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구본무 회장 뜻에 따라 'LG 의인상' 제정

[사진=LG전자 인스타그램]
[사진=LG]

[뉴스퀘스트=하응백 문화에디터] 2019년 7월 6일 오후 4시 30분께 경북 포항시 북구 소재 한 해수욕장. 주초에 비가 내리고 흐린 날이 이어진 탓인지 이날은 유난히 쌀쌀해서 한여름 낮 기온이 섭씨 25도가 채 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해수욕장의 파도도 다른 날에 비해 거칠었다.

포항북부경찰서 교통관리계 임창균 경위는 마침 112 신고를 받고 해안도로를 지나다 갑자기 사람들이 아우성치는 소리를 들었다.

돌아다보니 해안가 50~60미터 가량 되는 바다 위에서 세 사람이 허우적거리는 게 아닌가. 해당 지점은 이안류가 발생해, 바다 쪽으로 밀려가는 파도에 휩쓸리면 빠져나오기 힘들어 이 지역 해녀들도 접근하지 않는 곳이었다.

세 사람이 간신히 머리만 내민 채 비명을 지르는 것을 본 임 경위는 방향을 틀어 지체 없이 달려갔다. 마침 주변에 있던 튜브를 빌려 껴안은 채 상의만 벗고 바다로 뛰어든 임 경위는 바람이 불어 거칠게 밀려오는 파도를 넘어 50미터 가까이 헤엄쳐 갔다.

거친 파도 속 익사 직전 남녀를 구한 임창균 경위. [사진=LG그룹]
거친 파도 속 익사 직전 남녀를 구한 임창균 경위. [사진=LG그룹]

가까이 가서 보니 20대 남녀들인데 남자 한 사람은 그나마 손발을 젓고 있었고 다른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의 목숨이 경각에 이른 듯했다.

한 번에 모두 구조하기 어렵다 판단한 임 경위는 가까운 남자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외쳤다. “좀 버틸 수 있겠어요?”

다급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아니요, 살려주세요.”

임 경위는 곧바로 남자에게 헤엄쳐 가 튜브를 눕혀 팔을 끌어 걸치게 한 다음 여자 쪽으로 헤엄쳐 갔다. 그리고는 거의 물속으로 가라앉기 직전인 여자의 팔을 잡아 튜브 반대쪽으로 끌어 걸치게 하는데 성공했다.

다른 한 남자는 그 모습에 용기를 냈는지 자신이 헤엄쳐 나가겠다고 말했다. 수상 인명구조 자격증을 갖고 있던 임 경위의 수영 실력과 빠른 판단력이 빛을 발한 덕에 절체절명의 상황을 극복한 것이다.

며칠 뒤 YTN 인터뷰에서 가족들이 걱정할까봐 집에는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말한 임 경위는 사고 순간 들이치는 파도가 두렵지 않았는지 묻는 앵커의 질문에 “그 순간에는 그런 생각 자체가 안 들었다”며 “그냥 구해야겠다라는 생각만 하니까 저도 모르게 그냥 들어간 거”라고 답했다.

LG복지재단은 “위험에 처한 시민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는 임 경위의 용기 있고 침착한 행동을 우리 사회가 함께 격려하고자” LG 의인상을 수여하고 상금을 전달했다.

◆ “국가와 사회를 위해 희생한 의인”에게 보답하는 데서 출발

LG 의인상은 2015년 고(故) 구본무 회장의 뜻에 따라 제정되어 연간 수시로 국가와 사회에 기여한 다수 의인을 발굴, 선정해 상과 상금을 전달하는 제도다.

그해 8월 경기도 파주 비무장지대에서 북한군이 매설한 지뢰폭발로 군 장병 2명이 중상을 입어 다리를 잃는 사고가 터졌다. LG는 이들의 치료와 재활을 돕고자 의인상을 수여하고 각각 5억 원씩의 위로금을 전달했다.

이렇게 해서 알려진 LG 의인상은 정식 명칭이 생기기 전에 이미 유사한 취지로 시행되고 있었다. 가령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양학선 선수가 체조 도마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였다.

