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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주의 한복이 있는 옛 그림 이야기 ⑱] 단오풍정(端午風情)
[백남주의 한복이 있는 옛 그림 이야기 ⑱] 단오풍정(端午風情)
  • 백남주 큐레이터
  • 승인 2019.09.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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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의 '단오풍정', 19세기 초반, 종이에 먹과 채색, 28.2cm×35.6cm, 국보 135호, 《혜원전신첩》, 간송미술관 소장.
신윤복의 '단오풍정', 19세기 초반, 종이에 먹과 채색, 28.2cm×35.6cm, 국보 135호, 《혜원전신첩》, 간송미술관 소장.

【뉴스퀘스트=백남주 큐레이터】 단오를 즐기는 여인들을 주제로 그린 <단오풍정>은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 ?~1813 이후)의 대표적인 풍속화로, 간송미술관에서 소장 중인《혜원전신첩》에 들어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계곡에서 목욕도 하고, 머리도 다듬고, 그네도 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작품은 조선시대의 그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여인들의 나신을 그렸다는 점에서 신윤복의 대담성과 에로틱한 정서가 강조되었다.

단오는 음력 5월 5일로 모내기를 마친 사람들이 잠깐이나마 여흥을 즐기며 다가오는 여름을 맞이하기 위해 잠시 숨고르기를 하는 절기이다.

남자들은 주로 씨름을 즐겼고 여자들은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그네타기를 하였다.

신윤복은 그림의 왼쪽 아래 물가에서 저고리를 벗고 치마를 걷어 올린 채 몸을 씻고 있는 네 명의 여인과 오른쪽 언덕위에 앉아서 머리를 다듬고 있거나, 그네를 타고 있는 여인 세 명을 대각선으로 배치하였다.

또한 오른쪽 아래에서 보자기로 싼 무엇인가를 머리에 이고 걸어오는 여인과 왼쪽 위 바위 뒤에 숨어서 목욕하는 여인들을 보고 있는 까까머리 동자승 두 명을 마주보게 배치하였다.

대각선 구도를 사용하여 공간을 나누고, 등장인물을 대칭으로 배치하였는데, 화면 가운데 배치한 그네를 타는 여인의 복식을 노란 저고리와 붉은색 치마로 채색하여, 색상을 강렬하게 대비시킴으로서 보는 이들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대부분의 젊은 모습이다. 왼쪽 아래 물가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 여인들은 모두 상반신을 드러내고 있는데, 특히 맨 왼쪽에 서 있는 여인은 치마로 배와 엉덩이만 살짝 가린 반라의 모습이다.

또한 상체를 노출한 채 앉아 얼굴을 씻거나 팔뚝을 씻고 있는 여인들의 모습과 표정을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그로 인해 그림을 보는 사람도 마치 숨어서 여인들을 훔쳐보고 있는 동자승처럼 여인들을 몰래 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

오른쪽 맨 위에 있는 여인은 머리를 다듬고 있는데, 얼마나 큰 머리를 만들려고 하는지 가체를 넣어 땋은 머리가 무척이나 두툼하고 길다.

풍성한 다리(월자)를 다듬고 있는 여인 옆에는 단장을 다하고 완성된 머리를 만지면서 위를 보고 있는 여인이 앉아있다.

그 두 명의 여인 앞쪽에는 노란 저고리에 붉은 치마를 곱게 입은 여인이 나무에 맨 그네를 타려고 왼쪽 발을 그네의 발판에 올려놓고 있다.

화면 오른쪽 하단에는 보퉁이를 이고 오는 여인이 등장하는데, 민저고리를 입고 짙은 청색 치마 위에 앞치마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서민층 여인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여인도 당시 유행하던 가슴이 다 드러날 정도로 짧은 저고리를 입고, 크고 풍성한 얹은머리를 하고 있다. 아마도 놀러 나온 여인들의 심부름을 하는 종으로 보이는데, 이고 있는 보퉁이에는 목욕하는 여인들이 갈아입을 새 옷이 들어 있을 수도 있고, 보자기 사이로 병 주둥이가 삐죽 나와 있는 것을 보면, 먹을거리나 술을 가져오는 것으로도 보인다.

이 그림에는 여인들 외에 이들을 훔쳐보는 사람들이 등장 한다는 점에서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신윤복은 성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한 어린 남성인 동자승을 등장시켜 여인의 몸을 훔쳐보려 하는 관음증적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

또 이 동자승들이 숨어 있는 곳은 녹음이 무성해서 그늘진 음지이고, 여인들이 목욕하고 그네를 뛰는 곳은 햇살이 밝은 양지인데, 공간의 배치를 통해 음양의 조화를 절묘하게 맞추고 있다.

