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이규창 경제에디터]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전기자동차 배터리 분쟁을 둘러싸고 소송전을 벌이고, LG전자와 삼성전자는 8K TV의 기술 표준을 놓고 공방을 펼치고 있다.

세계 경제가 완연한 저성장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는데다 무역 분쟁과 시장 경쟁 강도도 날로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집안싸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대부분 이럴 때 우리 사회에서는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는 가치판단은 뒤로 하고 양비론이 비등하다.

한마디로 ‘우리끼리’ 싸우지 말고 하루 빨리 화해해서 글로벌 경쟁에 조금 더 힘을 쏟으라는 지적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가보자.

사실 기업, 특히 대기업 간 다툼을 두고 부부싸움처럼 칼로 물 베기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다툼이나 법적 분쟁이 나더라도 실무선에서 뒷거래를 하거나 이래저래 자주 마주쳐야 하는 오너끼리 화해하며 종결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또, 정부나 경제단체, 때로는 언론이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라는 상황론을 들어 화해를 종용하면서 싸움이 마지못해 종결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기업 간 다툼이 ‘좋은 게 좋은 것’, ‘우리가 남이가’ 라는 식으로 어물쩍 넘어가야 반드시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우리는 기업이 스스로 자정능력을 발휘해 ‘법과 양심에 따라’ 운영되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개인은 물론, 개인이 모인 기업은 시장을 선점하고 경쟁에서 생존해야 한다는 목표 하에 수단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특히, 대기업은 철저히 분업화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어 ‘평범한’ 조직 구성원들이 책임을 전가하기 쉬운 구조다.

‘나는 서류만 작성했다’, ‘나는 전달만 했다’, ‘나는 지시에 따랐을 뿐이다’는 식으로 자신의 책임을 분산시키면서 불법, 편법적인 행위에 가담한다.

일본의 경영·인사 컨설턴트인 야마구치 슈는 저서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에 미국의 사회 심리학자인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 ‘아이히만 실험’을 소개하면서 개인의 양심은 아무런 힘이 없고 컴플라이언스 위반이 속출하는 현상을 지적한 바 있다.

이때 기업이 행위는 비용대비 효과 원칙을 따른다.

예를 들어, 건설사들이 대규모 건설현장에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시스템이나 장비에 대한 투자비용보다 사고 발생 시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위로금 내지는 관계기관에 내는 벌금이 적게 든다면 안전에 대한 투자를 꺼리는 식이다.

따라서 기업 간 다툼이 어느 한 쪽의 명백한 잘못이라면 끝까지 시시비비를 가려 그에 대한 유무형의 많은 비용이 부과돼야 한다.

그렇게 해야 기업은 해당 행위를 멈추거나 양심은 차치하더라도 법에 따라 운영한다.

LG전자와 삼성전자의 공방전 못지않게 이슈가 되고 있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과거에도 분쟁을 벌인 바 있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역시 전기차 배터리 핵심 소재인 분리막 제조기술과 관련해 특허소송전을 벌이다가 상호 협력키로 했다며 소송을 모두 취하했다.

그런데 LG화학은 2017년부터 SK이노베이션이 자사의 핵심인력을 빼내가면서 배터리 관련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 양사의 갈등은 다시 시작됐다.

올해 초 대법원은 LG화학이 2017년 SK이노베이션으로 전직한 핵심 직원 5명을 대상으로 제기한 전직금지가처분 소송에서 LG화학 손을 들어줬다.

LG화학은 올해 5월에는 SK이노베이션 법인과 인사담당 직원 등을 산업기술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서울지방경찰청에 형사고소하기도 했다.

이와 별도로 양사는 미국에서도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자사 직원을 채용하면서 계획적으로 영업 비밀을 탈취했다며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델라웨어 지방법원에 영업 비밀 침해 소송을 제기했고, SK이노베이션은 이에 맞서 LG화학과 LG전자에 대해 특허 침해를 이유로 ITC에 제소했다.

만약, SK이노베이션이 계획적으로 LG화학의 인력을 빼가면서 영업 비밀을 탈취했다면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야 하고 기업 이미지에도 막대한 손상을 입어야 한다.

그래야 SK이노베이션이 적극적 투자를 통해 자체 기술 개발에 노력할 것이고, 이는 중장기적으로 국익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반대로 LG화학이 직원 유출에 지나치게 대응한 것이라면, 또 특허를 침해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양사가 막대한 소송비용, 비판 여론 등 현실적 이유로 어설프게 봉합할 경우 비슷한 사건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

하나 덧붙이자면, 정부도 법 위반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제재를 위해 처벌 강도를 대폭 상향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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