양 선수는 어려서부터 달동네에 사는 등 힘겨운 생활로 많은 방황을 겪다 은사의 도움으로 운동을 계속하여 중학생 때 소년 체전에서 우승하는 등 도마 종목에서 발군의 기량을 발휘한 끝에 대한민국 최초 금메달의 쾌거를 이루었다.

이에 LG는 양 선수의 국위 선양을 축하하며 5억 원의 격려금을 전달했다.

이어 2013년 4월 인천 강화경찰서 소속 고 정옥성 경감이 바다에 뛰어든 시민을 구하려다 희생되자, LG는 유가족에게 5억 원의 위로금을 전달하고 자녀 3명의 학자금 전액을 지원키로 했다.

2014년 7월에는 진도 팽목항에서 세월호 사고 현장 지원활동을 수행한 뒤 소방헬기로 복귀하던 중 추락 사고로 순직한 5명의 소방관 유가족들에게 각 1억 원씩 총 5억 원의 위로금을 전달했다.

그 배경에는 “국가와 사회 정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의인에게 기업이 사회적 책임으로 보답해야 한다”고 역설한 고 구본무 LG회장의 의지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령 정옥선 경감 사고 당시 LG 경영진은 천안에 위치한 LG 협력사를 방문하던 길이었는데, 뉴스를 통해 사고 소식을 전해들은 구 회장이 즉석에서 제안하자 모두들 이의 없이 뜻을 모았다고 한다. 이와 같은 경영진의 노력이 거듭된 끝에 ‘LG 의인상’으로 결실을 맺은 것이다.

의인상의 첫 수여자는 고 정연승 특전사 상사의 유가족으로, 정 상사는 2015년 9월 이른 아침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은 여성을 발견하고는 급히 심폐소생술을 행하다 신호 위반 트럭에 치여 숨졌다. 회사는 고인의 희생정신을 기리며 유가족에게 1억 원의 위로금을 전달했다.

이후 2015년 3명, 2016년 25명, 2017년 30명, 2018년 32명, 올해는 현재까지 22명이 의인으로 선정되는 등 총 112명과 그 가족들에게 상이 전해졌다.

선정된 의인들의 사연은 한결같이 우리 사회에 귀감이 될 만하다. 몇몇 사례를 보면, 2017년 2월 스리랑카 출신 근로자 니말 씨는 경북 군위군 주택 화재 당시 불길을 뚫고 들어가 본인이 화상을 입은 가운데 할머니를 구해냈다.

손수레를 끌던 할머니를 돕다 사고를 당한 뒤 7명에 장기기증하고 떠난 故 김선웅 군. [사진=LG그룹]
손수레를 끌던 할머니를 돕다 사고를 당한 뒤 7명에 장기기증하고 떠난 故 김선웅 군. [사진=LG그룹]

그해 6월 김부용, 김용수씨는 서울 역삼역 인근 도로에서 한 남성이 여성에게 흉기를 휘두르자 몸을 던져 이를 제압했는데 당시 김부용 씨는 82세 고령이었다.

고 박권병 경장과 고 김형욱 경위는 강원도 삼척 초곡항 인근 교량 공사 현장에 고립된 근로자들을 구조하던 중 파도에 휩쓸려 순직했고(2016년 11월 선정), 고 이영욱 소방위와 고 이호현 소방사는 강원도 강릉시 소재 문화재급 목조 건물인 석란정 화재 진압 중 지붕이 무너져 내려 순직했다(2017년 9월 선정).

손호진 씨는 2018년 6월 운전자가 의식을 잃은 채 굴러내려 사고 직전에 이른 차량을 맨몸으로 막아냈고, 8월에는 박종훈 씨가 엽총으로 두 명을 사망에 이르게 한 피의자를 맨몸으로 제압했다. 박종훈 씨는 상금 3천만 원을 사망한 면사무소 직원의 유가족에게 기부하기도 했다.

10월에는 고 김선웅 군이 손수레를 끌던 할머니를 돕다 사고를 입어 뇌사 상태에 빠진 뒤 7명에게 장기를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으며, 연말께 강원도 홍천소방서 김인수 소방위를 비롯한 소방대원 6명은 화재 현장에서 열기로 안전모가 녹아내리는 상황에서 3살 아이를 구해내 주위를 감동시켰다.