신윤복은 인물 외에 풍경도 잘 그렸는데 <단오풍정>의 배경으로 그린 나무와 바위 그리고 물가의 풀들의 섬세한 세부 묘사가 뛰어나다.

신윤복의 풍속화에는 당시 유행했던 여인들의 짧은 저고리와 가체 머리의 풍습이 잘 드러나 있다.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반에 그려진 윤두서나 조영석의 풍속화에서 허리춤까지 내려왔던 저고리의 길이는 18세기 후반에 그려진 김홍도의 풍속화에서 그 길이가 짧아졌다.

영조 때 성호 이익(星湖 李瀷, 1681~1763)이 쓴 『성호사설』에도 이러한 저고리의 유행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지금 부녀자의 의복은 짧은 적삼에 소매가 좁은데 어느 때부터 생긴 지는 알지 못하며 귀천이 통용하니 해괴한 일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습속에 젖어 예사로 알고 있다.

또 여름에 입는 홑적삼은 아래를 줄이고 위로 걷어 올려 치마 말기를 가리지 못하니 더욱 해괴한 일이다. 이는 의복의 요물이니, 마땅히 금지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조선 후기에 짧은 저고리는 더욱더 유행하였다.

19세기 초반에 그려진 신윤복의 풍속화를 보면, 저고리의 소매통은 더욱 좁아지고, 길이는 젖가슴 부위까지 짧아졌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가체의 유행과 이로 인한 사치는 조선 후기 들어 사회 문제로 대두될 정도였다. 기녀뿐만 아니라 양반집 부녀자들에게도 가체는 널리 퍼졌고, 그 사치의 정도가 날로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이덕무(1741~1793)는 『청장관전서』에서 여인들의 가체 사치풍습을 비판하면서, 가체 때문에 목이 부러져 죽은 여인의 사건을 언급하고 있다.

지금 부인들은 비록 마지못해 시속을 따른다 하더라도 사치를 숭상해서는 안 된다. 부귀한 집에서는 머리치장에 드는 돈이 무려 7~8만에 이른다.

다리를 널찍하게 서리고 비스듬히 빙빙 돌려서 마치 말이 떨어지는 형상을 만들고 거기다가 웅황판(雄黃版)·법랑잠(法琅簪)·진주수(眞珠繻)로 꾸며서 그 무게를 거의 지탱할 수 없게 한다.

그런데도 그 가장은 그것을 금하지 않으므로 부녀들은 더욱 사치스럽게 하여 행여 더 크게 하지 못할까 염려한다.

요즘 어느 한 부자집 며느리가 나이 13세에 다리를 얼마나 높고 무겁게 하였던지, 시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자 갑자기 일어서다가 다리에 눌려서 목뼈가 부러졌다. 사치가 능히 사람을 죽였으니, 아, 슬프도다!

가체가 사회문제가 되자 영조는 ‘부녀발제개혁’을 내려 가체를 금하고 족두리로 이를 대신하게 하였는데, 점차 족두리에 하는 장식이 과해지고 비용이 많이 듦에 따라, 이 역시 또 다른 사회문제가 되었다. 이에 나라에서는 정조 12년(1788)에 다시 가체 금지령을 내리고 『가체신금사목』을 한문과 한글로 제작하여 전국 관아에 배포했다.

그 내용을 보면, 혼인 시에 어여머리나 큰머리를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일체의 얹은머리를 금지하고, 진주당기나 금옥주패 등 수식에 사용하는 각종 장식도 금지하였으며, 족두리의 장식물도 일체 금했던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금지 정책으로도 이미 널리 퍼진 가체의 유행을 막지 못했는지 19세기 초 신윤복의 풍속화에 그려진 여인들은 이전 시기보다 훨씬 커지고, 풍성하게 치장한 머리를 하고 있다.

신윤복은 고령 신씨로 호는 혜원이다. 아버지 신한평(申漢枰, 1726~?)은 도화서 화원으로, 특히 초상화와 속화에 빼어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윤복 또한 화원이 된 것으로 보이나, 그의 생애나 행적을 당시의 문헌 기록에서 찾기는 어렵다. 또한 제작 연대가 밝혀진 작품이 드물어 그의 정확한 활동 시기를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주로 19세기 초에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간송미술관 소장 <蕙園風俗畵帖>을 통해 본 19세기(순종~고종년간) 민간의 복식과 생활상

(이태호·양숙향, 강좌미술사 15권, 한국미술사연구소, 2000)

성호사설(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db.itkc.or.kr)

청장관전서(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db.itkc.or.kr)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http://encykorea.aks.ac.kr/)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강명관, 푸른역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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