자면 전통과 현대가 섞이고, 청년의 부담은 줄어드는 효율적인 혼례 문화가 필요하다. 청춘 남녀의 사랑이 베트남에서 지속적으로 밝은 미래를 꽃피울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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