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의 수용

2018년 칠곡 향사 가야금병창 전국대회의 한 장면.
2018년 칠곡 향사 가야금병창 전국대회의 한 장면.

【뉴스퀘스트=하응백 문화에디터】 가야금병창으로 부르는 「청석령 지나갈 제」라는 노래가 있다.

노랫말은 다음과 같다.  

청석령 지나갈 제 초하구가 어디메뇨
호풍도 참도찰사 구진 비는 무삼일고
뉘랴 내 형상 그려다 님계신 곳 전해주리
부귀와 공명을 하직허고 가다가 아무데나 
기산대하천 명당을 가리고서 오관팔작으로 황학루만큼 집을 짓고
앞내물 백조 한 배로 벗님네를 거나리고 옛노래를 한 연후에
내 나이 팔십이 넘으면 승피백운하야 옥경에 올라가 
제방투호 다홍열을 나 혼자 임자가 되어서 늙어 노락허오리다(박귀희 노랫말)  
 

이 노랫말에서 앞부분은 병자호란 이후 봉림대군(훗날의 효종)이 지은 시조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청구영언』에 실린 원문은 이렇다

 청석령(靑石嶺) 지나거냐 초하구(草河口) 어듸메오
호풍(胡風)도 참도 찰샤 구즌비는 무스 일고
뉘랴셔 내 행색(行色) 그려내여 님 계신듸 드릴고

이 시조는 봉림대군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면서 한스러운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북쪽의 청석령과 초하구를 지나니 오랑캐 땅의 바람은 너무나 찬데 궂은비까지 내리고 볼모로 끌려가는 자신의 행색이 너무도 비참하다.

이 처참한 상황을 누가 그려서 한양에 있는 인조임금께 전해줄까 하는 내용이다.

여기까지 사설은 박귀희의 가야금병창 가사와 조금 다르긴 하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 이해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그 다음 사설에 나오는 ‘기산대하천’, ‘오관팔작’, ‘백조 한 배로’, ‘다홍열’ 등은 도대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가야금 병창을 부르는 분들에게 물어보아도 자신들도 잘모른다는 것이다. 해답은 역시 문헌에서 찾을 수 있다. 『청구영언』에는 다음과 같은 작자 미상의 사설시조가 있다.

공명(功名)과 부귀(富貴)과란 세상(世上) 사람 다 맛기고
가다가 아모데나 의산대해처(依山帶海處) 에 명당(明堂)을 갈외셔 오간팔작(五間八作)으로 황학루(黃鶴樓) 맛치 집을 짓고 벗님네 다리고 주야(晝夜)로 노니다가 압 내예 물 지거든 백주(白酒) 황계(黃鷄)로 내 노리 가잇다가
내 나이 팔십이 넘거드란 승피백운(乘彼白雲)하고 하날에 올나 가셔 제방투호(帝傍投壺) 다옥녀(多玉女)를 내 혼쟈 님자되어 늙을 뉘를 모로리라

이 시조와 가야금 병창 「청석령 지나갈 제」의 중간 노랫말을 비교해 보면 단번에 이 시조가 원본(原本)임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작자 미상의 시조란 조금씩 달리 부를 수도 있다.

예컨대 「청석령 지나갈 제」에서 ‘기산대하천(奇山大河川)’으로 풀이 해 ‘기이한 산과 큰 하천’에 명당을 가린다고 해도 뜻은 통한다.

‘오간팔작’이 ‘오관팔작’으로 변한 것은 소리할 때 발음상 편의를 위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청석령 지나갈 제」에서 ‘백조 한 배로’와 ‘다홍열’은 위의 시조를 찾지 못하면 도저히 그 뜻을 알 수 없게 와음(訛音)이 많이 진행된 것이다(와음이란 소리가 여러 이유로 인해 변한 것을 말한다).

‘백조 한 배로’의 원래 음과 뜻은 ‘백주(白酒) 황계(黃鷄)로’, 즉 ‘막걸리와 누런 닭으로’가 된다.

마찬가지로 ‘다홍열’도 ‘다옥녀(多玉女)’가 되어야 비로소 그 전체적인 뜻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전체적인 내용은 부귀공명을 버리고 경치좋은 곳에 집을 짓고 벗들과 술이나 마시다가 팔십까지 살다가 죽으면 구름을 타고 하늘로 가서 미인들을 독차지 하고 살고 싶다는 것이다.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그러고 싶을 것이다.

참 욕심도 많다. 

 「청석령 지나갈 제」는 이처럼 서로 연관이 없는, 혹은 처참함의 주인공이 부르는 소리와 행복함의 주인공이 부르는, 즉 상호 이질적인 내용이 결합되어 이루어진, 즉 봉림대군의 시조와 작자미상의 사설시조 하나가 조합해서 이루어진 특이한 노래인 것이다. 

현재 이 가야금병창을 부른 사람들도 박귀희 사설 그대로 부르고 있는데, 특히 앞으로 이 노래를 가야금병창으로 부르는 분들은 ‘백주 한 배로’를 ‘백주 황계로’ ‘다홍열’은 ‘다옥녀’로 고쳐 불렀으면 한다. 그래야 최소한의 뜻이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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