◆ 이웃 위한 선행·봉사자로 범위 확대 …"숨은 의인 조용히 돕고자 노력"

의인상 수상자들이 상금을 자신보다 어려운 이들에게 나눠주는 등 뒤늦게 알려진 미담도 많았다.

2016년 10월 전남 여수에서 태풍 ‘차바’로 인해 발생한 여객선 표류 사고현장에서 선원 6명을 구한 여수해경 122구조대 소속 해경 5명은 상금 5천만 원을 해양경찰 유가족 자녀 등을 지원하는 장학재단인 ‘해성장학회’ 등에 다시 기부했다.

그해 12월 기도가 막혀 쓰러진 시민을 응급처치로 구조한 해군작전사령부 반휘민 중위는 상금 전액을 노숙자 보호시설인 성남 ‘안나의 집’에 기부했다.

전남 목포북항에 정박 중인 현진호 앞에서 김국관 선장(사진 오른쪽)에게 LG복지재단 남상건 부사장이 'LG 의인상'과 그물 수리비를 포함한 상금 3000만원을 전달했다. [사진=LG그룹]
전남 목포북항에 정박 중인 현진호 앞에서 김국관 선장(사진 오른쪽)에게 LG복지재단 남상건 부사장이 'LG 의인상'과 그물 수리비를 포함한 상금 3000만원을 전달했다. [사진=LG그룹]

2017년 2월 전남 진도해상에서 바다에 빠진 선원 7명을 구조한 김국관 선장은 상금 중 1천만 원을 신안군 장학재단에 기부했다.

그해 3월 다가구주택 화재현장에서 구조작업 중 허리뼈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은 소방관 최길수 씨는 신혼여행을 미루고 모교인 계명대에 상금 일부를 장학금으로 전달했으며, 같은 달 불길이 치솟는 철물점에 뛰어들어 이웃 남성을 구조한 장순복 씨는 상금을 용인 구성초등학교 오케스트라 창단에 바쳤다.

또 제주 민박집 화재 현장에서 투숙객 7명의 생명을 구한 UDT대원 신상룡, 임도혁, 이정수 하사는 상금 중 1천만 원을 해군 장학재단에 기부했다.

이 과정에서 LG는 주로 희생당한 이들을 찾던 기존 입장에서 더 나아가 올해부터는 “우리 사회와 이웃을 위해 선행과 봉사를 행한 시민”으로 선정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지난 3월 선정된 서상현 씨(29)와 구영호 씨(30)는 퀵서비스 기사들인데, 이들은 부산 도심 한복판에서 여성을 흉기로 위협하여 차에 태워 도주하던 범인을 5킬로미터나 추격한 끝에 차량을 멈춰 세워 때마침 도착한 경찰과 함께 붙잡았다.

3월 17일에는 운동을 하러 가던 최철화 씨(60)와 김종규 씨(48)가 불에 타 폭발 직전인 승용차 안으로 뛰어들어 운전자를 구해냈다. 당시 119소방대원이 달려왔을 때 승용차는 거의 형체만 남은 상태였다고 한다.

지난 5월에는 대전경찰서 이영학 경장에게 상이 주어졌다. 이 경장은 한 남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며 집을 나갔다는 신고를 받고 남성의 휴대전화로 위치를 추적, 유성구 방동저수지로 달려가 10미터 아래 저수지에 뛰어들어 물에 빠진 남성을 구하는데 성공했다.

LG 의인상은 그 선정 범위가 늘어남에 따라 수여 절차도 복잡해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상을 주관하는 LG복지재단 측은 원래 취지에 따라 수여자의 생업 현장 혹은 관할 경찰서에서 최대한 조용하게 표창과 상금을 전달한다는 원칙을 앞으로도 지켜나갈 예정이다.

특히 수여자나 가족의 급박한 상황을 조기에 확인, 지원 과정을 최대 일주일 내로 신속하게 마무리한다는 목표도 지금처럼 유지할 것이라고 말한다.

내외적으로 어려운 이 시대에 “국가와 사회를 위해 희생한 의인”에서 “사회와 이웃을 위해 선행과 봉사를 행한 시민”에 이르기까지 기업이 그 책무와 보답을 다해야 한다는 LG의인상의 정신이, 주변 기업들에게도 귀감이 되기를 거듭 기대한다.

저작권자 © 뉴스퀘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