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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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이규창 경제에디터] SK그룹이 부사장, 전무, 상무 등 임원 직급을 본부장, 그룹장 등 직책 중심으로 바꾸고 임원 내 승진 인사를 폐지하는 ‘임원제도 혁신안’을 이달부터 시행했다.

SK그룹은 지난해부터 사무실의 칸막이를 없애고 공유오피스를 도입하는 등 수평적 조직문화 정착시키기 위한 일련의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사실 이러한 시도는 국내 주요 그룹에서는 신선할지 몰라도 이미 꽤 많은 기업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변화에 가장 보수적인 언론계에서도 국장, 부장, 차장 등의 직급을 본부장, 팀장으로 바꾼 곳도 있다.

그렇다면 해당 기업에 수평적 조직문화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있을까?

이를 살펴보기에 앞서 이명박 정부의 후반기 키워드인 ‘상생’이 기업, 특히 대기업에 미친 영향을 가늠해 보자.

이명박 정부는 공정거래위원회를 앞세워 하청업체에 갑질을 하거나 하도급법 등을 위반하는 대기업을 압박했다.

‘믿었던’ 보수 정부의 행보에 부담을 느낀 대기업은 일종의 컴플라이언스 권한을 부여받은 전문가를 영입해 내부 감시에 들어갔다.

외부에서 채용된 전문가는 하청업체를 직접 상대하는 구매부서 담당자들을 집중 교육하거나 지도했다.

초기에는 대기업은 하청업체를 상대로 터무니없는 단가 후려치기나 어음결제를 지양하는 등 개선된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대기업과 하청업체와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바뀌지는 않았다.

대기업 구매부서의 임무는 적기, 적량, 적가에 적정한 재료나 물품을 구매하는 일이다.

당연히 구매부서 평가도 이 기준을 바탕으로 이뤄지고 인센티브가 지급된다.

대기업 구매부서는 과거처럼 노골적인 갑질이 아니라고 해도 성과를 내기 위해 무리한 물량 발주나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관행을 버리지 못하게 마련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상생’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수평적 조직문화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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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내 성과 경쟁시스템과 기존 보상체계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단순한 직급 파괴나 공간 조정은 한계를 갖게 마련이다.

저널리스트이자 기업가인 마거릿 헤퍼넌은 ‘경쟁의 배신’에서 어느 정도의 경쟁이 기업의 생산성을 높일 수는 있지만, 승진, 인센티브 등을 둘러싼 과잉 경쟁이 오히려 주인의식, 창의성, 생산성을 떨어뜨린다고 주장한 바 있다.

물론, 헤퍼넌은 저서에서 다양한 예시를 통해 소유구조의 평등화를 조직원의 행복과 창의성 고양, 생산성 향상의 가장 좋은 대안임을 시사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는 과도한 성과평가 제도의 수정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 내 인센티브 잣대는 대부분 수치로 보이는 성과에 기준을 두고 있다.

수치에 기반한 인센티브는 소수의 창의성과 생산성을 담보할 수는 있어도 다수를 소외시키고 기업 전체적으로도 능률을 떨어뜨린다.

즉, 전무든, 그룹장이든 또는 부서든, 개인이든 최고의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 집중한다면 해당 기업은 수직적 조직문화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

아예 인센티브 제도를 없애야 된다는 말은 아니다.

평가 기준을 눈에 보이는 수치가 아닌 타부서 및 타인과의 협업 능력, 사업화 여부를 떠나 아이디어를 내기 위한 적극성 등으로 바꾼다면 어떤 선언적 조치보다 수평적 조직문화에 가깝게 접근하는 방법일 것이다.

그룹의 지향점인 수평적 조직문화도 근본적인 시스템 변화 없이는 최태원 회장의 공허한 외침일 수 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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