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당 골목.
채식당 골목.

[뉴스퀘스트=석태문(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아내와 나는 평일 끼니를 해결해줄 깔끔한 베트남 식당을 찾고 있었다.

한국 사람이 베트남에서 한국 음식을 매일 만들어 먹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퇴근길에 우연히 ‘꽌짜이’(Quan Chay)라는 입간판을 보았다.

‘꽌짜이’는 육류를 취급하지 않는 채식주의자를 위한 식당이란 뜻이다.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길거리 식당이 아닌 실내 식당을 찾고 싶었던 나는 급 호기심이 생겨 작은 ‘꽌짜이, 땀안(Tam An)’을 방문하게 되었다. 

◆ 채식당, 땀안에 빠지다

꽌짜이 땀안 입간판.
꽌짜이 땀안 입간판.

식당 안내판을 따라 큰 길에서 좌측으로 30m 정도 들어갔다.

막다른 길이 나왔고 거기에 베트남의 여느 식당처럼, 가정집 1층에 마련된 작은 식당 ‘땀안’이 있었다. 실내에는 한국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박한 나무 식탁이 몇 개 놓여 있었다. 화려하진 않지만 깔끔한 인테리어도 눈에 띄었다.

주인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에게 눈인사를 하고, 바깥에서 사진 몇 장을 찍고 집으로 돌아 왔다. 그리고 아내에게 좋은 식당을 찾은 것 같다며 함께 방문해 보기를 권했다. 

식당은 짐작컨대 며칠 전에 문을 연 듯 보였다.

실내에는 주인이 직접 쓰고 그린 듯 보이는 메뉴판과 그림이 곳곳에 붙어 있다. 벽에는 분위기를 살려주는 소박한 생활 소품도 몇 점 걸려있다. 안쪽 조리실도 위생적으로 보였고, 젊은 부부의 깔끔한 전통 옷도 인상적이었다.

잔잔한 불교음악이 흐르는가 하면 한 쪽 벽면에 위치한 선반에는 유기농 식품들도 진열되어 있다. 메뉴로는 쌀국수, 바잉류(banh), 밥과 해산물을 볶은 음식, 주스류가 있었는데  대부분의 음식이 25천동(1250원)을 넘지 않아 가격도 착했다.

채식당 ‘땀안’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후 땀안은 우리가 한 주에 대여섯 번씩 들르는 단골집이 되었다. 젊은 주인 부부는 우리를 볼 때면 항상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맞아 주었다. 

땀안에서 내가 좋아하는 메뉴는 미꽝(Mi Quang) 쌀국수이다.

아내는 건면(乾麵)인 분코(bun kho) 쌀국수를 더 좋아한다. 미꽝에는 소시지처럼 보이는 재료가 들어가는데 주인에게 그것이 육류가 아닌지 물어 보았다.

주인은 두부로 만든 것이라고 답했다. 혹여 주인 내외는 우리가 채식주의자인 줄 오해하는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사실 우리가 땀안을 자주 찾는 것은 깔끔한 내부시설과 맛있는 음식, 주인 내외의 친절함 때문인데 말이다. 

◆ 한 달에 네 번만 문 여는 식당

생일선물 받고 신난 세쌍둥이.
생일선물 받고 신난 세쌍둥이.

식당에 들를 때마다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주인 부부의 세쌍둥이 남아가 항상 한 쪽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아이들을 볼 때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한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못 본 척 외면을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은근히 다가와 슬쩍 몸을 비비기 시작했다. 내가 웃으며 손을 내밀면 녀석이 손을 잡는다. 한 녀석이 그러면 다른 녀석들도 차례로 와서 손을 잡아 본다.

식당에 오는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인인 우리가, 작은 식당에 와서 베트남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볼 때가 많다.

호기심이 왕성한 아이들이니 외국인인 우리가 오죽 신기하랴. 식당에서 녀석들을 보는 것은 우리 부부에게 또 다른 기쁨을 준다.

자전거와 옷도 똑같은 세쌍둥이.
자전거와 옷도 똑같은 세쌍둥이.

주인 부부는 아이들이 우리에게 불편을 줄세라 항시 눈치를 준다. 녀석들은 엄마 몰래, 아빠 몰래 살짝 살짝 다가와 웃음을 보여 주고 사라지곤 한다. 가끔 녀석들에게 이름을 묻고 구별을 해 보려고 시도도 해보았다. 하지만 어찌나 똑같은지 우리로선 도무지 세 녀석을 구별할 방법이 없다.

그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정을 쌓아가던 어느 날, 퇴근길에 들렀더니 식당 문이 잠겨 있었다. 무슨 일인지 걱정되어 다음 날 점심때 식당으로 찾아갔다.

젊은 안주인은 어린 세쌍둥이들 때문에 식당을 매일 열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음력으로 말일과 초하루, 보름 전과 보름날 이렇게 매월 4~5일씩 문을 연다고 설명해 주었다.

내가 이해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던지 잠시 후에 6월부터 12월까지 식당 문을 여는 날을 종이에 빼곡히 적어 주었다.

단골손님인 내가 헛걸음하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지금도 우리 집 냉장고에는 채식당 ‘땀안’의 2019년도 오픈 날짜가 적힌 종이가 달력처럼 붙어 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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